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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2. 석주의 시와 오산의 시를 비교하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2. 석주의 시와 오산의 시를 비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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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의 시와 오산의 시를 비교하다

 

 

소화시평권하 22엔엔 석주와 오산의 시가 동시에 실려 있고 이 두 시를 홍만종은 비교하고 있다.

 

 

鶴邊松老千秋月 학 곁의 소나무는 천년 세월 달빛 속에 묵어가고,
鰲背雲開萬里風 자라 등의 구름은 만 리의 바람에 열리네.

 

여기서도 석주는 마치 자신이 이런 식의 차운한 시엔 나를 따를 사람이 없지라는 걸 안다는 듯이 자신감 넘치게 휘리릭 써버렸다. 그런데 그가 쓴 내용은 정말로 호탕하기 그지없는 시였다. 그는 소나무에 걸린 달 곁으로 날아가는 학과 자라 모양의 구름이 확 개는 광경을 상상하며 이 시를 썼던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보면 너무도 평이한 광경이지만 석주는 그런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아주 절묘하게 시어를 배치하여 멋들어지게 써냈다.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은 소나무와 구름을 수식해주는 말로 학변(鶴邊)’, ‘오배(鰲背)’를 보셨다. 그래서 그대로 해석하자면 학 곁에 있는 소나무가 되고 자라 등에 있는 구름이 된다. 이렇게 수식어로 보면 내용이 확연히 살아나니 정말 깔끔하고 좋다.

 

그런데 더 놀랐던 부분은 바로 그 다음 구절들에 대한 해석이다.

 

松老千秋月 기존 노송과 천년 묵은 달이요.
수정 소나무는 천년 세월 달빛 속에 묵어가고,
雲開萬里風 기존 구름 열리고 만 리의 바람이로세.
수정 구름은 만 리의 바람에 열리네.

 

처음 해석할 때만 해도 소나무:’, ‘구름:바람사이의 상관 관계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둘 사이를 그냥 평면적으로 이어 명사로만 해석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서술어를 찾아야 한다고 알려주더라. 그런 말을 듣고 시를 보다 보니 ()’()’이 서술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천추월에 늙은 소나무, 만 리 바람에 열린 구름이라 정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정들을 찾아가고 새롭게 보이는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시 수업이 재밌긴 하다. 어찌 보면 지금은 걸음마 수준의 아이와 같은 실력이라 할 것이다. 한시를 이렇게 맛보며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하니 말이다.

 

보통 앞에서 이렇게 자신의 실력을 뽐냈는데, 그게 실제로 이런 식의 엄청난 결과물까지 나오고 나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건 실력 여하를 떠나 중압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천로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거기에 눌리지 않고 보란 듯이 기량 발휘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얼핏 보면 석주의 시에 비하면 약간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석주는 자연의 웅장함을 읊었다면 오산은 그저 바리를 씻고 옷을 말리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특기할 만한 구성이라면 구름을 뚫고라던지, ‘비를 무릅쓰고라는 식의 호기로움을 발휘했다는 부분이다.

 

 

穿雲洗鉢金剛水 구름을 뚫어 금강산 물에 바리를 씻고
冒雨乾衣智異風 비를 무릅쓰고 지리산 바람으로 옷을 말리네.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홍만종은 오산 시의 웅장함과 굳셈이 권필을 넘어섰다[其壯健過之].”라고 평가를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지? 도대체 어디가 더 웅장하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다. 물론 홍만종의 시평에 따라 바라보면 아까 말했던 구름을 뚫는다비를 무릅쓴다는 부분이 웅장한 느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석주의 호탕함에 비하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두 가지를 들어 한시가 웅장하게 느껴지는 방법에 대해 말해줬다. 첫째는 그저 머릿속으로 피상적으로 그리듯이 그럴 듯하게 묘사했느냐, 실제로 그런 광경을 겪어보고 묘사했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긴 우린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과장되게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경험을 해봤었다. 안 가봤으니, 안 해봤으니 자신이 말에 힘을 부여하기 위해선 더욱 과장되게 말하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경험해본 사람은 그렇게까지 너스레를 떨지 않아도 된다. 이미 어떤 말을 하든 그런 경험이 반영된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고유어의 사용에 있다고 한다. 홍만종은 이미 권상 90에서 고유어를 사용한 시들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전히 고유어를 한시에 쓰는 건 촌스럽다는 인식이 있었고 관습적으로 중국의 명칭들을 사용하던 풍조였는데 중국에서 복고파가 득세로 고유어를 시어에 반영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고 하며 그게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산의 경우엔 아예 금상산이나 지리산같은 고유명사를 넣어 시를 완성했기 때문에 시적 미감은 터프하다고 느껴지고 그건 굳세다라는 평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홍만종이 당시풍에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허균의 고유어에 대한 인식에 홍만종도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고유어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그건 아예 백악시단의 진시(眞詩)운동을 거쳐 조선시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한시사에 있어서도 이런 논의들은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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