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꿈보다 해몽
언어는 가끔씩 오해를 일으킨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화장실 면전(面前)에 이런 스티커가 붙은 적이 있다. “이단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 이른바 이단 종파에서 주장하는 상투적 주장을 환기시킨 뒤, 이에 동조하는 여러 교파의 이름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김○○ 이단집단대책위원회’라고 써 놓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 단체가 이단을 집단으로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이단집단을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할머니가죽을드신다”는 “할머니가 죽을 드신다”이냐, 아니면 “할머니, 가죽을 드신다”이냐. “예수가마귀를쫓는다”고 할 때, 예수가 쫓는 것이 마귀인가 까마귀인가? 웃자는 말이지만 일상의 언어는 자칫 듣는 이에게 엉뚱한 상상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등화관제가
실시됐던
지나간
여름
밤
싸이렌 소리에 불이 꺼지자 망쳐진 내 창으로 수천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학 시절 「은하수」란 제목으로 썼던 습작이다. 서울 하늘에 은하수는 없는 줄 알았다. 80년대 초 어느 여름 등화관제가 실시되던 밤, 불이 꺼지자 서울의 하늘에 황홀하게 내걸리던 은하수를 잊을 수 없다. 지상의 불빛에 질려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은하수. 흔들리던 젊은 날은 그 은하수의 불빛조차도 엉뚱하게 나를 질타하며 노려보던 눈동자로 보였다. ‘망쳐진’ 내 창은 원래 ‘망(網)이 쳐진’ 내 창의 뜻이었다. 그런데 시를 합평하는 자리에서 친구 녀석 하나가 ‘망쳐진’을 ‘망가져버린[亡]’으로 읽어 기막힌 표현이라고 감탄하는 바람에 필자는 졸지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아침 신문의 신간 소개를 보니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라는 책이름이 있다. 여기서 ‘그리고’는 ‘그림을 그린다’인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인가. 아니면 단순히 ‘and’의 뜻인가. 또는 사람을 그려 놓고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그림으로 그렸다는 것인가? 이 경우 언어는 어느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기를 즐기지 않는다.
불가불가(不可不可)와 김윤식
한일합방 당시 합방조인문서에 당시 조정대신들이 자신의 이름을 쓰고 가부(可不)를 적었는데, 김윤식(金允植)이 쓴 것은 ‘불가불가(不可不可)’라는 네 글자였다. 찬성한다는 말인가? 반대한다는 말인가? ‘불가(不可)! 불가(不可)!’로 읽으면 합방을 결사반대한다는 말이니 만고의 충신이요, “불가하다고 하는 것이 불가하다”로 읽으면, 합방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임을 강조한 것으로 천하의 매국노가 된다. 또 ‘불가불(不可不) 가(可)’로 읽으면 어떨까? ‘불가불(不可不)’이나 ‘부득불(不得不)’은 ‘어쩔 수 없어서’,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의 뜻이니, ‘속으로는 반대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찬성한다’는 의미로 회색분자, 박쥐의 언행이다. 이 말의 해석을 두고 당시 말들이 시끄러웠다. 합방이 되자 그는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으며, 나아가 자신의 문집으로 일본 학술원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으니 매국노의 소행이 분명하나, 뒤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의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여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작위 또한 박탈당했다. 일생의 출처 행적이 그의 말과 어찌 그리 방불(髣髴)한가.
왕양명의 해석을 받아들인 윤휴
그런가 하면 이 띄어쓰기가 사람을 잡은 일도 있었다. 『논어(論語)』 「향당(鄕黨)」에는 “廐焚, 退朝曰: ‘傷人乎?’ 不問馬.”라는 구절이 나온다. “마굿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상했는가?’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로 새긴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공자께서 말을 사랑치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상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물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라 하고, 대개 사람을 귀히 여기고 가축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자 왕양명(王陽明)은 이를 “廐焚, 子退朝, 曰: ‘傷人乎不?’ 問馬.”로 보아, 뒷부분을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 하시고는 말을 물으셨다.”고 풀이하였다. 앞서는 사람만 묻고 말은 묻지 않은 것이었는데, 띄어쓰기를 이렇게 하고 보니, 사람을 먼저 묻고 나서 말을 나중 물으신 것이 된다. 주자학(朱子學)의 서슬이 푸르던 조선 후기에 백호(白湖) 윤휴(尹鑴)는 왕양명(王陽明)의 설을 채용하여, 성인이 사람만 사랑하고 말을 사랑치 않을 까닭이 없으나 인수지변(人獸之辨)이 있는지라 사람을 먼저 하고 짐승을 나중 물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자(朱子)의 풀이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경전에 대한 주자(朱子)의 여러 해석에 줄곧 의문을 제기하던 그는 마침내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낙인이 찍혀 죄를 입어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띄어쓰기가 사람을 잡은 이야기다. 이 시기 이데올로기화한 주자학은 이미 해석의 융통성조차 인정할 수 없는 맹목적 권위로 중무장해 있었던 것이다.
