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뱃속 아이의 정체
위와 같은 오독은 감상자의 착각, 즉 상식의 허(虛)에서 말미암은 경우지만, 시구 해석상의 오독일 경우는 그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한 예로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一別年多消息稀 |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
寒垣存沒有誰知 |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
今朝始寄寒衣去 |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
泣送歸時在腹兒 |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었네. |
위 풀이는 『한국 한시(漢詩)』(민음사, 1991)에 수록된 김달진(金達鎭, 1907~1989) 선생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 번 헤어진 뒤 여러 해가 되도록 님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3구에서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님께 겨울옷을 보낸다고 했다. 이 ‘비로소’란 말은 님이 떠난 뒤 처음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고, 아니면 추위가 이미 닥친 뒤인 오늘에서야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전자가 옳겠다. 먼 변방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낙네의 안타까운 심정이 절절하다.
그런데 4구에 가서 갑자기 이야기는 엉뚱하게 전개된다. 남편에게 솜옷을 보내고 울며 돌아올 때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고 하여, 현재 자신이 임신 중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뱃속의 아이는 누구의 아이더란 말인가?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상황이 아닐진대, 그녀는 남편이 수자리 살러 간 사이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불륜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궁금증은 여기에서 한없이 증폭된다. 1구에서 ‘소식이 드물다’고 했으나, ‘희(稀)’가 운자임을 고려한다면 아예 한 번도 소식이 없었다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생사조차 모르는 옛 남편에 대해 무슨 애틋한 정이 있어 새삼 솜옷을 지어 부친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이 여인의 마음은 도무지 종잡을 길 없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사학자 M모 교수는 그의 『신라사연구(新羅史硏究)』라는 책에서, 포은의 이 시를 인용하면서 말했다.
려말(麗末)의 명유(名儒)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시에서 수년간 소식이 없던 남편에게 겨울옷을 보내면서 배 속에 아이를 가졌노라고 인편에 알리는 외설문학적인 작품이 근엄한 유학자의 문집에 있고
아예 이 시를 고려 후기 민간의 문란한 성(性) 풍정(風情)을 투영하고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까지 원용한 바 있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이러한 독법은 어처구니없는 오독이다. 4구는 “울며 돌아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 편에요.”라고 옮겨야 한다. 뱃속에 아이가 있던 시점은 여러 해 전 남편이 수자리 살러 떠나던 당시를 말함이다. 그러니까 그때 뱃속에 있던 그 아이가 아버지의 겨울옷을 가져다주러 변방으로 떠날 만큼 자랐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제 4구는 이 시의 처절한 애원(哀願)을 극도로 농축시킨 표현이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변방으로 아버지를 찾아 심부름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자라도록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 가까운 세월에 남편의 생사조차 알 길 없어 막막하던 여인은, 마침내 마지막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고 한들 과연 찾을 수나 있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모르고, 아들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얼굴도 모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아들과, 그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 그 갈피갈피에 서린 애끊는 슬픔이야 어찌 필설로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시를 놓고, 근엄한 유학자의 입에서까지 서슴없이 이런 외설적인 이야기가 시화(詩話)될 정도로 고려 사회의 성(性) 풍정(風情)이 타락했다고 지적하는 오독(誤讀)을 지하에서 포은이 듣는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인용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2. 오랑캐 땅의 화초
3. 개가 짖는 이유
4. 무지개가 뜬 까닭
5. 백발삼천장
6. 뱃 속 아이의 정체
7. 문에 기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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