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은 단지 망상으로 억탁한 것일 뿐이니,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말하는 격이다. 설령 형용이 아주 비슷하다 해도 어찌 터럭만큼이라도 마음을 끌겠는가? 그런 줄 아는 것은 ‘퇴(推)’와 ‘고(敲)’ 두 글자를 침음한 것이 바로 그가 지어낸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景)과 마주해 마음으로 느꼈다면, ‘퇴(推)’든 ‘고(敲)’든 반드시 어느 하나였을 터이다. 경(景)과 정(情)에 따르면 절로 영묘(靈妙)해지니, 어찌 수고로이 따져 의논하랴? ‘장하락일원(長河落日圓)’은 애초에 정해진 경이 없었고, ‘격수문초부(隔水問樵夫)’는 처음부터 생각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 선가(禪家)에서 이른바 ‘현량(現量)’이라는 것이다.
僧敲月下門, 祗是妄想揣摩, 如說他人夢. 縱令形容酷似, 何嘗毫髮關心? 知然者, 以其沈吟推敲二字, 就他作想也. 若卽景會心, 則或推或敲, 必居其一. 因景因情, 自然靈妙, 何勞擬議哉? 長河落日圓, 初無定景; 隔水問樵夫, 初非想得. 則禪家所謂現量也.
청(淸) 왕부지(王夫之)가 『강재시화(薑齋詩話)』에서 한 말이다. 가도(賈島)가 읽었더라면 속이 뜨끔했을 것이다. 왕부지는 단언한다. 만약 그가 실제로 그런 경우를 당했더라면, 그의 선택은 ‘퇴(推)’가 되든 ‘고(敲)’가 되든 어느 하나일 뿐 따지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고. 요컨대 그는 결코 달빛 아래서 실제로 문을 밀지도 두드려보지도 않았고, 생각만으로 따지며 걷다가 한유(韓愈)의 수레에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시인의 정(情)이 객관의 경(景)과 만나는 것은 불가어(佛家語)로는 ‘현량(現量)’, 즉 직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연역적으로 분석할 수도 분석되지도 않는다. 사물에 정이 접촉하는 순간 모든 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관념으로 지은 것은 이미 가짜다.
그런데 실제 시속에는 논리적으로 보아 앞뒤가 안 맞거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천연스레 그려지곤 한다. 시인이 눈앞의 경물과 마주하지 않은 채 관념으로 창작에 임할 때 이런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한편으로 과장과 함축은 시적 표현의 중요한 특징인데, 이것을 논리적 잣대로 재단하는데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특정 작품의 배경이나 현장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문제는 역대 시화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예화 중심으로 일별해 보겠다.
2. 이성적으로 시를 보려던 구양수
구양수가 가우(嘉祐) 연간에 왕안석의 시, “황혼에 비바람이 동산 숲에 어둡더니, 남은 국화 흩날려 온 땅이 금빛일세[黃昏風雨暝園林, 殘菊飄零滿地金].”라 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온갖 꽃이 다 져도 국화만은 가지 위에서 마를 뿐이다.” 인하여 장난으로 말하기를, “가을꽃을 봄꽃 짐에 견주어선 안 되나니, 시인에게 자세히 보라 알려 주노라[秋英不比春花落, 爲報詩人子細看].”고 하였다. 왕안석이 이 말을 듣더니, “그가 어찌 『초사(楚詞)』에 나오는 ‘저녁엔 가을 국화의 진 꽃잎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를 모른단 말인가? 구양수가 공부하지 않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毆公嘉祐中, 見王荊公詩‘黃昏風雨暝園林, 殘菊飄零滿地金’, 笑曰: “百花盡落, 獨菊枝上枯耳.” 因戱曰: “秋英不比春花落, 爲報詩人子細看.” 荊公聞之曰: “是豈不知楚詞‘夕餐秋菊之落英’, 毆陽九不學之過也.” 『苕溪漁隱叢話』 前集 권 34
송(宋) 채조(蔡條)의 『서청시화(西淸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규보(李奎報)는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위 대목을 인용한 뒤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시란 것은 흥(興)으로 본 것이다. 나도 예전 큰 바람과 소낙비에 국화꽃이 또한 날리어 떨어진 것을 본적이 있다. 왕안석이 시에서 ‘황혼풍우명원림(黃昏風雨暝園林)’이라고 했다면 흥으로 본 것을 가지고 구양수의 말에 상대하면 충분하다. 굳이 『초사』를 인용했다면 “구양수가 어찌 이것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했으면 충분한데, 도리어 무식하다고 지목했으니 어찌 이다지도 지나치단 말인가. 구양수가 설사 널리 보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초사』가 무슨 궁벽한 책이라고 이를 보지 못했겠는가? 나는 왕안석을 장자(長者)로 봐줄 수가 없다.