2. 오랑캐 땅의 화초
이렇듯 일상의 언어에서 의미는 어느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그른 것이 되지만, 시의 언어에서는 꼭 그렇지가 않다. 이 대목에서 모호성(Ambigu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모호성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애매와 모호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와 함축이 된다.
모호성의 문제가 시학(詩學)의 관심사가 된 것은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엠슨(William Empson, 1906~1984)이 「모호성의 일곱 가지 유형」이란 논문에서 시에서 모호성이 발생하는 7가지 유형을 소개하면서부터다. ‘ambiguity’라는 말은 ‘두 길로 몰고 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어휘나 구절들은 대개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포용력과 융통성을 지닌 문맥을 형성한다. 특히 한시 언어에 있어 이러한 점은 놀라울 정도로 잘 발휘된다. 한편의 뛰어난 시는 어떤 의미에서 언어의 포용력과 융통성을 극대화시킨 시라고 말해도 괜찮다.
한(漢) 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 왕소군(王昭君)은 절세의 미녀였다. 원제는 궁녀가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 없었으므로, 화공을 시켜 그녀들의 얼굴을 그려 바치게 하고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궁녀를 낙점하였다. 궁녀들은 당시 궁중화가였던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주면서 자신의 얼굴을 예쁘게 그려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도도했던 왕소군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으므로, 이에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몹시 추하게 그려 임금에게 보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에게는 한 번도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漢) 나라는 역대로 흉노문제로 늘 골치를 썩였는데, 그때 마침 흉노왕 호한야(胡韓邪)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 삼을 것을 청하므로, 원제는 못생긴 왕소군(王昭君)을 그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왕소군이 장차 오랑캐 땅으로 떠나려는 즈음, 왕이 그녀를 보니 여러 궁녀들 가운데 제일가는 미인이었다. 그녀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쓰지 않아 추하게 그려진 사정을 뒤늦게 안 왕은,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렸다. 마침내 그녀는 쓸쓸히 흉노 땅에 들어가 마음에도 없는 오랑캐의 왕비가 되었다. 그녀의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는 역대 시인들에게 회자되어, 이백(李白)은 「왕소군(王昭君)」이란 시에서 그녀의 떠나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頰 | 왕소군 옥안장에 치마자락 스치며 말에 오르자 붉은 빰엔 눈물지네. |
今日漢宮人 明朝胡地妾 | 오늘 한나라 궁녀의 몸이 내일 아침 오랑캐 땅, 첩의 신세라. |
졸지에 흉노의 땅에 와 흉노왕의 왕비가 된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답답함 속에 버림받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봄을 맞았다. 그 느낌을 옛 시인은 시로 다음과 같이 읊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
달력은 꽃 피는 시절이 벌써 지났건만 삭막한 북방에는 꽃이 피질 않으니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 시를 달리 새겨 다음과 같이 보기도 한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랴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
오랑캐 땅이라고 한들 왜 화초가 없겠는가. 다만 마음을 부치지 못하는 이역 땅에서 꽃을 대하니, 봄은 왔어도 봄날의 설레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가운데 어떻게 읽는 것이 옳을까? 아마도 후자로 읽는 것이 기막힌 그녀의 심정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구절은 80년 봄 당시, 모 정치가가 군부의 서슬 푸른 위세를 빗대어 말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던 사연 많은 구절이다. 뒷날 그녀는 죽어 흉노의 땅에 묻히었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 땅의 풀이 모두 시들었어도 그녀 무덤의 풀만은 늘 푸르렀다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의 일이다. 어떤 원님이 향시(鄕試)를 보는데, 시제(詩題)를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로 내걸었다. 응시한 자들은 모두 왕소군(王昭君)의 고사를 들어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막상 장원에 뽑힌 작품은 덩그러니 제목인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를 네 번 반복해서 쓴 한 서생의 작품이었다.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 하나 오랑캐 땅엔들 화초가 없을까? |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만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도다. |
어떤가? 같은 글자의 풀이가 모두 제각금이다. 한문 해석의 모호성을 말할 때 인용하곤 하는 이야기이다. 위 시는 흔히 김삿갓의 시로 둔갑하여 알려져 있다.
3. 개가 짖는 이유
해 그림자와 달 그림자
老身倦馬河堤永 | 늙은 몸 지친 말 방죽은 길어 |
踏盡黃楡綠槐影 | 느릅나무 지나가자 회나무 그림자라. |
늙은 몸으로 지친 말을 끌고 가던 나그네는 끝없이 방죽으로 이어진 길이 고단하기만 했다. 한동안 길옆으로 느릅나무 행렬이 줄을 잇더니, 느릅나무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짙푸른 회나무 그림자가 나그네 위로 드리운다. 가도 가도 방죽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송나라 때 유송(劉憽)이 소동파(蘇東坡)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대의 시가 아닌가?”
“그렇네만은.”
“그렇다면 이것은 해의 그림자인가, 달의 그림자인가?”
“한퇴지(韓退之)가 「성남연구(城南聯句)」의 첫 구에 쓴 ‘대 그림자에 금가루 부서지고[竹影金朠碎]’에서도 언제 해의 그림자니 달의 그림자니 말하였던가?”
