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책을 보고 마음을 비움으로 완미하라
소완정기(素玩亭記)
박지원(朴趾源)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문제점
完山李洛瑞, 扁其貯書之室曰素玩, 而請記於余.
余詰之曰: “夫魚游水中, 目不見水者, 何也? 所見者皆水, 則猶無水也. 今洛瑞之書盈棟而充架, 前後左右無非書也, 猶魚之游水. 雖效專於董生, 助記於張君, 借誦於東方, 將無以自得矣, 其可乎?”
책에서 둘러싸인 환경에서 나오라
洛瑞驚曰: “然則將奈何?”
余曰: “子未見夫索物者乎? 瞻前則失後, 顧左則遺右. 何則? 坐在室中, 身與物相掩, 眼與空相逼. 故爾莫若身處室外, 穴牖而窺之, 一目之專, 盡擧室中之物矣.”
洛瑞謝曰: “是夫子挈我以約也.”
해가 불꽃이 되려면 관조를 통해 모아져야 한다
余又曰: “子旣已知約之道矣. 又吾敎子, 以不以目視之, 以心照之可乎. 夫日者, 太陽也. 衣被四海, 化育萬物, 濕照之而成燥, 闇受之而生明. 然而不能爇木而鎔金者, 何也? 光遍而精散故爾. 若夫收萬里之遍照, 聚片隙之容光, 承玻璃之圓珠, 規精光以如豆, 初亭毒而晶晶, 倐騰焰而熊熊者, 何也? 光專而不散, 精聚而爲一故爾.”
洛瑞謝曰: “是夫子警我以悟也.”
평소엔 완미하는 방법은 비움에 있다
余又曰: “夫散在天地之間者, 皆此書之精. 則固非逼礙之觀, 而所可求之於一室之中也. 故包犧氏之觀文也, 曰: ‘仰而觀乎天, 俯而察乎地.’ 孔子大其觀, 文而係之曰: ‘㞐則玩其辭.’ 夫玩者, 豈目視而審之哉? 口以味之, 則得其旨矣; 耳而聽之, 則得其音矣; 心以會之, 則得其精矣.
今子穴牖而專之於目, 承珠而悟之於心矣. 雖然, 室牖非虛, 則不能受明; 晶珠非虛, 則不能聚精. 夫明志之道, 固在於虛而受物, 澹而無私, 此其所以素玩也歟.”
洛瑞曰: “吾將付諸壁, 子其書之.” 遂爲之書. 『燕巖集』 卷之三
해석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문제점
完山李洛瑞, 扁其貯書之室曰素玩, 而請記於余.
완산 이서구가 책을 쌓아둔 방에 ‘소완(素玩)’이란 편액을 걸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余詰之曰: “夫魚游水中, 目不見水者, 何也?
내가 물었다. “물고기 물속에서 노니는데 눈으로 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所見者皆水, 則猶無水也.
보이는 것이 모두 물이니, 물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네.
今洛瑞之書盈棟而充架,
지금 낙서의 책이 기둥에 가득 찼고 선반에 꽉 차서
前後左右無非書也, 猶魚之游水.
전후좌우가 책이 아님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서 노니는 것 같네.
雖效專於董生, 助記於張君,
비록 동중서【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춘추(春秋)』에 정통했으며, 「천인삼책(天人三策)」이라는 글로 무제(武帝)에게 발탁되었다. 저서로는 『춘추번로(春秋繁露)』가 전한다. 그는 3년 동안 외출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학문에만 전념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이 고사를 말한 것이다】에게서 학문에 전심하는 것을 본받고, 장화【장화(張華 : 232~300): 진(晉) 나라의 유력한 정치가로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문인ㆍ학자로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기억력이 탁월하기로 당대 제일이었다고 한다.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있을 때 진 무제(晉武帝)가 한(漢) 나라의 궁실 제도와 건장궁(建章宮)에 관해 묻자 장화는 땅에다 지도를 그려가며 청산유수로 응답하여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수레 30대에 실은 책을 읽고 나서 『박물지(博物志)』 400권을 지었는데, 무제가 번거롭다고 하여 10권으로 줄였다고 한다. 장화를 ‘장군’이라 호칭한 것은 그가 광무현후(廣武縣侯)에 봉해졌기 때문이다】에게 기억력을 도움 받으며,
借誦於東方, 將無以自得矣, 其可乎?”
동방삭【한 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으로, 관직은 낮았지만 해학(諧謔)과 변설(辯舌), 직언(直言) 등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책들을 좋아하고 경술(經術)을 좋아하였으며, 야사ㆍ전기와 잡서들까지 박람(博覽)하였다. 또한 시(詩)ㆍ서(書)ㆍ백가(百家)의 말들을 암송하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에 암기력을 빌리더라도 장차 스스로 얻을 수 없을 것이니, 괜찮겠는가?”
책에서 둘러싸인 환경에서 나오라
洛瑞驚曰: “然則將奈何?”
낙서가 놀라며 “그러하다면 장차 어찌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余曰: “子未見夫索物者乎?
내가 말했다. “자네는 물건을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瞻前則失後, 顧左則遺右.
앞을 보면 뒤를 보지 못하고,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보지 못하지.
何則? 坐在室中,
왜인가? 방 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身與物相掩, 眼與空相逼.
몸과 사물이 서로 가리고 눈과 공간이 서로 가깝기 때문이네.
