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에서 펼쳐진 제호와 동악의 한시 대결
『소화시평』 권하 50번의 주인공은 양경우와 이안눌이다. 양경우에 대한 글은 이미 권상 37번에서 다뤘었다. 그 글을 읽으며 한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그 경치가 그대로 그려지는 걸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안눌 같은 경우는 작년 3월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승 정철, 그리고 친구인 권필과의 추억을 글로 정리하며 좀 더 가까운 사람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치 마주치지 않던 평행선처럼 느껴졌던 두 사람이 이번 글에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양경우의 말을 통해 상황과 서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첨부하고 그런 평가에 대하 홍만종 자신의 평가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시화의 내용들을 통해 우리와는 일면식도 없는 과거의 사람들은 마치 현재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처럼 살아나고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된다. 그들의 일화엔 인간적인 정감들이 한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 절친이었던 동악과 석주. 동악이 석주에 대해 곡하며 쓴 만시는 가슴을 적신다.
담양에 있는 면앙정에 두 사람은 함께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의 감회를 시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조선시대 문학인들의 운치라 할 수 있지만, 나태함과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그들도 이런 경쟁적인 상황에 내몰리면 ‘남보다 빨리 내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경쟁심이 발동하는 모양이다.
殘照欲沈平楚闊 | 석양이 지려해서 평야가 광활하고 |
太虛無閡衆峯高 | 하늘이 가없어서 뭇 봉우리 높구나. |
이안눌이 짓기도 전에 양경우는 먼저 시를 지었고 보란 듯이 먼저 읊은 것이다. 아마 시를 읊던 양경우의 자세는 매우 득의양양했을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양경우는 ‘당돌하게 먼저 지었다’라고 하거나 ‘빼어난 시어를 얻었다고 생각했다’라거나 하는 말을 쓰고 있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 자체가 자신감이 한 가득 어린 느낌이기 때문이다.
西望川原何處盡 | 서쪽으로 바라보니 천의 근원이 어디서 끝날까? |
南來形勝此亭高 | 남쪽으로 오니 명승지는 이 정자가 최고라네. |
보통 이렇게 선수를 치거나, 더욱이 잘 된 시를 짓게 되면 그 다음 사람은 주눅이 들어 ‘내가 졌소’라고 외치며 두 손 두 발 다 들만 한데도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양경우만의 시가 있듯, 이안눌만의 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개성이 드러났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안눌도 자신의 시를 꿀리지 않고 읊기 시작했다.
이 시에 대해 양경우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죽하면 ‘모과처럼 볼품없는 나의 시를 던져줬더니 귀한 옥 같은 귀한 시 한 편으로 보답해줬네[投以木瓜, 報之瓊琚]’라는 시경의 시까지 끌어와 평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자신이 지은 시도 엄청나게 애를 써서 지은 것이지만, 그에 꿀리지 않고 더 갈고 다듬어 새롭게 시를 지어낸 이안눌이야말로 대단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멋을 지닌 사내라는 인증이기도 했던 것이다.
▲ 면앙정에 함께 올라 서로의 시재를 펼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따뜻하게 느껴진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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