둘은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지친 말의 터덜대는 걸음 위로 비쳐들던 그림자는 저물녘 석양의 그림자라야 옳은가, 아니면 해진 뒤 잎새 사이로 스며든 달그림자라야 좋을까. 소동파(蘇東坡)는 무어라고 말해주는 대신 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말았다. 설사 둘 다라면 어떠랴. 『도산청화(道山淸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빗소리와 낙엽소리
또 당(唐) 나라 때 무가상인(無可上人)의 시 「추기종형가도(秋寄從兄賈島)」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聽雨寒更盡 開門落葉深 | 빗소리 듣노라 찬 밤 새우고 문 열자 낙엽만 수북 쌓였네. |
그렇다면 그가 밤새 들은 소리는 빗소리였을까, 아니면 낙엽 지는 소리였을까? 빗소리였다면 그 비를 맞고 나무는 제 잎을 죄다 떨군 것이겠으나, 앞서도 소개한 바 있던 송강(松江)의 「산사야음(山寺夜吟)」을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낙엽 지는 소리를 착각한 것으로 봄이 더 낫겠다. 가을 날 아침 밤새 내린 비로 땅이 온통 추적추적할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었을 때 낙엽만 잔뜩 쌓여 있음을 확인하는 무연함이라니.
달과 개
조선조의 문인 이경전(李慶全)이 9살 때 일이다. 그의 할아버지 이산해(李山海)가 손주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눈앞의 풍경을 읊게 하였다.
一犬吠二犬吠 | 첫째 개가 짖어대자 둘째 개가 짖어대네. |
三犬亦隨吠 | 셋째 개도 따라 짖으니 |
人乎虎乎風聲乎 | 사람일까, 범일까, 바람 소릴까? |
童言山月正如燭 | 산달은 촛불처럼 환히 밝고요 |
半庭唯有鳴寒梧 | 뜨락에는 오동잎새 소리뿐예요. |
가을밤 산골 마을의 고즈넉한 광경이다. 한 마리가 짖어대자 동네 개가 모두 짖는다. 무슨 일일까? 뉘 집에 도둑이라도 들었는가, 아니면 범이라도 나타났단 말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바람 소리에 놀라 저리 짖는가? 바깥 좀 내다보라는 어른 말씀에 꼬맹이의 대답이 맹랑하다. 산달이 촛불처럼 환히 밝다는 말씀이다. 뜨락의 오동 잎새가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뿐이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온 것도 범이 온 것도, 그렇다고 세찬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니, 그저 동네 개들은 달빛을 보며 저리 짖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은 환한 달밤이면 제 몸을 비비꼬며 달빛을 보며 컹컹 짖어댄다. 한편 시인은 오동잎이 바람에 바스락대는 소리가 자꾸만 멀리서 신발을 끌며 걸어오는 ‘예리성(曳履聲)’으로만 들려, 누가 오는가 싶어 온 동네 개가 저리 짖어대는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결코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 여운을 즐기려는 까닭이다.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실려 있다.
천금(千錦)의 시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뎃 개 짖어 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뎌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즈져 므삼하리오.
의경(意境)이 한 솜씨에서 나온 것만 같다.
萬事悠悠一笑揮 | 온갖 일 유유하게 한 웃음에 부쳐두고 |
草堂春雨掩松扉 | 초당 봄 비 속에 사립을 닫아 거네. |
生憎簾外新歸燕 | 얄밉구나 주렴 밖 강남 갔던 제비야 |
似向閑人說是非 | 한가한 사람더러 시비(是非)를 말하다니. |
이식(李植)의 「영신연(咏新燕)」이란 작품이다. 세상일을 한 웃음에 부쳐두고 봄 비 속에 사립마저 닫아걸었다. 야인(野人)의 안온한 삶 속에도 계절의 섭리는 어김없이 찾아들어, 강남 갔던 제비들은 봄비에 몸을 푼 진흙을 물어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느라 부산스럽다. 4구가 약간 의아할 것이다. 제비가 무슨 시비(是非)를 말했더란 말인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그 소리를, 사립을 닫아건 것만으로도 시원치 않아 발을 치고 들어앉은 시인은 시시비비(是是非非) 시시비비(是是非非) 쯤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염결(廉潔)을 향한 자의식도 이쯤되면 지나치다 하겠지만, 새소리의 음사(音似)로 부세(浮世)의 작태(作態)에 오불관언(吾不關焉) 하겠단 주제를 담아내는 재치는 대가(大家)의 기림이 아깝지 않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 한 구절이 있다. 원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꼭 제비가 지지배배 우는 소리와 비슷한 지라, 예전에는 제비가 『논어(論語)』를 안다고 하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모호성은 문화적 교양이나 문학 관습을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즉각적으로 손뼉을 터져 나왔을 대목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 장승업(張承業),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19세기, 123.4X31cm, 선문대박물관.
저 개야, 짖지 마라. 달빛 환한 밤마다 동네 개들이 다 짖는다. 넓은 오동잎에 가린 달빛에 온 동네가 시끄럽다. 옛 그림의 친숙한 소재 가운데 하나다.
