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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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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결국 여러 시비가 모두 헛짚은 셈이 되는데, 그렇다면 시인의 시적 진술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쓸모없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세 편 시를 함께 읽으며 글을 맺겠다. 먼저 김시습(金時習)도점(陶店)이란 작품이다.

 

兒打蜻蜓翁掇籬 아이는 잠자리 잡고 늙은인 울타리 엮는데
小溪春水浴鸕鷓  작은 시내 봄물에선 가마우지 멱을 감네.
靑山斷處歸程遠 청산도 끊어진 곳 갈 길도 아득해라
橫擔烏藤一箇枝 등나무 한 가지를 비스듬히 매고 간다.

 

도점은 지명이다. 아이가 잠자리를 잡는다고 했으니 계절은 한 여름이나 가을이라야 겠는데, 2구에서는 춘수(春水)’ 즉 봄물이라고 했다. 노자(鸕鷓), 즉 가마우지는 겨울 철새다. 해안 절벽의 바위 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논다. 소계(小溪)에서 멱이나 감고 노는 새가 아니다.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봄날 아이는 가을 잠자리를 잡고, 봄물에서 겨울 철새가 자맥질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였는지 허균(許筠)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노자(鸕鷓)노사(鷺鷥)’, 즉 해오라기로 슬쩍 고쳐 놓았다. 그래도 춘수(春水)’청정(蜻蜓)’은 요령부득이다.

 

다시 한 수 더. 유희경의 월계도중(月溪途中)이다.

 

山含雨氣水生烟 산은 빗기운 머금고 물엔 안개 피어나니
靑草湖邊白鷺眠 청초호 물가에선 백로가 조은다.
路入海棠花下轉 해당화 아래 들어 길은 돌아 나가고
滿枝香雪落揮鞭 가지 가득 향기런 눈 채찍 끝에 떨어지네.

 

강원도 양양 땅 청초호 곁을 지나 월계(月溪)로 향하는 길, 비가 오려는지 날이 꾸물꾸물하다. 호수에는 스물스물 안개가 피어올라 풍경을 지운다. 물가에선 할 일 없어 꾸벅꾸벅 백로가 졸고 있다. 여기서부터 길은 다시 바닷가 모래사장의 해당화 군락지대로 접어든다. 모퉁이를 돌아 채찍을 휘두르니 가지에 가득하던 향설(香雪)’이 분분히 흩날린다.

 

문제는 향설(香雪)’의 정체다. 말 그대로 가지 위에 소복히 쌓였던 흰 눈이 휘두르는 말채찍에 어지러이 흩날린다고 하면 한 겨울이라야 마땅한데, 산에는 빗기운, 백로가 졸고, 해당화 핀 것이 맞지 않는다. 향설을 해당화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린다고 보면 기막히게 좋기는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화 꽃잎은 진분홍빛인데다 6,7월에 꽃이 핀다. 계절도 맞지 않고 흰 빛과는 거리가 멀다. 해당화 아래서 길이 돌아나갔다고 했지, 언제 꽃이 피었다고 했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이때도 해당화 가지 위에 쌓인 눈을 날리우며 간다면 아무래도 전체 시의 분위기가 걸린다.

 

찔레꽃의 노랫말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란 것이 있다. 정작 찔레꽃은 눈처럼 흰 꽃이다. 그런데 작사자는 왜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을까? 찔레꽃과 해당화는 모두 장미과 장미류에 속하는 식물이어서 노래 속의 찔레꽃은 해당화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위 시에 보이는 해당화는 반대로 찔레꽃이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볼 때 향설이 이해될 수는 있겠지만, 이때도 문제는 찔레꽃은 해당화처럼 바닷가에 군락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용

목차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2. 이성적으로 시를 보려던 구양수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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