詩者, 興所見也. 余昔於大風疾雨中, 見黃花亦有飄零者. 文公詩旣云: ‘黃昏風雨暝園林’, 則以興所見拒毆公之言, 可也. 强引楚辭則旣曰: ‘毆公其何不見此?’ 亦足矣. 乃反以不學目之, 一何褊歟! 脩若未至博學洽聞者, 楚辭豈幽經僻說, 而脩不得見之耶? 余於介甫不可以長者期之也.
이래저래 구양수(歐陽修)는 시를 볼 때 논리로 따지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육일시화(六一詩話)』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이 좋은 구절을 구할 욕심에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또한 시어의 병통이다. 예컨대 “소매 속 간초(諫草) 넣고 조회하러 갔다가, 머리 위 궁화(宮花) 꽂고 잔치에서 돌아오네[袖中諫草朝天去, 頭上宮花侍宴歸].”는 진실로 아름다운 구절이지만, 다만 간언을 올릴 때는 반드시 장소(章疏)로 하는 것이지 곧바로 원고의 초고를 사용하는 경우란 없다. 당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고소대 밑 한산사, 한밤중에 종소리 객선(客船)에 드네[姑蘇臺下寒山寺, 半夜鐘聲到客船].”라 했다. 말하는 자가 또 “구절은 좋은데, 삼경은 종을 칠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詩人貪求好句, 而理有不通, 亦語病也. 如‘袖中諫草朝天去, 頭上宮花侍宴歸’, 誠爲佳句, 但進諫必以章疏, 無直用稿草之理. 唐人有云‘姑蘇臺下寒山寺, 半夜鐘聲到客船.’ 說者亦云, 句則佳矣, 其如三更不是打鐘時.
좋은 구절을 탐하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해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송(宋) 호자(胡仔)가 엮은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 전집(前集) 권 23에는 아예 ‘반야종(半夜鐘)’이란 항목이 있다. 구양수(歐陽修)의 위 말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한 역대 시화의 언급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왕직방시화(王直方詩話)』에서는 우곡(于鵠)의 「송궁인입도(送宮人入道)」시에 ‘정지별왕궁중반 요청구산반야종(定知別往宮中伴, 遙聽緱山半夜鐘)’, 백락천(白樂天)의 ‘신추송영하 반야종성후(新秋松影下, 半夜鐘聲後)’, 온정균(溫庭筠)의 ‘유연역려빈회수 무부송창반야종(悠然逆旅頻回首, 無復松窗半夜鐘)’을 그 예로 들었고, 섭몽득(葉夢得)은 『죽림시화(石林詩話)』에서 “대개 구양수(歐陽修)가 일찍이 오중(吳中)에 와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도 오(吳)땅의 산사에서는 실제로 한밤중에 종을 친다”고 했다. 또 범온(范溫)도 『시안(詩眼)』에서 『남사(南史)』에 제나라 무제(武帝)의 경양루(景陽樓)에 삼경종과 오경종이 있다고 실린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구중부(丘仲孚)가 독서할 때 한밤 종소리로 한정을 삼았던 일 등을 들었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 있다.