4. 무지개가 뜬 까닭
한시에서 모호성은 흔히 문장 성분이 생략되어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다음은 이달(李達)의 「제김양송화첩(題金養松畵帖)」이란 작품이다.
一行二行雁 萬點千點山 | 한 줄 두 줄 기러기 만 점 천 점 산. |
三江七澤外 洞庭瀟湘間 | 삼강(三江) 칠택(七澤) 밖 동정(洞庭) 소상(瀟湘) 사이. |
한마디로 번역을 거부하는 시다. 말이 번역이지 글자를 그대로 옮기고 보면 아무런 서술어 없이 그저 명사를 토막토막 이어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화면에는 아득한 점으로 한 줄인지 두 줄인지도 분명치 않게 기러기 떼가 날고 있고, 그 너머로 만점인지 천점인지 이루 헤일 수도 없는 산들이 연이어 있다. 그들이 날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삼강(三江)과 칠택(七澤)의 바깥인가, 아니면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의 사이인가? 이렇게 풀이해 놓고 단어 사이 빈칸에 감춰둔 서술어를 채우면 이쯤 될 것이다.
一行二行雁 萬點千點山 | 한 줄인지 두 줄인지 기러기 날고 만 점인지 천 점인지 산도 많구나. |
三江七澤外 洞庭瀟湘間 | 삼강칠택(三江七澤) 그 너머 어딘가 싶고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江)의 사이 같기도. |
제화시(題畵詩)는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화의(畵意)에 시인의 의경(意境)을 얹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우선 화면 한 구석에 기러기 떼가 한 줄인지 두 줄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 아래로는 구름 너머로 소실되는 끝없는 연봉(連峯)들이 펼쳐져 있다. 산들의 사이에는 강물도 흐르고 호수도 떠있다. 그러나 거기가 정작 삼강(三江)인지 칠택(七澤)인지 아니면 그 밖인지, 동정호(洞庭湖)인지 소상강(瀟湘江)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쉽게 말하면 위 시는 이놈의 그림이 도대체 어디를 그려 놓았는지 가늠치 못하겠다는 것이다. 실경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묘한 맛이 있다.
동요에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란 노랫말을 떠올리는 시경(詩境)이다. 아득한 산과 강 저 멀리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일(一)’과 ‘양(兩)’, 그리고 ‘만(萬)’과 ‘천(千)’으로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배열에 재치를 부렸고, 또 ‘삼(三)’과 ‘칠(七)’의 변화를 얹어서 이래저래 숫자의 묘미를 한껏 살린 작품이다. ‘일행(一行)’과 ‘이행(二行)’의 사이에, ‘만점(萬點)’과 ‘천점(千點)’의 사이에 시인이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을 채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안목에 달린 문제다.
京洛旅遊客 雲山何處家 | 서울을 떠도는 저 나그네야 구름 산 어디메가 그대 집이뇨. |
疎煙生竹徑 細雨落藤花 | 엷은 안개 대숲길에 피어나오고 보슬비 등꽃 위로 떨어집니다. |
역시 이달(李達)의 「차윤서중운(次尹恕中韻)」이란 작품이다. 1.2구의 개방형 언사는 서울을 떠도는 나그네에게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3.4구는 “네! 저희 집은요.”하고 대답해야 할 대목이어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시인은 뚱딴지 같이 “대숲에선 엷은 안개가 피어나고, 보라빛 등꽃 위로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린다”고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실 그는 지금 “제 고향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랍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 시는 옳게 읽히지 않는다.
一鷺踏柳根 一鷺立水中 | 백로 한 마리 버들 뿌리 밟고 서 있고 백로 한 마리 물속에 그냥 서 있네. |
山腹深靑天黑色 | 짙푸른 산 허리 캄캄한 하늘 |
無數白鷺飛翻空 | 무수한 백로가 솟구쳐 난다. |
頑童騎牛亂溪水 | 아이가 소를 타고 시내를 첨벙대자 |
隔溪飛上美人虹 | 시내 저편 무지개는 날아 오르고. |
박지원(朴趾源)의 「도중사청(道中乍晴)」이란 작품이다. 길을 가다가 잠깐 날이 개이고 무지개 뜨는 광경의 묘사이다. 두 마리 백로의 돌올한 묘사로 시상(詩想)을 열었다. 물가에도 백로, 물속에도 백로다. 산허리는 짙푸른데 하늘은 검은빛으로 잔뜩 흐렸다. 잔뜩 흐린 하늘과 푸르다 못해 검은 산빛은 조그만 백로의 흰 깃을 파묻을 듯 압도한다.
그러자 갑자기 한두 마리가 아닌 무수한 백로들이 허공을 번드치며 솟아오른다. 어둡던 하늘이, 우중충하던 산 허리가 온통 흰빛으로 차오른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는 소를 타고 시냇물을 첨벙대며 건너간다. 고요하고 팽팽하던 긴장은 일순에 깨지고, 시내 건너 저편으론 예쁜 무지개가 곱게 걸렸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물가에 백로가 서 있고, 하늘은 잔뜩 찌푸려 어두운데 ‘철없는[頑]’ 꼬마 녀석이 소를 타고 시내를 첨벙대는 바람에 이 고요가 깨져 버렸다. 백로는 난데없는 침입자에 놀라 일제히 허공으로 번드쳐 날아올랐던 것이다. 검푸른 하늘로 날아오른 백로는 찌푸렸던 하늘을 환하게 했고, 그래서 강 저편에서는 무지개가 찬란히 걸린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백로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때와 맞추어 고개 들어 눈에 들어온 먼 하늘이 개어오기 시작했던 것일 뿐이다.
