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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50. 한시엔 정답이 아닌 관점만이 있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50. 한시엔 정답이 아닌 관점만이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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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엔 정답이 아닌 관점만이 있다

 

 

소화시평권하 50엔 면앙정에 올라 제호와 동악이 한시 대결을 했고 두 시에 대해 제호 양경우는 동악의 시가 더 좋다고 평가했다. 여기까지 글을 보고 나면 단순히 이안눌의 시가 양경우의 시보다 좋았구나라는 결론이 지어지게 된다. 하지만 보통의 영화가 그렇듯 반전의 묘미가 잘 살 때 그 영화가 남다르게 보이고 다시 처음부터 곱씹으며 보고 싶어지듯, 이 글에서도 반전을 숨겨놓아 글을 읽는 맛을 배가 시키고 있다. 그건 바로 홍만종의 평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양경우는 이안눌의 시가 자신의 시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했던 반면에, 홍만종은 그런 얘기를 거절하며 양경우의 시가 훨씬 낫다고 매우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만종은 동악의 시는 비록 원만하게 전환되어 흠이 없는 듯하나, 끝내 제호 시의 맑고 신선하며 우뚝한 것만 못하다[雖似圓轉無欠, 終不如霽湖淸新突兀].’라고 결론지으며 양경우의 시를 더 높게 평가했다. 이런 식의 평가가 나올 때 한시를 더 이상 쓰지 않는 풍토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느낌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안눌의 시는 어디가 원만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양경우의 시는 어디가 신선하며 우뚝하다는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야말로 한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교수님은 정자를 묘사하는 방법엔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정자에 올라 그 광경을 묘사하는 방법(박은의 시가 대표적임)이 있으며, 둘째는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모든 걸 상상에 맡기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렇다면 제호의 시는 광경을 묘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고, 동악의 시는 상상에 맡기는 방식을 택한 것이란 걸 알 수가 있다. 그러면서 청신하다는 표현에 대해 광경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있기 때문에 억세지 않고 뻣뻣하지 않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우뚝하다는 표현에 대해선 평평한 평야와 그 가운데 우뚝하게 솟아난 산을 대조하여 묘사함으로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거기다가 조심스레 한 가지 내용을 더 덧붙여주셨다. 그건 다름 아닌 이안눌 자체가 의고파 시인으로 이번 시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이미 있는 좋은 시구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기 때문에 홍만종의 입장(그렇다면 홍만종은 의고주의를 비판한 김창협의 시선에 가까운 것인가?)에선 핍진하게 묘사하고 그 상황을 새롭게 묘사해낼 수 있는 양경우의 시가 훨씬 좋아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홍만종의 한시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시 자체가 담고 있는 분위기를 함께 보다 보니, 홍만종의 생각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어떤 시가 더 좋냐는 문제는 개인의 시적 미감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관점으로 그리고 각자의 미감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난 두 시 중에 양경우의 시가 더 좋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낯선 공간을 동경하게 만들고 가보고 싶게 만드는 그 매력에 난 양경우의 시가 더 좋았다.

 

 

 

 

시를 볼 때 정답이 아닌 자시의 시각에서 무엇이 보이나 느껴보면 된다. 이번 편은 그걸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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