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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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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烟楊窣地拂金絲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幾被情人贈別離 이별의 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林外一蟬諳別恨 숲 밖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曳聲來上夕陽枝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김극기(金克己)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버들가지에 아지랑이 하늘대고, 연두빛 물이 오른 금실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봄날이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서로 잊지 말자고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전별하는 것은 당나라 이래의 오랜 관습이다. ‘()’()’가 음이 같은데다 버들은 꺾꽂이가 가능하므로, 우리는 비록 헤어졌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는 다짐을 여기에다 얹은 것이다. 통달역은 평안도 고원군(高原郡)에 있던 역이다. 이름 그대로 사통팔달의 길목이고 보니, 안타까운 이별의 사연이 적지 않았겠다.

 

문제는 3구다. 아지랑이 일렁이고 버들가지에 물오르는 봄날을 말하다가 갑자기 매미가 등장했다. 춘접추선(春蝶秋蟬)이라고, 매미는 7월도 지나 가을이 오는 어스름에 비로소 각질을 벗고 나와 목청이 터지는 곤충이다. 그렇다면 12구와 34구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의 단절이 있거나, 아니면 시인이 사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의경을 펼쳤던가 둘 중의 하나일 텐데, 전자로 보아야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님은 금세 돌아오마고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이른 봄날 이곳을 떠났다. 그런데 매미가 우는 가을이 오도록 오마던 님은 오시질 않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오가는 행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님을 기다린다. 오늘도 하루해가 그렇게 진다. 지는 해가 안타깝고 이별의 정한이 안타까워 깊은 속이 타는데, 저 숲 아래서 울고 있던 매미 한 마리가 매앰 소리를 내며 나 있는 곁의 나뭇가지로 날아오른다. 내 마음을 다 알겠다는 듯이 말이다. 해가 지니 안타까운데 저 나무 가지 끝에는 해가 조금 더디 지겠지. 그 사이에라도 님이 어서 왔으면 하며 높이 올라 멀리 보고픈 마음을 뜬금없이 매미에게 얹어본 것이다. 기다림은 이래서 늘 안타깝다.

 

이 시를 읽을 때 이런 시간의 경과를 간과하면, 영 앞뒤가 맞지 않는 시가 되고 만다. 독자들이 시인의 본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 재단해버리는 것은 큰 문제다. 옛 시화에서도 이런 잘못은 적지 않게 보인다. 시를 논리로 따지는 것이야 우스운 일이지만, 시를 감상하는 일은 어쩌면 그 불합리 속에 담긴 뜻을 새삼 헤아려 보는 일이기도 하다.

 

 

 

 

인용

목차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2. 이성적으로 시를 보려던 구양수

3. 한밤 중의 종소리에 담긴 진실

4. 시의 언어를 사실 언어로 받아들이다

5. 시의 과장된 표현에 딴지 걸기

6. 불합리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

7. 시에 숨겨진 시간의 단절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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