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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정경론(情景論) - 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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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정경론(情景論) - 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③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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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屋角梨花樹 繁華似昔年 집 모롱이 하얗게 피어난 배꽃 화사함 지난해와 다름없구나.
東風憐舊病 吹送藥窓邊 봄바람 묵은 병이 애처로운지 약 달이는 창가로 바람 보낸다.

 

북창(北窓) 정렴(鄭𥖝)이화(梨花)란 작품이다. 봄기운을 타고 집 모롱이에 배꽃이 활짝 피었다. 적막하던 마당이 환하니 밝다. 꽃은 지난해와 다름없는데 주인의 쇠락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긴 병 끝의 꽃잔치는 마음 한 구석에 애잔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도 아직은 실망하지 말라고, 추운 겨울을 견뎌 활짝 핀 꽃처럼 어서 빨리 회복하라고, 봄바람은 약탕관 위로 살랑살랑 바람을 보낸다.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의 무상을 되새기는 정조가 애틋하고, 물아일체의 호흡이 있어 따뜻하다.

 

山窓盡日抱書眠 산창(山窓)서 하루 내내 책 안고 잠을 자니
石鼎猶留煮茗烟 돌솥엔 상기도 차 달인 내 남았구나.
簾外忽聽微雨響 주렴 밖 보슬보슬 빗소리 들리더니
滿塘荷葉碧田田 못 가득 연잎은 둥글둥글 푸르도다.

 

서헌순(徐憲淳)우영(偶詠)이다. 하루 종일 드러누워 책을 읽는다. 꼭 어디까지 읽어야겠다는 기필(期必)의 마음이 없고 보니, 읽다가 심심하면 차를 달여 마시고, 곤하면 가슴 위에 책을 얹고 단잠에 빠져든다. 찻물 달이던 돌솥에는 여태도 더운 기운이 남았는지 김이 오른다. 덜 깬 잠에 멍해 있는 내 후각을 자극한다.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라고 창밖에선 사분사분 빗소리가 들린다. 흐리멍 하던 정신이 그 소리에 맑아진다. 누운 몸을 일으켜 주렴을 걷어 본다. 그 비에 씻기운 이들이들한 연잎들이 연못에 하나 가득이다. 내 마음조차 푸르러진다.

 

화면 속의 자아는 시인 자신이면서 풍경 속의 일부인 듯 타자화되어 있다. 시인의 진술을 듣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주관 정의(情意)가 객관 경물에 완전히 녹아들어 차 내음을 맡고 빗소리를 듣는 주체가 시인인지 나인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나빙, 인물산수책(人物山水冊), 18세기, 24.3X30.7cm, 중국 북경고궁박물원.

연못가 화랑에 나와 동글동글 연잎과 군데군데 연꽃을 바라본다. 속이 다 시원해진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가장자리가 없다

2. 가장자리가 없다

3.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5.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6.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7.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8.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10.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11.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12.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13.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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