소 탄 아이의 첨벙대는 물장난이 백로를 놀라 깨웠고, 백로의 비상이 다시 날을 개이게 했으니, 무지개는 그 대답인 셈이다. 고요하던 풍경이 아연 생기를 되찾았다. 백로가 솟아올라 환해진 만큼 날이 잠깐 개었다는 발상이 바로 시다. 아이의 첨벙대는 물장난이 결국은 무지개를 띄웠으니, 자연이 인간과 만나 하나로 교감하는 현장이다. 왕국유(王國維)의 말을 빌면 불격(不隔), 즉 틈이 없다.
北岳高戌削 南山松黑色 | 북악은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네. |
隼過林木肅 鶴鳴昊天碧 | 송골매 지나가자 숲이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은 새파래지네. |
시의 제목은 「극한(極寒)」이다. 역시 박지원(朴趾源)의 작품이다. 어지간히 추운 날씨였던 모양이다. 멀리로 북악산(北岳山)은 매운 날씨에 창끝을 세운 듯 삐죽삐죽 솟아 있고, 맞은편 남산(南山)의 소나무는 파랗게 질리다 못해 숫제 검은 빛을 띠었다. 안 그래도 추워 움츠린 판에 송골매 한 마리가 숲 위를 선회하자 숲은 병아리 떼처럼 아연 움츠린다. 팽팽하다. 그 팽팽한 긴장을 깨뜨리며 학은 청아한 목을 빼어 허공을 운다. 그 소리에 하늘은 얼음장에 챙하고 금이 가듯 더 푸르러진다. 턱이 덜덜 떨리는 추위이다.
스무 글자 어디에도 춥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그저 경물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제목마저 없었다면 무슨 이런 시가 있느냐고 했을 법하다. 시인은 제목에서 몹시 추운 날씨라고 분위기를 잡아 놓고서, 정작 시 속에서는 추위에 대한 묘사를 예상하던 독자의 기대를 외면하고 딴청을 부렸다. 여기에서 의미의 단절이 생긴다. 단절을 채워 제목과 본문을 잇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이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붓이 아닌가. 미당이 「동천(冬天)」에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 위에 올려다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무서운 매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빗기어 가네.”라 했는데, 어쩌면 시인의 솜씨가 이렇듯 암합(暗合)하고 있는가.
5. 백발삼천장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 흰머리 풀어 헤쳐 삼천 장 됨은 근심으로 이다지 길어진 걸세. |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 해맑은 거울 속 그 어디메서 가을 서리 얻었는가 아지 못게라. |
첫 구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중 한 수이다. 추포(秋浦)는 가을날의 물가가 아니라 양자강 연안 안휘성(安徽省) 귀지현(貴池縣)의 옛 지명이다. 황숙찬(黃叔燦)은 『당시전주(唐詩箋注)』에서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가 백발을 보자 갑자기 느낌이 일어 차례도 없이 곧장 말하여 이처럼 돌올하게 되었다.”고 하여,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비쳐보다가 문득 희어진 머리털을 발견하고, 그 놀란 마음을 삼천장의 길이로 환치하여 다짜고짜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돌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하였다. 흔히 이 시의 주제는 ‘탄로(嘆老)’로 새기는데 고금의 이론(異論)이 없는 듯하다. 1ㆍ2구와 3ㆍ4구를 뒤집은 돌기(突起)의 포치(布置)도 주목되거니와, 머리털을 무려 3천장이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와 연결시킴으로써 한시의 수사적 과장을 말할 때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나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의 구절과 함께 거론되는 명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이러한 단순한 풀이에 얼마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추포가(秋浦歌)」는 모두 17수의 연작시인데, 위 시는 제 15수이다. 당시 실의 속에 장안을 떠나 추포(秋浦) 땅을 전전하고 있던 이백(李白)은 대낮에도 흰 원숭이만 끽끽 울어대는 이곳의 황량하고 적막한 풍광 속에서 인생의 신산(辛酸)과 우수(憂愁)를 곱씹고 있었다. 제 1수의 첫 구절은 “추포(秋浦)는 언제나 가을 같아서, 쓸쓸히 근심에 잠기게 하네[秋浦長似秋, 蕭條使人愁].”라 하였고, 제 2수도 “추포(秋浦)의 잔나비 밤 시름겨워, 황산(黃山)도 머리가 희게 다 세네[秋浦猿夜愁, 黃山堪白頭].”라 하였다. 또 제 4수에서는 “잔나비 울음은 백발을 재촉하여, 머리털 온통 모두 희게 세었네[猿聲催白髮, 長短盡成絲].”라 하였으니, 추포(秋浦)란 고장이 시인에게 지울 길 없는 삶의 근심을 일깨워 두 어깨를 짓누르는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제 12수에서는 “강물은 마치도 흰 비단 같고, 물과 하늘 맞닿아 평평하도다. 밝은 달빛 타고서 노닐 만 해라. 꽃 보며 술 배에 올라타리라[水如一疋練, 此地卽平天. 耐可乘明月, 看花上酒船].”라 하여, 달빛 받은 수면은 마치 흰 깁을 펼쳐 놓은 듯 곱고,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끝간 데를 알 길 없는 황홀한 추포(秋浦)의 달밤을 노래하였다. 송강(松江)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달빛 아래 경포호의 매끄러운 수면을 ‘십리(十里) 빙환(氷紈)을 다리고 고쳐 다려’로 표현했던 것과 방불한 의경이다. 