‘야반종(夜半鐘)’이란 말은 장계(張繼)의 ‘고소성외한산사 야반종성도객선(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이란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근자에 사성(司成) 최수(崔脩)가 여주 청심루(淸心樓)에 제(題)하여 이르기를, “벽사(甓寺)의 종소리 한밤중에 울리니, 광릉 땅 가는 길손 꿈이 놀라 깨었네. 만약에 장계가 여길 지났더라면, 한산사만 뒷세상에 이름 떨치진 않았으리[甓寺鐘聲半夜鳴, 廣陵歸客夢初驚. 若敎張繼曾過此, 不獨寒山擅後名].” 내가 일찍이 한두 문사와 시승(詩僧)과 더불어 청심루에 모여 앉아 최의 시를 읽다가 말했다. “옛사람이 장계의 시를 폄하하여 ‘절집에선 야반에 종을 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최의 시가 또한 이 실수를 답습한 것은 어째서인가?” 그러자 한 승려가 분연히 말하기를, “옛부터 글하는 선비들은 승가(僧家)의 일을 알지 못한다. 이제 재(齋)를 베푸는 절은 밤새도록 작은 종을 두드리기도 하는데, 어찌 다만 한밤중만이겠는가?” 하므로, 자리에 있던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夜半鐘之語, 起於張繼‘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之句. 近有崔司成脩題驪州淸心樓云, ‘甓寺鐘聲半夜鳴, 廣陵歸客夢初驚. 若敎張繼曾過此, 不獨寒山擅後名.’ 予嘗與一二文士與詩僧, 會坐淸心樓, 讀崔詩曰: “古人砭張繼詩云, 僧家無夜半之鐘, 崔詩亦踵其失, 何耶?” 有一僧奮然曰: “自古文士不識僧家之事. 今設齋之寺, 徹夜擊小鐘, 何但夜半而已乎?” 滿座大笑.
이러고 보면, 구양수(歐陽修)는 시 속의 비합리적인 진술을 시비 삼았다가 두 번 다 KO패를 당한 셈이 된다. 명 호응린(胡應麟)은 『시수(詩藪)』에서 아예 다음과 같이 말하여 이 논쟁에 쐐기를 박았다.
장계(張繼)의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을 두고 말하는 자들이 시끄럽지만, 모두들 옛 사람에게 우롱당한 것이다. 시인이 경물을 빌려와 이야기할 때는, 다만 성률의 조화와 흥상(興象)의 결합에만 관심을 둘 뿐 구구한 사실이야 저가 어찌 헤아릴 겨를이 있겠는가? 한밤중이냐 아니냐는 말할 것도 없고, 종소리를 들었는지의 여부조차도 알 수가 없다.
張繼‘夜半鐘聲到客船’, 談者紛紛, 皆爲昔人愚弄. 詩流借景立言, 惟在聲律之調, 興象之合, 區區事實, 彼豈暇計? 無論夜半是非, 卽鐘聲聞否, 未可知也.
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우리나라 시화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여전히 흥미로운 관심사의 하나였다. 이수광(李晬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런 종류의 언급을 몇 남겼다.
이백의 시에, “오월이라 서시가 연밥을 따니, 사람들 보느라 야계가 미어지네[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라 하였으니, 대개 5월은 연밥을 따는 때이다. 백광훈의 시에, “강남이라 연밥 따는 아가씨, 강물은 산기슭 치며 흐르네. 연이 짧아 물위로 나오질 않아, 뱃노래에 봄날은 근심겨워요[江南採蓮女, 江水拍山流. 蓮短不出水, 櫂歌春正愁].”라 하였다. 대개 연꽃이 물 위로 나오지 않았으니 연밥 따는 때가 아니다. 잘못이라 할 수 있다.
