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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8. ‘내가 졌소’를 외칠 수 있는 문화풍토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8. ‘내가 졌소’를 외칠 수 있는 문화풍토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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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졌소를 외칠 수 있는 문화풍토

 

 

소화시평권하 28소화시평의 시리즈 중 하나인 내가 졌소[閣筆]’의 두 번째 편이다. 이미 권상 57번에서 이와 비슷한 흐름을 가진 이야기가 나왔었다.

 

조선 문인들에게 시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글 솜씨만을 뽐내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하나의 운자를 가지고 시를 지으며 얼마나 빨리 시를 짓냐를 경쟁하며 자신의 시재를 뽐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하 22과 같이 치열한 경쟁의식이 표출되기도 하고, 사람을 대하기도 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으로 깔보다가 시 한 수를 보고 경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한시를 짓는 일이란 문학소양을 드러내는 일임과 동시에 실력발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고 지금 사람들과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그들의 지적인 부분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백분토론같은 프로그램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들은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이미 지식이란 칼날, 혀라는 칼날을 가지고 한바탕 진검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어느 누구도 내가 졌소라는 말을 전혀 내뱉지 않는다. 아무리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얘길 해도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여긴 채,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라는 식의 지식인의 완고함, 고집불통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면 소화시평에 두 번에 걸쳐서 나온 내가 졌소시리즈는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할 줄 아는, 그래서 더 품위 있어 보이고, 더 지적인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었던 데엔 문학적 소양도 남다를뿐더러,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인의 풍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인정한다고 자신이 깎이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실력을 받아들여준다고 상대방이 기고만장해지는 것도 아닌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백분토론은 한 편의 코미다. 그래서 이처럼 코미디 소재로 자주 쓰인다.    

 

 

홍만종은 이번 편이야말로 좀 드마라틱하게 꾸미고 싶었나 보다. 권상 57에 나오는 일화처럼 단순히 시재를 겨루다가 내가 졌소하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배경적인 설명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증조부 이야기를 하면서 이호민과의 친분을 함께 얘기한다. 이호민과 과거 급제 동기지만 이호민은 장원으로 급제한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고 말이다. 이렇게 배경을 설명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렇다면 당연히 이호민이 홍만식보단 문학적 재능이 탁월하겠군.’이라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게 시험 제도가 가지는 힘이고, 그게 일반의 상식이 될 때 시험제도는 권위를 인정받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탕춘대에 모여 시를 짓게 되었을 때 증조부가 먼저 시를 지었고 그때 함께 했던 급제자들은 그 시를 보자마자, 마치 요리왕비룡에서 음식을 먹자마자 천둥번개가 치며 우오오오~ 천상의 맛이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써보기도 전에 붓을 던지며 내가 졌소!’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매우 드라마틱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구성한 데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부분이 있어서 일 것이다. 자신의 증조부를 무작정 추켜 세워봐야 사람들에겐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비난만 듣고 오히려 증조부에게도 폐를 끼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바로 시적 재능의 우뚝함만을 표현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붓을 던질 정도로 인정한 상황을 묘사하며 저는 추켜세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 정황이 정말 그랬다니깐요.’라고 조금만 목소리로 말하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다.

 

 

 

요리왕 비룡을 보면 가장 생각나는 장면처럼 이 시에서 구성된 이야기도 이런 스토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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