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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3. 시마의 죄상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3. 시마의 죄상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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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마(詩魔)의 죄상(罪狀)

 

 

이제 구시마문(驅詩魔文)에서 이규보(李奎報)가 적시하고 있는 시마(詩魔)의 다섯 가지 죄상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첫째,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인으로 하여금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바탕이 소박할 때에는 화려하지 않은 꽃떨기 같고, 총명함이 가리워져 있음은 마치 눈이나 귀가 열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허술한 틈을 타서 시마(詩魔)란 놈이 들어와 붙게 되면 여기에 의탁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남을 현혹시켜 아름다움을 꾸미고, 요술을 부리고 온갖 괴상한 짓을 하며, 아양을 떨면 살과 뼈가 녹는 듯하고, 떨쳐 소리 지르면 바람이 일고 물결이 출렁이게 한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너를 장하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다지 날뛰며, 사람들은 너를 공이 있다 여기지 않는데, 어찌 헐뜯기에 힘쓰는가[人始之生. 鴻荒樸略. 不賁不華, 猶花未萼, 錮聰塗明, 猶竅未鑿. 孰閽其門, 以挺厥鑰, 魔爾來闖, 酋然此託, 耀世眩人, 或髹或𦣒, 舞幻騁奇, 勃屑翕霍. 或媚而㜨, 筋柔骨弱, 或震而聲, 風豗浪𢶉. 世不爾壯, 胡踊且躍, 人不汝功, 胡務刻削? 是汝之罪一也]?

 

둘째, 하늘의 이치를 파헤쳐 천기를 누설하면서도 당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이다. 삼라만상은 모두 저마다의 조화와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신비를 염탐하고 천기를 누설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하늘이 놀랄 정도로 그 마음을 꿰뚫어 보므로 신명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하늘은 불평하게 여겨, 너 때문에 사람의 삶을 각박하게 한다는 것이다[地尙乎靜, 天難可名. 昒乎造化, 䁳若神明 沌沌而漠, 渾渾而冥, 機開閟邃, 且鐍且扃. 汝不是思, 偵深諜靈, 發洩幾微, 搪突不停, 出脅兮月病, 穿心兮天驚, 神爲之不悆, 天爲之不平, 以汝之故, 薄人之生, 是汝之罪二也].

 

셋째, 삼라만상의 천만 가지 형상을 닥치는 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붓 끝으로 옮겨내어 겸손할 줄 모르게 하는 죄이다. 구름과 노을의 아름다움, 달과 이슬의 정기, 벌레와 고기의 기이함과 새 짐승의 괴상함과 싹트고 꽃피는 초목의 천만가지 현상으로 천지에 가득한 것을 거침없이 취해, 열에 하나도 남김이 없이 보는 대로 읊조려 붓 끝으로 옮겨 놓으니 너의 겸손치 않음을 하늘과 땅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雲霞之英, 月露之粹, 蟲魚之奇. 鳥獸之異. 與夫芽抽萼敷, 草木花卉, 千態萬貌, 繁天麗地, 汝取之無愧, 十不一棄, 一矚一吟, 雜然坌至, 攢羅戢孨, 無有窮已. 汝之不廉, 天地所忌, 是汝之罪三也].

 

넷째, 상주고 벌주기를 제멋대로 하고, 정치를 평론하고, 만물을 조롱하고, 뽐내며 거만하게 만드는 죄이다. 비위에 거슬리기만 하면 즉시 공격부터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곤룡포 없이도 임금으로 꾸며주고, 미운 사람이면 칼 없이도 찌르니, 무슨 권리로 상주고 벌주기를 네 마음대로 하는가. 높은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라 일에 관여하고, 광대도 아니면서 만물을 조롱하고 뽐내며 잘난 척하니, 누가 너를 시기하지 않고, 누가 너를 미워하지 않겠는가[遇敵卽攻, 胡礮胡壘? 有喜於人, 不衮而賁; 有慍於人, 不刃而刺, 爾柄何鉞, 惟戰伐是恣; 爾握何權, 惟賞罰是肆? 爾非肉食, 謀及國事, 爾非侏儒, 嘲弄萬類? 施施而夸, 挺挺自異, 孰不猜爾, 孰不憎爾? 是汝之罪四也]?