李白詩曰: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盖五月是採蓮之時也. 白光勳詞云: ‘江南採蓮女, 江水拍山流. 蓮短不出水, 櫂歌春正愁.’ 盖蓮未出水, 則非採蓮之時. 可謂謬矣.
요컨대 이백(李白)의 시에 비추어 볼 때, 백광훈(白光勳)이 아직 새 잎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채련곡(採蓮曲)」을 지은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5월도 연밥 따는 계절이 아니기는 매 한 가지다. 오히려 이제 막 연잎이 수면위로 올라올 때다. 실제 연꽃은 양력으로는 7월과 9월 사이, 석 달 간 계속해서 피고 진다. 그러다 꽃잎이 지면 벌집 모양의 열매가 10월이 되어서야 갈색으로 익고, 그 속에 타원형의 연실(蓮實)이 들어가 박힌다. 이 연실은 한약재나 음식 재료로 쓰인다. 그러니까 이백(李白)의 시에서 5월의 약야계에서 서시가 딴 것은 연밥이 아니라 연꽃 또는 연잎이다. 그나마 관념 속의 풍경일 뿐이다.
실제 당나라에서는 매년 음력 6월 연꽃이 성개(盛開)할 때를 기다려 상화賞花하는 풍속이 있었다. 『청가록(淸嘉錄)』 권 6, 「유월(六月)ㆍ소하만간하화(消夏灣看荷花)」에는 “동정호 서산의 옛터, 소하만(消夏灣)이 연꽃이 가장 무성한 곳이다. 한 여름엔 꽃이 피어 찬란하기가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만 같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노를 묶어두고 더위를 식힌다. 꽃향기와 구름 그림자, 흰 달과 맑은 물결 속에 이따금 이곳에서 잠을 자고 하룻밤 묵어 돌아오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또 매년 음력 6월 24일, 연꽃이 성개한 때를 관하절(觀荷節) 또는 하화생일(荷花生日)이라고 하여 벗들과 연인들이 무리를 지어 연등을 만들어 연꽃이 심어져 있는 연못에 모여 불 밝혀 물 위에 띄우며 놀곤 했다.
사실 백광훈(白光勳)의 위 시는 단지 아가씨의 싱숭생숭한 춘수(春愁)를 노래한 것일 뿐, ‘채련녀(採蓮女)’는 관념적인 투식일 뿐이다. 이를 두고 채련의 시기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더더구나 5월이 연밥을 따는 때라고 본 것도 잘못이다.
또 이수광(李晬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달(李達)의 「사시사(四時詞)」에서 ‘이슬은 장미의 넝쿨 적시고, 향기는 두구꽃에 엉기었구나. 은상에 여름날 길기도 해라, 금정에 띄워둔 참외를 찾네[露濕薔薇架, 香凝荳蔲花. 銀床夏日永, 金井索浮瓜].’라 한 것을 보고, 두목(杜牧)이 ‘두구초두이월초(荳蔲梢頭二月初)’라 한 것을 보면 두구화가 2월에 꽃을 피움을 알 수 있는데, 이달이 깊이 생각지 않고 이런 말을 했으니 가소롭다
李達「四時詞」曰: “露濕薔薇架, 香凝荳蔻花. 銀床夏日永, 金井索浮瓜.” 按樊川詩荳蔻梢頭二月初, 荳蔻花開, 乃春景也. 蓋達不深考而爲是語, 可笑,
두구화는 실제 남방에서만 나는 열대 식물로, 그 열매는 약용으로 쓰인다. 두구화는 역대 시문 속에서 여린 소녀의 비유로 쓰였다. 위 두목의 시는 「증별(贈別)」이란 작품으로, “아리땁고 어여쁜 열세 살 남짓, 2월초의 두구화 새싹 끝 같네[娉娉嬝嬝十三餘, 荳蔲梢頭二月初].”라 하여 어여쁜 소녀의 앳된 자태를 묘사한 것이다. 시에서 두목은 2월초에 두구화의 새싹이 돋아난다고 했지, 이때 꽃이 핀다고 한 적은 없다. 이 또한 이수광(李晬光)이 잘못 알았다.