故爾莫若身處室外, 穴牖而窺之,
그렇기 때문에 너는 몸을 방 밖에 두고 창문에 구멍을 내어 그것을 엿보는 것만 못하니,
一目之專, 盡擧室中之物矣.”
한쪽 눈의 온전함으로 방 안의 물건을 다 거론할 수 있을 것이네.”
洛瑞謝曰: “是夫子挈我以約也.”
낙서가 감사해하며 “이것은 선생님이 저를 요약함으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해가 불꽃이 되려면 관조를 통해 모아져야 한다
余又曰: “子旣已知約之道矣.
내가 또한 말했다. “자네는 이미 요약의 도를 알았네.
又吾敎子, 以不以目視之, 以心照之可乎.
또한 나는 자네를 가르치니,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관조하면 괜찮다네.
夫日者, 太陽也.
해라는 것은 왕성한 양기라네.
衣被四海, 化育萬物,
사해에 혜택을 입혀주고 만물을 화육하며
濕照之而成燥, 闇受之而生明.
습한 곳이 해가 비치면 마르게 되고 어두운 곳이 햇볕을 받으면 밝아지게 되네.
然而不能爇木而鎔金者, 何也?
그러나 나무를 태우거나 쇠를 녹일 수 없는 것은 왜인가?
光遍而精散故爾.
빛이 두루 퍼져 정기가 흩어지기 때문이네.
若夫收萬里之遍照, 聚片隙之容光,
만약 만 리에 두루 퍼져 비춰진 것을 거두고 틈으로 받아들인 빛을 모아,
承玻璃之圓珠, 規精光以如豆,
유리의 둥근 구슬로 받아 정밀한 빛으로 한정하여 콩알과 같아지면,
初亭毒而晶晶, 倐騰焰而熊熊者, 何也?
처음에는 정기를 모아【정독(亭毒): 노자에 51장에 나오는 말로, 화육이라는 말과 같다】 반짝반짝 빛나다 갑자기 불꽃이 일며 활활 타오르는 건 왜인가?
光專而不散, 精聚而爲一故爾.”
광선이 집중되고 흩어지지 않았으며 정기가 모여 전일해졌기 때문이라네.”
洛瑞謝曰: “是夫子警我以悟也.”
낙서가 감사해하면서 “이것은 선생님이 저를 경계함으로 깨우쳐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평소엔 완미하는 방법은 비움에 있다
余又曰: “夫散在天地之間者, 皆此書之精.
내가 또한 말했다. “천지의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이 모두 이 책들의 정기라네.
則固非逼礙之觀, 而所可求之於一室之中也.
그러니 본디 가까이에서 가려져 보여, 한 방 가운데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故包犧氏之觀文也,
그러므로 포희씨가 문을 관찰할 때【포희씨는 곧 태곳적 중국의 삼황(三皇)의 한 사람인 복희씨(伏羲氏)로, 팔괘(八卦)와 문자〔書契〕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포희씨가 문(文)을 관찰했다고 할 때의 ‘문(文)’은 단순히 문자나 문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천문(天文)과 지문(地文)과 인문(人文)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일월(日月)은 하늘의 문(文)이요, 산천(山川)은 땅의 문이요, 언어는 사람의 문이라고 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易)은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관찰한 것이다.〔仰以觀於天文 俯而察於地理〕”라고 하였고, 또한 계사전 하(繫辞傳下)에 옛날 포희씨가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릴 적에 “위로는 하늘에서 상(象)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에서 법(法)을 관찰하여〔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팔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에
曰: ‘仰而觀乎天, 俯而察乎地.’
‘우러러 하늘을 관찰했고 굽어 땅을 관찰했다.’고 말했고,
孔子大其觀, 文而係之曰:
공자는 그 관찰을 위대하게 여겨 글로 덧붙이며
‘㞐則玩其辭.’
‘머물 때엔 그 말을 완미한다.’고 말했지.
夫玩者, 豈目視而審之哉?
완미한다는 것이 어찌 눈으로만 보아 그것을 살피는 것이겠는가?
口以味之, 則得其旨矣;
입으로 그것을 맛보면 그 맛을 알고,
耳而聽之, 則得其音矣;
귀로 그것을 들으면 그 소리를 알며,
心以會之, 則得其精矣.
마음으로 그것을 회합하면 정수를 아는 것이지.
今子穴牖而專之於目,
지금 자네는 창문에 구멍을 내고 눈으로 집중하며
承珠而悟之於心矣.
유리구슬로 받아들여 마음으로 깨달았다네.
雖然, 室牖非虛, 則不能受明;
비록 그러나 집의 창이 비어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晶珠非虛, 則不能聚精.
유리구슬이 비어있지 않으면 정기를 모으질 못하네.
夫明志之道, 固在於虛而受物,
무릇 뜻을 분명히 하는 방법은 진실로 마음을 비워 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고,
澹而無私, 此其所以素玩也歟.”
담백하게 사사로움이 없는 데에 있으니, 이것이 소완하려는 까닭일 것이네.”
洛瑞曰: “吾將付諸壁, 子其書之.”
낙서가 “제가 장차 벽에 붙여두고자 하니, 선생님께서 그것을 써주십시오.”라고 말했다.
遂爲之書. 『燕巖集』 卷之三
마침내 그를 위해 써줬다.
인용
1.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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