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우리나라 시화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여전히 흥미로운 관심사의 하나였다. 이수광(李晬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런 종류의 언급을 몇 남겼다.
이백의 시에, “오월이라 서시가 연밥을 따니, 사람들 보느라 야계가 미어지네[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라 하였으니, 대개 5월은 연밥을 따는 때이다. 백광훈의 시에, “강남이라 연밥 따는 아가씨, 강물은 산기슭 치며 흐르네. 연이 짧아 물위로 나오질 않아, 뱃노래에 봄날은 근심겨워요[江南採蓮女, 江水拍山流. 蓮短不出水, 櫂歌春正愁].”라 하였다. 대개 연꽃이 물 위로 나오지 않았으니 연밥 따는 때가 아니다. 잘못이라 할 수 있다.
李白詩曰: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盖五月是採蓮之時也. 白光勳詞云: ‘江南採蓮女, 江水拍山流. 蓮短不出水, 櫂歌春正愁.’ 盖蓮未出水, 則非採蓮之時. 可謂謬矣.
요컨대 이백(李白)의 시에 비추어 볼 때, 백광훈(白光勳)이 아직 새 잎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채련곡(採蓮曲)」을 지은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5월도 연밥 따는 계절이 아니기는 매 한 가지다. 오히려 이제 막 연잎이 수면위로 올라올 때다. 실제 연꽃은 양력으로는 7월과 9월 사이, 석 달 간 계속해서 피고 진다. 그러다 꽃잎이 지면 벌집 모양의 열매가 10월이 되어서야 갈색으로 익고, 그 속에 타원형의 연실(蓮實)이 들어가 박힌다. 이 연실은 한약재나 음식 재료로 쓰인다. 그러니까 이백(李白)의 시에서 5월의 약야계에서 서시가 딴 것은 연밥이 아니라 연꽃 또는 연잎이다. 그나마 관념 속의 풍경일 뿐이다.
실제 당나라에서는 매년 음력 6월 연꽃이 성개(盛開)할 때를 기다려 상화賞花하는 풍속이 있었다. 『청가록(淸嘉錄)』 권 6, 「유월(六月)ㆍ소하만간하화(消夏灣看荷花)」에는 “동정호 서산의 옛터, 소하만(消夏灣)이 연꽃이 가장 무성한 곳이다. 한 여름엔 꽃이 피어 찬란하기가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만 같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노를 묶어두고 더위를 식힌다. 꽃향기와 구름 그림자, 흰 달과 맑은 물결 속에 이따금 이곳에서 잠을 자고 하룻밤 묵어 돌아오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또 매년 음력 6월 24일, 연꽃이 성개한 때를 관하절(觀荷節) 또는 하화생일(荷花生日)이라고 하여 벗들과 연인들이 무리를 지어 연등을 만들어 연꽃이 심어져 있는 연못에 모여 불 밝혀 물 위에 띄우며 놀곤 했다.
사실 백광훈(白光勳)의 위 시는 단지 아가씨의 싱숭생숭한 춘수(春愁)를 노래한 것일 뿐, ‘채련녀(採蓮女)’는 관념적인 투식일 뿐이다. 이를 두고 채련의 시기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더더구나 5월이 연밥을 따는 때라고 본 것도 잘못이다.
또 이수광(李晬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달(李達)의 「사시사(四時詞)」에서 ‘이슬은 장미의 넝쿨 적시고, 향기는 두구꽃에 엉기었구나. 은상에 여름날 길기도 해라, 금정에 띄워둔 참외를 찾네[露濕薔薇架, 香凝荳蔲花. 銀床夏日永, 金井索浮瓜].’라 한 것을 보고, 두목(杜牧)이 ‘두구초두이월초(荳蔲梢頭二月初)’라 한 것을 보면 두구화가 2월에 꽃을 피움을 알 수 있는데, 이달이 깊이 생각지 않고 이런 말을 했으니 가소롭다
李達「四時詞」曰: “露濕薔薇架, 香凝荳蔻花. 銀床夏日永, 金井索浮瓜.” 按樊川詩荳蔻梢頭二月初, 荳蔻花開, 乃春景也. 蓋達不深考而爲是語, 可笑,
두구화는 실제 남방에서만 나는 열대 식물로, 그 열매는 약용으로 쓰인다. 두구화는 역대 시문 속에서 여린 소녀의 비유로 쓰였다. 위 두목의 시는 「증별(贈別)」이란 작품으로, “아리땁고 어여쁜 열세 살 남짓, 2월초의 두구화 새싹 끝 같네[娉娉嬝嬝十三餘, 荳蔲梢頭二月初].”라 하여 어여쁜 소녀의 앳된 자태를 묘사한 것이다. 시에서 두목은 2월초에 두구화의 새싹이 돋아난다고 했지, 이때 꽃이 핀다고 한 적은 없다. 이 또한 이수광(李晬光)이 잘못 알았다.
이렇게 보면 땅 위에 가득한 국화꽃이나 야반삼경의 종소리, 그리고 봄날의 채련, 두구화가 피는 시절 등에 대한 시비는 결국 사실을 잘못 알았거나, 시인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그도 아니면 시인의 발화를 지나치게 사실의 언어로 받아들인 데서 기인한 엉뚱한 문제 제기가 된다.
인용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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