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의 언급이다.
진화(陳澕)가 “비온 뒤 뜨락엔 이끼가 깔렸는데, 기척 없는 사립은 낮에도 열리잖네. 푸른 섬돌 꽃이 져서 깊이가 한 치인데, 봄바람에 불려 갔다 불려서 오는구나[雨餘庭院簇莓苔, 人靜柴扉晝不開. 碧砌落花深一寸, 東風吹去又吹來].”라 노래한 것을 두고, 깎아 말하는 자가, “진 꽃을 ‘심일촌(深一寸)’이라 한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조퇴암(趙退菴)의 시에 ‘부들 빛 푸릇푸릇 버들 빛 짙은데, 금년 한식에도 지난해의 마음일세. 술 취해 관하(關河)의 꿈 기억나지 않는데, 길 위 날리는 꽃 한 무릎에 차는 도다[蒲色靑靑柳色深, 今年寒食去年心. 醉來不記關河夢, 路上飛花一膝深].’라 했으니, ‘일슬(一膝)’이라 했다면 또 일척(一尺)보다 깊은 것일세. 하물며 이백의 시에 ‘연산의 눈 조각 크기가 방석 같네[燕山雪片大如席]’나, 또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나, 소식 시의 ‘큰 누에고치가 항아리만 하구나[大繭如甕盎].’ 같은 것은 말만 가지고 뜻을 해쳐서는 안 된다. 다만 마땅히 뜻으로 느낄 뿐이다.” 근자에 『감로집(甘露集)』을 얻었는데, 송나라 승려의 시였다. 그 시에, “수양버들 깊은 뜨락 봄낮은 길어, 푸른 섬돌 진 꽃이 깊이가 한 치일세[綠楊深院春晝永, 碧砌落花深一寸].”라 하였다. 진화의 시구와 더불어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옛사람 또한 이런 말이 있었던 것이다.
陳司諫澕, ‘雨餘庭院簇莓苔, 人靜柴扉晝不開. 碧砌落花深一寸, 東風吹去又吹來.’ 砭者曰: “落花稱深一寸, 似畔於理.” 余曰: “趙退菴詩曰 ‘蒲色靑靑柳色深, 今年寒食去年心. 醉來不記關河夢, 路上飛花一膝深.’ 其曰一膝, 則又深於一尺矣. 況太白詩 ‘燕山雪片大如席’, 又曰 ‘白髮三千丈,’ 蘇子瞻詩 ‘大繭如甕盎.’ 是不可以辭害意, 但當意會爾. 近得甘露集, 乃宋僧詩也. 其詩云, ‘綠楊深院春晝永, 碧砌落花深一寸,’ 與陳句無一字異. 古之人亦有是語矣.
진 꽃잎이 한 치나 쌓였다는 말을 두고, 원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하며 비판하자, 아예 한 자 남짓 쌓였더라는 과장도 있다고 맞받아 친 것이다. 요컨대는 시에서 시인의 진술을 두고 개연성을 따지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올바른 감상의 태도가 아니다. 그 뜻을 음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예로, 임경의 『현호쇄담(玄湖𤨏談)』에는 “나귀 등 위 봄잠이 혼곤하여서, 청산을 꿈속에 지나갔다네. 깨고서야 비 지난 줄 깨달았으니, 못 듣던 시내물소리를 듣고[驢背春眠穩, 靑山夢裏行. 覺來知雨過, 溪水有新聲]”라 한 시를 두고, 비가 내려 시냇물소리가 날 정도면 비가 많이 내린 것인데, 이런 폭우 속에서도 잠을 잤다는 것은 이치에 합당치 않다고 한 이야기가 보인다.
이것도 사실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폭우를 맞으면서도 잠을 잤다면 말도 안 된다 하겠지만, 실제 비는 산 속에서 내렸고, 산 아래로부터 제법 산 위로 올라와서야 새삼 물 불어난 시내를 만나게 되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마치 정몽주(鄭夢周)의 「춘(春)」에서 “봄비 가늘어 방울 짓지 못하더니, 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있네. 눈 녹아 남쪽 시내 물 불어나니, 새싹들 많이도 돋아났겠지[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雪盡南溪漲, 草芽多少生]”에서, 방울 짓지도 못할 만큼의 보슬비가 내렸다 해놓고, 웬 시냇물소리가 나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시내가 불어난 것은 낮에 내린 빗방울이 모여서가 아니라, 보슬비가 산 위에 쌓인 눈을 녹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비할 수 있는가?
인용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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