이어지는 13수에서도 “맑은 물은 흰 달을 깨끗이 씻어, 달 밝자 백로가 날아오르네[淥水淨素月, 月明白鷺飛].”라 하여 역시 달밤의 경물을 해맑게 묘사하였다. 그러고 나서 문제의 15수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1구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시인의 머리털이 아니라, 달빛을 받아 흰 깁을 펼쳐 놓은 듯 길게 흘러가는 추포(秋浦)의 강물 줄기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안 그래도 시름에 겨워 있던 시인은 좀 전에 흰 깁 같다던 강물을 굽어보다가 문득 ‘네 머리도 나처럼 희게 세었구나’하는 탄식을 떠올렸던 것이다. 모곡풍(毛谷風)은 『당인오절선(唐人五絶選)』에서 3구의 명경(明鏡)은 바로 추포(秋浦)의 한 지명인 ‘옥경담(玉鏡潭)’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위 시의 주제를 ‘탄로(嘆老)’로 보아 1구를 극도의 과장으로 이해했는데, 달빛 찬란한 밤 배 위에서 강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흰 머리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흰 달빛 아래 무슨 흰 머리털이 비친단 말인가. 요컨대 위 시는 달빛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강물아! 너는 무슨 근심이 그리 깊어 기나 긴 머리칼이 희게 물들었느냐. 명경(明鏡)과도 같다는 옥경담(玉鏡潭) 강물 위에 웬 서리가 이리도 내렸더란 말이냐.”며 내뱉은 탄식으로 보아야 옳겠다. 만일 달빛 아래 배를 타고 노닐던 시인이 갑자기 품에서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뜨악하여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을 외쳤다면 이 얼마나 싱거운 일이냐. 그러고 보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란 표현은 흰 강물을 ‘백발(白髮)’에 견준 그 발상의 참신을 높이 살 일이지, ‘삼천장(三千丈)’의 과장에 역시 중국 사람은 못 말려하고 혀를 내두를 일은 아닌 듯싶다. 이백(李白)이 쳐 놓은 언어의 그물에 고금의 독자들이 다 걸려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제 15수만 따로 똑 떼어 회자되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고려대 이동환(李東歡) 교수와 대화하던 중 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곡해에 대해 화제가 미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교시(敎示)를 정리해 본 것이다.
10자로 표현된 유학자의 자세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병주(幷州)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타관 땅을 떠돌며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되뇌이다가도, 막상 고향 언덕에 서서 변해 버린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또 노산의 노래처럼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닐래라’의 탄식은 금할 수 없는 법이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은 그의 「술회(述懷)」시의 서두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建德豈吾土 幷州非故鄕 | 건덕(建德)이 어찌 내 살 땅이리 병주(幷州) 또한 고향 아닐세. |
여기 나오는 건덕(建德)과 병주(幷州)는 땅 이름인데, 그 속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건덕(建德)은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나오는 도가적 이상향의 이름이다. 그 나라 백성은 어리석고 소박하며 욕심이 적다고 했다. 남에게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예의(禮義)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천지를 마음껏 다니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대인의 유토피아이다. 병주(幷州)는 당(唐) 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에 얽힌 고사가 있다. 그는 본래 함양(咸陽) 사람이었는데, 오래동안 병주(幷州)에 살면서 늘 고향 함양을 그려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강을 건너 함양에 오고 보니, 이제는 도리어 병주가 그리워지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면, 병주(幷州)는 흔히 ‘제 2의 고향’이란 의미로 나와 있다. 가도(賈島)는 승려 생활을 하였는데, 퇴고(推敲)의 고사가 인연이 되어 만난 한유(韓愈)의 권유로 환속하여 벼슬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권필(權韠)이 위 시에서 건덕(建德)도 내 땅이 아니고, 병주(幷州)도 내 고향이 아니라고 한 것은, 한때 도불(道佛)에 탐닉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유자(儒者)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열 자 안에 담긴 함축이 깊고 깊다.
병주지정(竝州之情)
후대 ‘병주지정(幷州之情)’의 고사를 낳게 한, 가도(賈島)가 병주(幷州)를 떠나면서 지은 「도상건(度桑乾)」이란 시를 보자.
