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서(渤海考序)
박제가(朴齊家)
요동의 경관 묘사
余嘗西踰鴨綠, 道靉陽至遼陽, 其間五六百里, 大抵皆大山深谷, 出狼子山, 始見平原無際, 混混茫茫, 日月飛鳥, 升沈于野氣之中. 而回視東北諸山, 環天塞地, 亘若畫一, 向所稱大山深谷, 皆遼東千里之外障也. 乃喟然而歎曰: “此天限也.”
夫遼東, 天下之一隅也, 然而英雄帝王之興, 莫盛於此, 葢其地接燕齊, 易覘中國之勢. 故渤海大氏以區區散亡之餘, 劃山外而棄之, 猶足以䧺視一方, 抗衡天下.
발해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던 우리나라 지식인의 한계
高麗王氏統合三韓, 終其世不敢出鴨綠一步, 則山川割據得失之迹, 槩可以見矣. 夫婦人之見, 不踰屋脊, 孩提之遊, 僅及門閾, 則固不足語垣墻之外矣. 士生新羅九州之內, 錮其目而廢其耳, 且不知漢唐宋明興亡戰伐之事, 而况於渤海之故哉?
고려가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음을 꾸짖는 이 책의 가치
吾友柳君惠風博學工詩, 嫺於掌故, 旣撰「廿一都詩注」, 以詳域內之觀. 又推之爲『渤海考』一卷, 人物郡縣世次沿革, 組縷纖悉, 錯綜可喜. 而其言也歎王氏之不能復勾麗舊疆也, 王氏之不復舊疆, 而雞林樂浪之墟, 遂貿貿焉自絶於天下矣. 吾於是有以知前見之相符, 而歎柳君之才能審天下之勢, 闚王覇之略, 又豈特備一國之文獻與葉隆禮ㆍ汪楫之書? 挈其長短而已哉! 故序而論之如此. 『貞蕤閣文集』 卷之一
해석
요동의 경관 묘사
余嘗西踰鴨綠, 道靉陽至遼陽, 其間五六百里, 大抵皆大山深谷, 出狼子山, 始見平原無際, 混混茫茫, 日月飛鳥, 升沈于野氣之中.
내가 일찍이 서쪽으로 압록강을 넘어 애양(靉陽)【현재 중국 요령성 단동(丹東)시 봉성만족자치현(鳳城滿族自治縣)에 속해 있는 애양진(靉陽鎭)을 가리킨다.】에서 요양(遼陽)【요령성 중부의 태자하(太子河) 중류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까지 그 사이 5~600리가 대체로 모두 큰 산과 깊은 골짜기였는데 낭자산(狼子山)을 나오자 막 끝없는 평원이 보여 까마득하고 아득했고 해와 달과 나는 새가 들판의 기운 속에 오르락내리락했다.
而回視東北諸山, 環天塞地, 亘若畫一, 向所稱大山深谷, 皆遼東千里之外障也.
고개 돌려 동북쪽의 모든 산을 보니 하늘을 에워싸고 땅을 막아 뻗쳐 있기가 일(一)을 그은 것 같았으니 앞에서 ‘큰 산과 깊은 골짜기’라고 말했던 것이 모두 요동 천 리 바깥의 보루였던 것이다.
乃喟然而歎曰: “此天限也.”
곧바로 한숨 쉬며 “여기가 하늘의 끝이다.”라고 탄식했다.
夫遼東, 天下之一隅也, 然而英雄帝王之興, 莫盛於此, 葢其地接燕齊, 易覘中國之勢.
대체로 요동은 천하의 한 구석이지만 영웅과 제왕이 흥기함이 여기보다 극성한 곳이 없었으니 대체로 땅이 연나라 제나라에 인접해 쉽게 중국의 형세를 엿볼 수 있어서다.
故渤海大氏以區區散亡之餘, 劃山外而棄之, 猶足以䧺視一方, 抗衡天下.
그러므로 발해의 대씨는 제각기 달리 흩어진 유민(遺民)으로 산외를 그어 버리고 오히려 웅거함으로 한 지방을 보며 천하를 대항했다.
발해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던 우리나라 지식인의 한계
高麗王氏統合三韓, 終其世不敢出鴨綠一步, 則山川割據得失之迹, 槩可以見矣.
고려의 왕씨는 삼국【후삼국을 말하기도 하고 삼한(三韓)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을 통일했지만 끝내 대대로 감히 압록강을 한 걸음도 나가질 못했으니 산천(山川)의 나누어 차지하고 막아 지키는 득실의 자취를 대체로 볼 수가 있다.
夫婦人之見, 不踰屋脊, 孩提之遊, 僅及門閾, 則固不足語垣墻之外矣.
대체로 아낙이 본 것은 용마루를 넘지 못하고 아이가 노는 것은 겨우 문에 이르니 진실로 담장 밖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士生新羅九州之內, 錮其目而廢其耳, 且不知漢唐宋明興亡戰伐之事, 而况於渤海之故哉?
선비가 신라의 영토 안에서 태어나 눈을 땜질하고 귀를 막았으며 또한 한나라와 당나라와 송나라와 명나라의 흥망이나 전쟁의 일도 모르는데 하물며 발해의 예전을 알랴?
고려가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음을 꾸짖는 이 책의 가치
吾友柳君惠風博學工詩, 嫺於掌故, 旣撰「廿一都詩注」, 以詳域內之觀.
나의 벗 유혜풍(柳惠風)은 널리 배우고 시를 잘 지으며 옛 일에 익숙해 이미 「이십일도시주(廿一都詩注)」를 찬술하여 우리나라 안의 볼거리를 상술했다.
又推之爲『渤海考』一卷, 人物郡縣世次沿革, 組縷纖悉, 錯綜可喜.
또한 그것을 확충해 『발해고』 1권을 지으니 인물(人物), 군현(郡縣), 왕의 계보[世次], 연혁(沿革)를 짜임새 있고 상세히 해서 뒤섞어 종합하니 기뻐할 만했다.
而其言也歎王氏之不能復勾麗舊疆也, 王氏之不復舊疆, 而雞林樂浪之墟, 遂貿貿焉自絶於天下矣.
‘왕씨가 고구려의 옛 강토를 회복할 수 없었음을 한탄했으니 왕씨가 옛 강토를 회복하지 못해 계림(雞林)과 낙랑(樂浪)의 터전이 마침내 어지러워져 스스로 천하에 단절되었다’고 말했다.
吾於是有以知前見之相符, 而歎柳君之才能審天下之勢, 闚王覇之略, 又豈特備一國之文獻與葉隆禮ㆍ汪楫之書? 挈其長短而已哉!
나는 이에 앞서 본 것에 서로 부합됨을 알게 되었고 유군의 재능이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왕도와 패도의 대략을 엿볼 수 있음에 감탄했으며 또한 어찌 다만 한 나라의 문헌과 섭융례(葉隆禮)가 엮은 남송의 역사책인 『국지(國志)』와 왕즙(汪楫)의 『명사(明史)』를 채우는 것이겠는가? 그 장단점을 이끌어낼 뿐이다.
故序而論之如此. 『貞蕤閣文集』 卷之一
그러므로 서문 지어 이와 같이 논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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