이렇게 보면 땅 위에 가득한 국화꽃이나 야반삼경의 종소리, 그리고 봄날의 채련, 두구화가 피는 시절 등에 대한 시비는 결국 사실을 잘못 알았거나, 시인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그도 아니면 시인의 발화를 지나치게 사실의 언어로 받아들인 데서 기인한 엉뚱한 문제 제기가 된다.
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의 언급이다.
진화(陳澕)가 “비온 뒤 뜨락엔 이끼가 깔렸는데, 기척 없는 사립은 낮에도 열리잖네. 푸른 섬돌 꽃이 져서 깊이가 한 치인데, 봄바람에 불려 갔다 불려서 오는구나[雨餘庭院簇莓苔, 人靜柴扉晝不開. 碧砌落花深一寸, 東風吹去又吹來].”라 노래한 것을 두고, 깎아 말하는 자가, “진 꽃을 ‘심일촌(深一寸)’이라 한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조퇴암(趙退菴)의 시에 ‘부들 빛 푸릇푸릇 버들 빛 짙은데, 금년 한식에도 지난해의 마음일세. 술 취해 관하(關河)의 꿈 기억나지 않는데, 길 위 날리는 꽃 한 무릎에 차는 도다[蒲色靑靑柳色深, 今年寒食去年心. 醉來不記關河夢, 路上飛花一膝深].’라 했으니, ‘일슬(一膝)’이라 했다면 또 일척(一尺)보다 깊은 것일세. 하물며 이백의 시에 ‘연산의 눈 조각 크기가 방석 같네[燕山雪片大如席]’나, 또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나, 소식 시의 ‘큰 누에고치가 항아리만 하구나[大繭如甕盎].’ 같은 것은 말만 가지고 뜻을 해쳐서는 안 된다. 다만 마땅히 뜻으로 느낄 뿐이다.” 근자에 『감로집(甘露集)』을 얻었는데, 송나라 승려의 시였다. 그 시에, “수양버들 깊은 뜨락 봄낮은 길어, 푸른 섬돌 진 꽃이 깊이가 한 치일세[綠楊深院春晝永, 碧砌落花深一寸].”라 하였다. 진화의 시구와 더불어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옛사람 또한 이런 말이 있었던 것이다.
陳司諫澕, ‘雨餘庭院簇莓苔, 人靜柴扉晝不開. 碧砌落花深一寸, 東風吹去又吹來.’ 砭者曰: “落花稱深一寸, 似畔於理.” 余曰: “趙退菴詩曰 ‘蒲色靑靑柳色深, 今年寒食去年心. 醉來不記關河夢, 路上飛花一膝深.’ 其曰一膝, 則又深於一尺矣. 況太白詩 ‘燕山雪片大如席’, 又曰 ‘白髮三千丈,’ 蘇子瞻詩 ‘大繭如甕盎.’ 是不可以辭害意, 但當意會爾. 近得甘露集, 乃宋僧詩也. 其詩云, ‘綠楊深院春晝永, 碧砌落花深一寸,’ 與陳句無一字異. 古之人亦有是語矣.
진 꽃잎이 한 치나 쌓였다는 말을 두고, 원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하며 비판하자, 아예 한 자 남짓 쌓였더라는 과장도 있다고 맞받아 친 것이다. 요컨대는 시에서 시인의 진술을 두고 개연성을 따지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올바른 감상의 태도가 아니다. 그 뜻을 음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예로, 임경의 『현호쇄담(玄湖𤨏談)』에는 “나귀 등 위 봄잠이 혼곤하여서, 청산을 꿈속에 지나갔다네. 깨고서야 비 지난 줄 깨달았으니, 못 듣던 시내물소리를 듣고[驢背春眠穩, 靑山夢裏行. 覺來知雨過, 溪水有新聲]”라 한 시를 두고, 비가 내려 시냇물소리가 날 정도면 비가 많이 내린 것인데, 이런 폭우 속에서도 잠을 잤다는 것은 이치에 합당치 않다고 한 이야기가 보인다.
