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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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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육일시화(六一詩話)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이 좋은 구절을 구할 욕심에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또한 시어의 병통이다. 예컨대 소매 속 간초(諫草) 넣고 조회하러 갔다가, 머리 위 궁화(宮花) 꽂고 잔치에서 돌아오네[袖中諫草朝天去, 頭上宮花侍宴歸].”는 진실로 아름다운 구절이지만, 다만 간언을 올릴 때는 반드시 장소(章疏)로 하는 것이지 곧바로 원고의 초고를 사용하는 경우란 없다. 당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고소대 밑 한산사, 한밤중에 종소리 객선(客船)에 드네[姑蘇臺下寒山寺, 半夜鐘聲到客船].”라 했다. 말하는 자가 또 구절은 좋은데, 삼경은 종을 칠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詩人貪求好句, 而理有不通, 亦語病也. 袖中諫草朝天去, 頭上宮花侍宴歸’, 誠爲佳句, 但進諫必以章疏, 無直用稿草之理. 唐人有云姑蘇臺下寒山寺, 半夜鐘聲到客船.’ 說者亦云, 句則佳矣, 其如三更不是打鐘時.

 

 

좋은 구절을 탐하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해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호자(胡仔)가 엮은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전집(前集) 23에는 아예 반야종(半夜鐘)’이란 항목이 있다. 구양수(歐陽修)의 위 말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한 역대 시화의 언급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왕직방시화(王直方詩話)에서는 우곡(于鵠)송궁인입도(送宮人入道)시에 정지별왕궁중반 요청구산반야종(定知別往宮中伴, 遙聽緱山半夜鐘)’, 백락천(白樂天)신추송영하 반야종성후(新秋松影下, 半夜鐘聲後)’, 온정균(溫庭筠)유연역려빈회수 무부송창반야종(悠然逆旅頻回首, 無復松窗半夜鐘)’을 그 예로 들었고, 섭몽득(葉夢得)죽림시화(石林詩話)에서 대개 구양수(歐陽修)가 일찍이 오중(吳中)에 와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도 오()땅의 산사에서는 실제로 한밤중에 종을 친다고 했다. 또 범온(范溫)시안(詩眼)에서 남사(南史)에 제나라 무제(武帝)의 경양루(景陽樓)에 삼경종과 오경종이 있다고 실린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구중부(丘仲孚)가 독서할 때 한밤 종소리로 한정을 삼았던 일 등을 들었다.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 있다.

 

 

야반종(夜半鐘)’이란 말은 장계(張繼)고소성외한산사 야반종성도객선(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이란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근자에 사성(司成) 최수(崔脩)가 여주 청심루(淸心樓)에 제()하여 이르기를, “벽사(甓寺)의 종소리 한밤중에 울리니, 광릉 땅 가는 길손 꿈이 놀라 깨었네. 만약에 장계가 여길 지났더라면, 한산사만 뒷세상에 이름 떨치진 않았으리[甓寺鐘聲半夜鳴, 廣陵歸客夢初驚. 若敎張繼曾過此, 不獨寒山擅後名].” 내가 일찍이 한두 문사와 시승(詩僧)과 더불어 청심루에 모여 앉아 최의 시를 읽다가 말했다. “옛사람이 장계의 시를 폄하하여 절집에선 야반에 종을 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최의 시가 또한 이 실수를 답습한 것은 어째서인가?” 그러자 한 승려가 분연히 말하기를, “옛부터 글하는 선비들은 승가(僧家)의 일을 알지 못한다. 이제 재()를 베푸는 절은 밤새도록 작은 종을 두드리기도 하는데, 어찌 다만 한밤중만이겠는가?” 하므로, 자리에 있던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夜半鐘之語, 起於張繼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之句. 近有崔司成脩題驪州淸心樓云, ‘甓寺鐘聲半夜鳴, 廣陵歸客夢初驚. 若敎張繼曾過此, 不獨寒山擅後名.’ 予嘗與一二文士與詩僧, 會坐淸心樓, 讀崔詩曰: “古人砭張繼詩云, 僧家無夜半之鐘, 崔詩亦踵其失, 何耶?” 有一僧奮然曰: “自古文士不識僧家之事. 今設齋之寺, 徹夜擊小鐘, 何但夜半而已乎?” 滿座大笑.

 

 

이러고 보면, 구양수(歐陽修)는 시 속의 비합리적인 진술을 시비 삼았다가 두 번 다 KO패를 당한 셈이 된다. 명 호응린(胡應麟)시수(詩藪)에서 아예 다음과 같이 말하여 이 논쟁에 쐐기를 박았다.

 

 

장계(張繼)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을 두고 말하는 자들이 시끄럽지만, 모두들 옛 사람에게 우롱당한 것이다. 시인이 경물을 빌려와 이야기할 때는, 다만 성률의 조화와 흥상(興象)의 결합에만 관심을 둘 뿐 구구한 사실이야 저가 어찌 헤아릴 겨를이 있겠는가? 한밤중이냐 아니냐는 말할 것도 없고, 종소리를 들었는지의 여부조차도 알 수가 없다.

張繼夜半鐘聲到客船’, 談者紛紛, 皆爲昔人愚弄. 詩流借景立言, 惟在聲律之調, 興象之合, 區區事實, 彼豈暇計? 無論夜半是非, 卽鐘聲聞否, 未可知也.

 

 

 

 

인용

목차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2. 이성적으로 시를 보려던 구양수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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