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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6. 힘을 지닌 시의 특징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6. 힘을 지닌 시의 특징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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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지닌 시의 특징

 

 

소화시평권하 26글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문학론을 담고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은 이 글을 읽는 순간 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계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이 힘을 지니려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거나 간접체험일지라도 무수히 고민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리거나 할 때다. 그래서 국토종단을 다녀와선 쓴 글들이나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쓴 글들은 경험에 기반하여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내용이 알찰 수밖에 없고 읽는 사람도 그 경험에 장에 초대되어 그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글들이, 모든 작품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진실성을 얻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간접체험을 통해 더 너른 세상을 누비고,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며 생각을 넓히고 활동반경을 확장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 타츠루쌤의 공생의 필살기나 김형술쌤의 한시 특강과 같은 강의들은 맛난 강의였다. 물론 내용은 어려웠고 한 번 듣는 것만으로 그 내용을 전부 수용하긴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어렵다고 이해하지 않으려 하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기피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껏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하고 자신의 기존 지식과 버무리려 노력한다면 그 안에서 진실한 이야기가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이야기엔 힘이 실리고 그걸 읽는 사람은 그 이야기에서 자신을 향한 메시지가 뭔지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힘은 진실한 자기 고백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된다. 있어 보이기 위해 속이지 말고, 남의 지식을 빌려다가 내 것 인양 하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을 때 글이 힘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호민은 갑자기 내리는 비를 보고 한시를 지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실제 경험이었고 그 경험 속에서 순간 스치는 내면의 꿈틀거림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글이란 내가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그 글이 나를 향해 이건 써야만 할 걸하고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갖게 되는 감성은 내가 글을 쓴다는 표현보단 글이 나를 통해 써진다는 감성이다. 마치 미켈란젤로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어요.”라고 말하며 피에타라는 석상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처럼 이호민도 써야 한다는 느낌보단 직접 본 광경이 쓰지 않곤 못 배길 걸하고 외쳤던 것이고, 그 때문에 붓을 빼어 들고선 일필휘지로 한 구절을 지은 것이다.

 

하지만 한시엔 일정한 방식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한 구절이 지어졌다면 그 구절과 대구(對句)를 맞추기 위해 출구(出句)를 짓는 것이다. 같은 형식의 구절을 지어 두 구절을 대비시키며 내용을 보강하고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형식에 따라 이호민도 고민하다가 결국 출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山雨落窓多 산비 창에 떨어져 요란하네.
磵流穿竹細 냇물은 대숲 지나 가녀리게 흐르네.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두 구절로 이루어진 시를 이산해에게 보냈는데, 이산해는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라는 구절에만 비평점을 달아서 보내준 것이다. 아마 이걸 보는 순간 이호민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안목이 있는 내 친구라니까~’라는 뿌듯한 마음도 스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직접 확인해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참 시간이 흐르고 함께 만나게 됐을 때 왜 그 구절에만 체크를 했는지 물으니,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공은 필시 진경을 만났을 것인데, 먼저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라는 구절을 얻었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추후에 완성되었을 것이니, 이 한 편의 참된 뜻이 모두 이 구절에 있기 때문입니다.

公必値眞境, 先得此句. 而餘皆追後成之. 一篇眞意都在此句故耳

 

 

이산해는 시를 읽는 순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진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쓰여질 수밖에 없었던 시구와 대구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쥐어 짜내며 써내야 했던 시구에 대해 말이다. 그건 마치 나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자연히 나를 통해 쓰여지고 싶은 글들과 레포트든 투고하는 글이든 상황에 맞춰 써내야 하는 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글엔 생기발랄한 꿈틀거림과 설렘이 담기게 마련이지만, 후자의 글엔 억지로 쥐어 짠 듯한 그래서 무언가 자꾸 걸리는 느낌이 담기게 되니 말이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시의 감식안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지어도 될 것이다. ‘시의 감식안이란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감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조각하며 필요 없는 부분만 없앴더니 완성됐다고 했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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