이것도 사실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폭우를 맞으면서도 잠을 잤다면 말도 안 된다 하겠지만, 실제 비는 산 속에서 내렸고, 산 아래로부터 제법 산 위로 올라와서야 새삼 물 불어난 시내를 만나게 되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마치 정몽주(鄭夢周)의 「춘(春)」에서 “봄비 가늘어 방울 짓지 못하더니, 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있네. 눈 녹아 남쪽 시내 물 불어나니, 새싹들 많이도 돋아났겠지[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雪盡南溪漲, 草芽多少生]”에서, 방울 짓지도 못할 만큼의 보슬비가 내렸다 해놓고, 웬 시냇물소리가 나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시내가 불어난 것은 낮에 내린 빗방울이 모여서가 아니라, 보슬비가 산 위에 쌓인 눈을 녹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비할 수 있는가?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결국 여러 시비가 모두 헛짚은 셈이 되는데, 그렇다면 시인의 시적 진술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쓸모없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세 편 시를 함께 읽으며 글을 맺겠다. 먼저 김시습(金時習)의 「도점(陶店)」이란 작품이다.
兒打蜻蜓翁掇籬 | 아이는 잠자리 잡고 늙은인 울타리 엮는데 |
小溪春水浴鸕鷓 | 작은 시내 봄물에선 가마우지 멱을 감네. |
靑山斷處歸程遠 | 청산도 끊어진 곳 갈 길도 아득해라 |
橫擔烏藤一箇枝 | 등나무 한 가지를 비스듬히 매고 간다. |
도점은 지명이다. 아이가 잠자리를 잡는다고 했으니 계절은 한 여름이나 가을이라야 겠는데, 2구에서는 ‘춘수(春水)’ 즉 봄물이라고 했다. 노자(鸕鷓), 즉 가마우지는 겨울 철새다. 해안 절벽의 바위 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논다. 소계(小溪)에서 멱이나 감고 노는 새가 아니다.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봄날 아이는 가을 잠자리를 잡고, 봄물에서 겨울 철새가 자맥질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였는지 허균(許筠)은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노자(鸕鷓)를 ‘노사(鷺鷥)’, 즉 해오라기로 슬쩍 고쳐 놓았다. 그래도 ‘춘수(春水)’와 ‘청정(蜻蜓)’은 요령부득이다.
다시 한 수 더. 유희경의 「월계도중(月溪途中)」이다.
山含雨氣水生烟 | 산은 빗기운 머금고 물엔 안개 피어나니 |
靑草湖邊白鷺眠 | 청초호 물가에선 백로가 조은다. |
路入海棠花下轉 | 해당화 아래 들어 길은 돌아 나가고 |
滿枝香雪落揮鞭 | 가지 가득 향기런 눈 채찍 끝에 떨어지네. |
강원도 양양 땅 청초호 곁을 지나 월계(月溪)로 향하는 길, 비가 오려는지 날이 꾸물꾸물하다. 호수에는 스물스물 안개가 피어올라 풍경을 지운다. 물가에선 할 일 없어 꾸벅꾸벅 백로가 졸고 있다. 여기서부터 길은 다시 바닷가 모래사장의 해당화 군락지대로 접어든다. 모퉁이를 돌아 채찍을 휘두르니 가지에 가득하던 ‘향설(香雪)’이 분분히 흩날린다.