 

다섯째, 목욕을 싫어하게 하고 머리 빗기를 게으르게 하며, 괜스레 신음소리를 내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어 온갖 근심을 불러들이는 죄이다. 시마(詩魔)가 붙기만 하면 멀쩡하던 사람이 마치 병 들어 부스럼이 난 사람처럼 온통 지저분하게 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은 빠지며 몸은 비쩍 마르게 되어 신음소리를 내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고 가슴을 앓게 하니, 근심을 불러들이고 평화를 해치게 한다는 것이다[汝著於人, 如病如疫, 體垢頭蓬, 鬚童形腊, 苦人之聲, 矉人之額, 耗人之精神, 剝人之胸膈, 惟患之媒, 惟和之賊. 是汝之罪五也].

 

 

 

최연이 말한 시마의 죄

 

최연(崔演)축시마(逐詩魔)에서 시마(詩魔)의 죄상을 모두 네 가지로 적시하고 있다. 대개 이규보(李奎報)가 든 시마(詩魔)의 죄상을 말만 바꾼 것인데,

첫째는 제멋대로 붓을 휘둘러 어지럽게 하고, 샘솟는 듯한 생각과 봄날 구름 같은 태도로 번화함을 다투어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키며, 날로 진원(眞元)을 소모케 하고 태소(太素)를 깎아 내게 하는 죄이고,

둘째는 천지자연의 비밀을 엿보고 서책을 표절하여 오묘한 표현을 찾으며, 자구(字句)를 탁련(琢鍊)하고 기이함을 다투며 일생의 마음을 토하고 수염을 배배 꼬면서 정미(精微)함을 추구하고 동탕(動盪)케 하는 죄이며,

셋째는 온갖 형식과 격식을 만들어 변화를 뽐내고 솜씨를 자랑케 하여 마침내 그 임금의 마음을 방탕케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죄이고,

넷째는 시휘(時諱)를 저촉하고 화기(禍機)를 밟아 몸에 곤궁을 이르게 하고 비방을 불러들이게 하는 죄이다.

 

 

 

시마를 통한 시인 예찬

 

멀쩡하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시 귀신이 있으니 이를 쫓지 아니하고 어쩌겠는가? 대개 이런 종류의 글은 반어(反語)의 성격이 짙어, 문면 그대로 읽고 말 일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규보(李奎報)와 최연이 제시하고 있는 시마(詩魔)의 죄상을 그대로 뒤집어 읽어 보면, 바로 시인 예찬론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이규보가 제시한 시마의 죄상을 거꾸로 읽어 보면,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시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있고, 시인은 그 날카로운 예지로써 천지의 드러나지 않은 오의(奧義)를 파헤쳐 사람들의 인식을 보다 고원(高遠)한 곳으로 인도해 주며, 시인은 온갖 사물들을 관찰하여 거기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해 내며, 시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세속의 질서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시를 통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으며, 시인은 세속 사람들이 추구하는 겉모양의 꾸밈보다는 한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하기 위한 고초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제자랑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규보(李奎報)와 최연 등이 적시하고 있는 시마(詩魔)의 죄상(罪狀)’이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시에 죽고 시에 사는 전업 시인으로서 누리는 특권에 대한 즐거운 비명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마(詩魔)란 놈은 무슨 이마에 뿔이 달린 귀신이 아니라,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이규보는 다시 삼마시(三魔詩)를 남겼는데, 그의 삼마(三魔)는 바로 색마(色魔)와 주마(酒魔), 그리고 시마(詩魔)이다. 그 서문에서 그는 내가 연로하여 오랫동안 색욕(色慾)을 물리쳤으나, 시와 술만은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주(詩酒)도 이따금 흥미를 붙일 것이지 성벽(性癖)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성벽(性癖)을 이루면 곧 마()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시마(詩魔)를 노래한 시는 다음과 같다.

 

詩不飛從天上降 시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아닐진대
勞神搜得竟如何 애태우며 찾아낸들 마침내 무엇하리.
好風明月初相諭 산들바람 밝은 달은 처음엔 좋겠지만
着久成淫卽詩魔 오래 되어 빠지게 되면 이것이 시마(詩魔)라네.

 

 

 

 

인용

목차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2. 시마와의 논쟁과 시마 증후군

3. 시마의 죄상

4. 시귀(詩鬼)와 귀시(鬼詩)

5.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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