客舍幷州已十霜 | 병주 땅 객사에서 십년 세월 보내며 |
歸心日夜憶咸陽 | 돌아가고픈 맘, 밤낮으로 함양을 생각했네. |
無端更渡桑乾水 | 뜬금없이 다시금 상건수를 건너서 |
却望幷州是故鄕 | 병주를 바라보니 이 또한 고향일래. |
십년 세월 동안 고향 함양(咸陽)을 밤낮으로 그리며 돌아갈 꿈을 키워 왔는데, 이제 다시금 상건수(桑乾水)를 건너고 나니 도리어 병주(幷州)가 고향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서울 사는 사람은 언제나 전원의 목가적 풍광(風光)을 사모한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면 며칠이 못 되어 다시 도회의 번화한 풍광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립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서울과 시골의 중간쯤에 사는 것은 어떨까? 가도(賈島)의 이 시가 널리 회자되어,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 시인 마쓰오 바쇼오(松尾芭蕉, 1644~1694)는 다음과 같은 하이꾸(俳句)를 남겼다.
가을 십년에
도리어 에도(江戶) 쪽을
가리키는 고향
십여 성상의 에도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데, 문득 되돌아보니 고향인 이하(伊賀)를 향한 설레임보다 에도를 향하는 애틋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사연이다.
그런데 바로 병주(竝州)와 관련된 고사의 인용은 옛 사람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흥미롭다. 요점만 먼저 말하면, 상건수(桑乾水)는 병주(竝州)와 함양(咸陽) 사이를 흐르는 강이 아니다. 오히려 병주(幷州)의 북편으로 흐르는 강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상건수를 건넘으로 해서 함양에 온 것이 아니라, 함양에서 오히려 더 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고향 함양을 밤낮으로 간절히 그리다가, 고향에 돌아가기는커녕 상건수를 건너 그 반대편으로 더 멀어지고 보니, 이제 병주를 바라보며 오히려 위안을 삼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 고향에 돌아갈 날은 그 언제일 것인가? 이것이 시인이 위 시에서 전달하려고 한 본 뜻이다. 왕세무(王世懋)의 『예포힐여(藝圃擷餘)』에 나온다.
이수광(李晬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살펴보니 당(唐) 나라 때 상건도독부를 설치하였는데 병주(竝州)의 북쪽에 있었다. 이제 상건수를 건넜다고 했으니, 함양(咸陽)에서 더욱 더 멀어진 것이다[按唐置桑乾都督府, 在幷州北. 今日渡桑乾水, 則去咸陽益遠矣].”라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에서 이 작품이 애초에 가도(賈島)가 아닌 유조(劉皂)의 작품이며, 제목도 「도상건(渡桑乾)」이 아닌 「여차삭방(旅次朔方)」으로 밝혀졌다.
과연 두 곳 지명과 연관하여 상건수의 위치를 비정해 보면, 지금까지 위 시에 대한 고금의 착각이 자못 통쾌하기도 하려니와, 이미 병주(幷州)란 말은 망향(望鄕)과 그에 따른 모순 심리의 정운(情韻)이 담뿍 담긴 말이 되어, 이제 와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설복시키기가 용이치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6. 뱃속 아이의 정체
위와 같은 오독은 감상자의 착각, 즉 상식의 허(虛)에서 말미암은 경우지만, 시구 해석상의 오독일 경우는 그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한 예로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一別年多消息稀 |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
寒垣存沒有誰知 |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
今朝始寄寒衣去 |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
泣送歸時在腹兒 |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었네. |
위 풀이는 『한국 한시(漢詩)』(민음사, 1991)에 수록된 김달진(金達鎭, 1907~1989) 선생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한 번 헤어진 뒤 여러 해가 되도록 님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3구에서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님께 겨울옷을 보낸다고 했다. 이 ‘비로소’란 말은 님이 떠난 뒤 처음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고, 아니면 추위가 이미 닥친 뒤인 오늘에서야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전자가 옳겠다. 먼 변방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낙네의 안타까운 심정이 절절하다.
그런데 4구에 가서 갑자기 이야기는 엉뚱하게 전개된다. 남편에게 솜옷을 보내고 울며 돌아올 때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고 하여, 현재 자신이 임신 중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뱃속의 아이는 누구의 아이더란 말인가?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상황이 아닐진대, 그녀는 남편이 수자리 살러 간 사이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불륜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궁금증은 여기에서 한없이 증폭된다. 1구에서 ‘소식이 드물다’고 했으나, ‘희(稀)’가 운자임을 고려한다면 아예 한 번도 소식이 없었다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생사조차 모르는 옛 남편에 대해 무슨 애틋한 정이 있어 새삼 솜옷을 지어 부친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이 여인의 마음은 도무지 종잡을 길 없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사학자 M모 교수는 그의 『신라사연구(新羅史硏究)』라는 책에서, 포은의 이 시를 인용하면서 말했다.
