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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즐거운 오독, 모호성에 대하여 -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즐거운 오독, 모호성에 대하여 -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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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꿈보다 해몽

 

언어는 가끔씩 오해를 일으킨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화장실 면전(面前)에 이런 스티커가 붙은 적이 있다. “이단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 이른바 이단 종파에서 주장하는 상투적 주장을 환기시킨 뒤, 이에 동조하는 여러 교파의 이름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 이단집단대책위원회라고 써 놓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 단체가 이단을 집단으로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이단집단을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할머니가죽을드신다할머니가 죽을 드신다이냐, 아니면 할머니, 가죽을 드신다이냐. “예수가마귀를쫓는다고 할 때, 예수가 쫓는 것이 마귀인가 까마귀인가? 웃자는 말이지만 일상의 언어는 자칫 듣는 이에게 엉뚱한 상상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등화관제가

실시됐던

지나간

여름

싸이렌 소리에 불이 꺼지자 망쳐진 내 창으로 수천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학 시절 은하수란 제목으로 썼던 습작이다. 서울 하늘에 은하수는 없는 줄 알았다. 80년대 초 어느 여름 등화관제가 실시되던 밤, 불이 꺼지자 서울의 하늘에 황홀하게 내걸리던 은하수를 잊을 수 없다. 지상의 불빛에 질려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은하수. 흔들리던 젊은 날은 그 은하수의 불빛조차도 엉뚱하게 나를 질타하며 노려보던 눈동자로 보였다. ‘망쳐진내 창은 원래 ()이 쳐진내 창의 뜻이었다. 그런데 시를 합평하는 자리에서 친구 녀석 하나가 망쳐진망가져버린[]’으로 읽어 기막힌 표현이라고 감탄하는 바람에 필자는 졸지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아침 신문의 신간 소개를 보니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라는 책이름이 있다. 여기서 그리고그림을 그린다인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인가. 아니면 단순히 ‘and’의 뜻인가. 또는 사람을 그려 놓고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그림으로 그렸다는 것인가? 이 경우 언어는 어느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기를 즐기지 않는다.

 

 

 

불가불가(不可不可)와 김윤식

 

한일합방 당시 합방조인문서에 당시 조정대신들이 자신의 이름을 쓰고 가부(可不)를 적었는데, 김윤식(金允植)이 쓴 것은 불가불가(不可不可)’라는 네 글자였다. 찬성한다는 말인가? 반대한다는 말인가? ‘불가(不可)! 불가(不可)!’로 읽으면 합방을 결사반대한다는 말이니 만고의 충신이요, “불가하다고 하는 것이 불가하다로 읽으면, 합방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임을 강조한 것으로 천하의 매국노가 된다. 불가불(不可不) ()’로 읽으면 어떨까? ‘불가불(不可不)’이나 부득불(不得不)’어쩔 수 없어서’,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의 뜻이니, ‘속으로는 반대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찬성한다는 의미로 회색분자, 박쥐의 언행이다. 이 말의 해석을 두고 당시 말들이 시끄러웠다. 합방이 되자 그는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으며, 나아가 자신의 문집으로 일본 학술원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으니 매국노의 소행이 분명하나, 뒤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의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작위 또한 박탈당했다. 일생의 출처 행적이 그의 말과 어찌 그리 방불(髣髴)한가.

 

 

 

왕양명의 해석을 받아들인 윤휴

 

그런가 하면 이 띄어쓰기가 사람을 잡은 일도 있었다. 논어(論語)』 「향당(鄕黨)에는 廐焚, 退朝曰: ‘傷人乎?’ 不問馬.”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굿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상했는가?’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로 새긴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공자께서 말을 사랑치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상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물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라 하고, 대개 사람을 귀히 여기고 가축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자 왕양명(王陽明)은 이를 廐焚, 子退朝, : ‘傷人乎不?’ 問馬.”로 보아, 뒷부분을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 하시고는 말을 물으셨다.”고 풀이하였다. 앞서는 사람만 묻고 말은 묻지 않은 것이었는데, 띄어쓰기를 이렇게 하고 보니, 사람을 먼저 묻고 나서 말을 나중 물으신 것이 된다. 주자학(朱子學)의 서슬이 푸르던 조선 후기에 백호(白湖) 윤휴(尹鑴)는 왕양명(王陽明)의 설을 채용하여, 성인이 사람만 사랑하고 말을 사랑치 않을 까닭이 없으나 인수지변(人獸之辨)이 있는지라 사람을 먼저 하고 짐승을 나중 물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자(朱子)의 풀이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경전에 대한 주자(朱子)의 여러 해석에 줄곧 의문을 제기하던 그는 마침내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낙인이 찍혀 죄를 입어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띄어쓰기가 사람을 잡은 이야기다. 이 시기 이데올로기화한 주자학은 이미 해석의 융통성조차 인정할 수 없는 맹목적 권위로 중무장해 있었던 것이다.

 

 

 

 

인용

목차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2. 오랑캐 땅의 화초

3. 개가 짖는 이유

4. 무지개가 뜬 까닭

5. 백발삼천장

6. 뱃 속 아이의 정체

7. 문에 기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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