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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5. 임진왜란 때 쓰여진 한시로 본 조선의 무능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5. 임진왜란 때 쓰여진 한시로 본 조선의 무능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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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쓰여진 한시로 본 조선의 무능

 

 

干戈誰着老萊衣 전쟁에 누가 노래자의 색동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
萬事人間意漸微 만사 인간의 뜻이 점점 희미해져가네.
地勢已從蘭子盡 지세는 이미 난자도로부터 끝났고,
行人不見漢陽歸 행인은 서울로 돌아가는 이 보이질 않네.
天心錯莫臨江水 임금께선 암담하게 압록강을 굽어보고,
廟算悽凉對夕暉 묘당의 계책은 처량하게 석양을 바라볼 뿐.
聞道南兵近乘勝 남도의 관군이 요즘 승기를 탔다고 들리던데,
幾時三捷復王畿 언제나 전승하여 서울을 수복하려나.

 

소화시평권하 25을 보면서 그런 역사의 순간들이 스칠 수밖에 없었다. 홍만종은 마치 선조가 나라에 대한 걱정에 눈물을 흘리는 뜨거운 임금처럼 묘사했고, 이호민의 시가 우국충정을 담은 것처럼 묘사하곤 있지만 난 이 글을 보며 선조의 무책임과 조정 대신들의 무능만을 목도하게 됐을 뿐이다.

 

홍만종은 담담이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임진(1592)년에 임금께서 서쪽으로 파천했다[壬辰大駕西遷]’라는 말인데,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하듯 너무도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어 얼핏 보면 임금이 나들이 정도를 가신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짤막한 구절엔 민중을 저버린 임금에 대한 원망, 그리고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살고자 떠난 임금의 나약함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패전만 하다가 하삼도에서 드디어 승기를 타기 시작했다는 소문에 호위하던 이호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나에겐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소화시평에 수록된 여러 한시를 통해선 한시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시를 지을 수 있었던 문인들의 실력을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보면서 오히려 문인들의 그와 같은 심미주의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궁지에 몰려 있음에도 그들은 그걸 타개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시 한편을 멋들어지게 쓰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의 내용에 들어가서 보면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든다.

 

1~2구에선 전쟁 상황이기에 효도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효를 마치지 못했기에 인간세상에 대한 뜻마저 희미해져 간다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의 사회로 충과 효가 이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덕목이기에 이호민은 그걸 이야기함으로 내용을 설파한 것이다. 여기엔 효는 다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임금을 호위하며 충()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교수님은 얘기해줬다.

 

2~6구까진 임금부터 관리들까지 속수무책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미 조선의 지세는 압록강에 있는 난자도에서부터 다한 상황이고 늘 한양으로 모여들던 행인들도 더 이상 한양으로 가질 않는 상황이다.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임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압록강이나 굽어보고 있고 신하들은 석양만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부분을 통해서 이호민은 경각에 달린, 그래서 매우 위급한 상황을 묘사하여 7~8구에서 묘사할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원래 모든 영웅담이 그렇듯이 온갖 고초를 당한 후에 번듯하게 일어나야만 더 감동적인 것처럼 말이다.

 

7~8구에선 드디어 하삼도(下三道)의 극적인 승리 장면과 그렇기 때문에 이 난리가 조속히 마무리되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만약 이런 구절을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썼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 전쟁을 마무리 지을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이 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진 않는다. 자기들이 역전을 할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의병들에 의해, 그리고 이순신의 탁월한 전술에 의해 역전되는 상황이 일어나길 그저 바라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홍만종은 이에 대해 문장이 존엄한 제왕을 감동시킨 작품이라 할 만하다[可謂詞感帝王尊者也].’는 평을 달아줬지만, 이번 시평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은 문인들의 나라조선의 가장 심한 병폐를 제대로 보여준 시란 생각이 들었다. “글로 일어선 자 글로 망하리라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의 한 장면. 의주로 피신가는 선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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