문제는 ‘향설(香雪)’의 정체다. 말 그대로 가지 위에 소복히 쌓였던 흰 눈이 휘두르는 말채찍에 어지러이 흩날린다고 하면 한 겨울이라야 마땅한데, 산에는 빗기운, 백로가 졸고, 해당화 핀 것이 맞지 않는다. 향설을 해당화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린다고 보면 기막히게 좋기는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화 꽃잎은 진분홍빛인데다 6,7월에 꽃이 핀다. 계절도 맞지 않고 흰 빛과는 거리가 멀다. 해당화 아래서 길이 돌아나갔다고 했지, 언제 꽃이 피었다고 했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이때도 해당화 가지 위에 쌓인 눈을 날리우며 간다면 아무래도 전체 시의 분위기가 걸린다.
「찔레꽃」의 노랫말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란 것이 있다. 정작 찔레꽃은 눈처럼 흰 꽃이다. 그런데 작사자는 왜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을까? 찔레꽃과 해당화는 모두 장미과 장미류에 속하는 식물이어서 노래 속의 찔레꽃은 해당화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위 시에 보이는 해당화는 반대로 찔레꽃이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볼 때 향설이 이해될 수는 있겠지만, 이때도 문제는 찔레꽃은 해당화처럼 바닷가에 군락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烟楊窣地拂金絲 |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
幾被情人贈別離 | 이별의 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
林外一蟬諳別恨 | 숲 밖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
曳聲來上夕陽枝 |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
김극기(金克己)의 「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버들가지에 아지랑이 하늘대고, 연두빛 물이 오른 금실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봄날이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서로 잊지 말자고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전별하는 것은 당나라 이래의 오랜 관습이다. ‘유(柳)’와 ‘류(留)’가 음이 같은데다 버들은 꺾꽂이가 가능하므로, 우리는 비록 헤어졌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는 다짐을 여기에다 얹은 것이다. 통달역은 평안도 고원군(高原郡)에 있던 역이다. 이름 그대로 사통팔달의 길목이고 보니, 안타까운 이별의 사연이 적지 않았겠다.
문제는 3구다. 아지랑이 일렁이고 버들가지에 물오르는 봄날을 말하다가 갑자기 매미가 등장했다. 춘접추선(春蝶秋蟬)이라고, 매미는 7월도 지나 가을이 오는 어스름에 비로소 각질을 벗고 나와 목청이 터지는 곤충이다. 그렇다면 1ㆍ2구와 3ㆍ4구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의 단절이 있거나, 아니면 시인이 사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의경을 펼쳤던가 둘 중의 하나일 텐데, 전자로 보아야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님은 금세 돌아오마고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이른 봄날 이곳을 떠났다. 그런데 매미가 우는 가을이 오도록 오마던 님은 오시질 않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오가는 행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님을 기다린다. 오늘도 하루해가 그렇게 진다. 지는 해가 안타깝고 이별의 정한이 안타까워 깊은 속이 타는데, 저 숲 아래서 울고 있던 매미 한 마리가 매앰 소리를 내며 나 있는 곁의 나뭇가지로 날아오른다. 내 마음을 다 알겠다는 듯이 말이다. 해가 지니 안타까운데 저 나무 가지 끝에는 해가 조금 더디 지겠지. 그 사이에라도 님이 어서 왔으면 하며 높이 올라 멀리 보고픈 마음을 뜬금없이 매미에게 얹어본 것이다. 기다림은 이래서 늘 안타깝다.
이 시를 읽을 때 이런 시간의 경과를 간과하면, 영 앞뒤가 맞지 않는 시가 되고 만다. 독자들이 시인의 본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 재단해버리는 것은 큰 문제다. 옛 시화에서도 이런 잘못은 적지 않게 보인다. 시를 논리로 따지는 것이야 우스운 일이지만, 시를 감상하는 일은 어쩌면 그 불합리 속에 담긴 뜻을 새삼 헤아려 보는 일이기도 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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