려말(麗末)의 명유(名儒) 정몽주(鄭夢周)의 「정부원(征婦怨)」이란 시에서 수년간 소식이 없던 남편에게 겨울옷을 보내면서 배 속에 아이를 가졌노라고 인편에 알리는 외설문학적인 작품이 근엄한 유학자의 문집에 있고
아예 이 시를 고려 후기 민간의 문란한 성(性) 풍정(風情)을 투영하고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까지 원용한 바 있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이러한 독법은 어처구니없는 오독이다. 4구는 “울며 돌아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 편에요.”라고 옮겨야 한다. 뱃속에 아이가 있던 시점은 여러 해 전 남편이 수자리 살러 떠나던 당시를 말함이다. 그러니까 그때 뱃속에 있던 그 아이가 아버지의 겨울옷을 가져다주러 변방으로 떠날 만큼 자랐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제 4구는 이 시의 처절한 애원(哀願)을 극도로 농축시킨 표현이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변방으로 아버지를 찾아 심부름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자라도록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 가까운 세월에 남편의 생사조차 알 길 없어 막막하던 여인은, 마침내 마지막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고 한들 과연 찾을 수나 있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모르고, 아들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얼굴도 모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아들과, 그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 그 갈피갈피에 서린 애끊는 슬픔이야 어찌 필설로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시를 놓고, 근엄한 유학자의 입에서까지 서슴없이 이런 외설적인 이야기가 시화(詩話)될 정도로 고려 사회의 성(性) 풍정(風情)이 타락했다고 지적하는 오독(誤讀)을 지하에서 포은이 듣는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7. 문에 기댄 사람은
이러한 외에 고사(故事)를 모르고 축자역(逐字譯)을 하는 데서 오는 오역(誤譯)은 연구자들 사이에 흔히 발견되는 오류이다.
권필(權韠)이 중국 사신을 접빈(接賓)하러 의주(義州)에 갔다가 겨울을 나며 몇 달을 머물 때에 형 권겹(權韐)이 멀리 그곳까지 아우를 찾아 왔다. 감격의 상봉을 한 형제가 겨우 감정을 추스린 뒤 아우는 이렇게 그 심경을 읊었다.
京口分離後 音書久杳茫 | 서울서 손 나누고 헤어진 뒤로 오래도록 소식도 아득했었네. |
相思今幾月 玆會却殊方 | 서로를 그리기 몇 달이던가 더욱이 낯선 땅서 이리 만났네. |
雪裡生春色 天涯似故鄕 | 눈 속에도 봄 빛은 피어나거니 하늘 가도 고향인양 포근하구나. |
仍懷倚門望 喜極輒悲傷 | 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 기쁨은 스러지고 구슬퍼지네. |
필자의 번역이지만, 7구만은 한 연구서의 번역을 좇은 것이다. 이 시의 묘처는 7ㆍ8구에 있는데 이렇게 번역해서는 전혀 의미가 살지 않을 뿐 아니라 엉뚱한 소리가 되고 만다. 형제가 오랜만에, 그것도 일생에 한 번 갈까말까 한 북쪽 변방 의주에서 만나고 보니 감회가 어찌 남다르지 않았으랴.
7구의 ‘의문망(倚門望)’은 고사가 있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 요치(婟齒)의 난에 왕손가(王孫賈)가 제(齊) 민왕(箒王)을 따르다 왕의 소재를 잃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오면 나는 대문에 기대어 기다렸고,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문에 기대어 기다렸다. 네가 이제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도망가셨는데 그 곳을 알지 못하니 네가 어찌하여 돌아왔느냐.”고 하여 자식을 다시 내몰았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어버이날 노래 2절에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서는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이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그러니까 위 시의 7구는 “문득 문기대어 기다리실 어머니를 생각하니”의 뜻이 된다. 우리 형제가 먼 변방에서 이리 만나니 기쁘기 한량없으나, 멀리 서울에서 우리 형제 걱정에 매일 대문간에 기대어 서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그만 기쁘던 마음은 간데없고 구슬픈 생각에 목이 메인다는 이야기다. 그저 위와 같이 번역해서야 도무지 시의 맛을 알 수가 없다. 대개 이런 오류는 기존의 번역서나 연구서에서 이루 헤일 수 없이 많다. 필자 또한 낯 뜨거운 오역으로 송연(悚然)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모두 한문이 갖는 언어의 함축과 시인이 행간에 감춰둔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때로 무정견(無定見), 몰안목(沒眼目)으로 인한 오독(誤讀)은 읽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요즘 시집에 혹처럼 붙어 다니는 해설에서도 이런 오독(誤讀)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해설일수록 주례사에 가까운 덕담이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수다스럽게 늘어놓기 일쑤이다. 꼼꼼한 독시(讀詩)의 과정 없이 무성의한 치레나 선입견에 의한 오독(誤讀)으로 일관하는 이런 해설은 오히려 독자의 바른 이해를 방해한다. 해설자의 명망이 시인의 레벨을 결정지워 주는 것이 아닐진대 이런 해설이 꼭 필요한지 의아할 때가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迷路) 위에 숨겨 놓은 코드를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진진한 지적 감성적 여정이어서, 때로는 오독(誤讀)도 즐겁다. 시인은 부러 말꼬리를 흐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독자는 잠시 멍해 있다가 또 코드를 찾아 나서고. 설사 가다가 길을 잠시 잃은들 어떠랴. 아니 애초부터 길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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