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벗 연꽃을 친구 삼은 안동자사
정우정기(淨友亭記)
배용길(裵龍吉)
凡物之可與爲友者, 己獨知之, 人莫之知也, 天獨許之, 人莫之許也, 斯友也, 其諸異乎人之友之歟? 古之人, 不偶於時則尙友於千古, 不諧於人則託意於外物, 斯皆己知而人不知, 天許而人不許者之所爲也.
李侯刺永嘉之明年, 於衙墉內得沮洳地, 石而增之, 茅而宇之, 種荷其中, 名曰淨友. 托其素知邑人裵龍吉, 錄其立亭月日與夫名亭本末.
夫蓮之爲物, 濂溪先生一說盡之, 此外惟李謫仙詩曰: ‘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者, 妙入三昧. 後之人, 雖欲巧加形容, 奈陽春白雪何?
若夫刺史立亭之意, 則可以敷演而次第之也, 刺史, 君子人也. 其取友也端, 其所寄興, 不於妖花艶卉紛紅駭白之物, 而獨眷眷於君子之叢. 世之於蓮也, 能知而賞之者有幾人耶? 或有取於松菊梅竹者, 非不美也, 皆取夫一節而好之, 豈若斯蓮之爲君子全德耶?
中虛似道, 外直似志, 香遠似德, 溫然可愛似仁, 不爲物染似義, 不與春葩爭輝似節, 子延人壽似才, 翠藕襜如似威儀. 是故, 惟君子爲能友蓮, 非君子, 雖有蓮, 不友之也. 故善友蓮者, 因以反諸身而進吾德, 若仁者之於山, 智者之於水也. 刺史力行古道, 爲政以慈祥爲務, 非道乎? 立心以的確爲主, 非志乎? 風化感人, 非德乎? 民得盡情, 非仁乎? 不犯秋毫, 非義乎? 智足以免世氛, 節也, 有臨民之具, 才也, 可畏而可象, 威儀也. 此乃深得蓮之情性, 不友之以目而友之以心. 心融神會, 不知淨友之爲蓮, 蓮之爲淨友, 眞所謂忘形之友也, 輔仁之友也. 其視世之酒食遊戲相徵逐, 仕宦得志相慕悅, 一朝臨利害, 反眼若不相識者, 亦逕廷矣.
余亦盆於蓮而玩之無斁, 其知之也亦可謂不淺矣. 異日不吿于侯而直造斯亭, 諷詠撫玩而還, 侯其不加誚否? 抑亦倒屣而迎之, 閉門投轄, 不許其出, 而使之留連, 同於看竹主人否? 若侯之才之德, 可謂全矣. 苟效世人炎冷之交則翺翔臺閣, 直與金馬玉堂人相伴久矣.
性本恬靜, 不喜附會, 適與君子花氣味暗合, 故只得優游於簿牒敲扑之間矣. 然鶴鳴子和, 宮鐘外聞, 府民豫憂其不得信宿於斯亭而留渚鴻之思也.
侯名某字某, 侯曾奏減本府無名稅布七百餘疋, 又知學校典籍燬於兵火, 用周官勻金束矢之法, 不私於己而將貿聖經賢傳, 以開來學, 斯其爲君子之實心, 而外此小惠, 今不暇及. 後之登斯亭者, 友斯友而心侯心, 則境中孑遺, 其亦庶乎永賴矣. 『琴易堂先生文集』 卷之五
해석
凡物之可與爲友者, 己獨知之, 人莫之知也, 天獨許之, 人莫之許也, 斯友也, 其諸異乎人之友之歟?
대체로 물건에 벗 삼을 만한 것은 자기만 홀로 그걸 알고 남들은 알지 못하며 하늘만이 홀로 그걸 허락하지 사람이 허락하지 못하니 이 벗이란 사람이 벗 삼는 것과는 다르리라.
古之人, 不偶於時則尙友於千古, 不諧於人則託意於外物, 斯皆己知而人不知, 天許而人不許者之所爲也.
옛 사람은 시기에 어우러지지 않으면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벗삼았고 사람에 어울리지 않으면 외물에 뜻을 붙였으니 이것은 모두 자기만 아는 것이지 남은 모르는 것이고 하늘이 허락한 것이지 남이 허락하지 않아 그리 한 것이다.
李侯刺永嘉之明年, 於衙墉內得沮洳地, 石而增之, 茅而宇之, 種荷其中, 名曰淨友.
이후(李侯)가 영가(永嘉, 안동)에 자사로 온 이듬해에 관아의 담장 안에 연못을 얻어 돌로 쌓았고 띠로 처마를 지어 그 가운데 연꽃을 심고서 ‘정우(淨友)’라 이름지었다.
托其素知邑人裵龍吉, 錄其立亭月日與夫名亭本末.
평소에 알던 읍 사람인 배용길(裵龍吉)에게 정자를 세운 날짜와 정자를 이름 지은 내역을 기록해달라 부탁했다.
夫蓮之爲物, 濂溪先生一說盡之, 此外惟李謫仙詩曰: ‘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者, 妙入三昧.
무릇 연꽃의 물건됨은 염계(濂溪) 선생의 「애련설(愛蓮說)」【염계는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호이다. 「애연설(愛蓮說)」은 연(蓮)을 군자에 빗대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지방관으로 공적을 세운 후 말년에는 혜원과 도생이 불법을 강론한 것으로 유명한 여산(廬山)에서 살았다. 여산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 선생이라 불렀다.】로 그것을 진술했고 이 외엔 오직 이적선(李謫仙)의 시【이적선은 이백(李白, 701~762)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경난리후 천은유야랑 억구유서회 증강하위태수양재(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 시에 보인다. 『李太白集 卷9』】에서 ‘’라고 한 것이 오묘해 삼매(三昧)에 든 것이다.
後之人, 雖欲巧加形容, 奈陽春白雪何?
훗날 사람이 비록 기교롭게 형용하길 더하려 해도 어찌 「양춘백설(陽春白雪)」【양춘백설(陽春白雪): 지음(知音)의 노래를 뜻한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던바,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한다. 『文選 卷45』】에 어찌하리오?
若夫刺史立亭之意, 則可以敷演而次第之也, 刺史, 君子人也.
자사가 정자를 세운 뜻이라면 부연하여 차례 지을 수 있으니 자사는 군자인 사람이다.
其取友也端, 其所寄興, 不於妖花艶卉紛紅駭白之物, 而獨眷眷於君子之叢.
그가 벗을 취함은 단정했고 흥을 덧붙인 것은 화려한 꽃떨기가 어지러이 붉고 혼란스레 흰 사물이어서가 아니라 홀로 군자의 떨기를 가슴에 연모해서[眷眷]다.
世之於蓮也, 能知而賞之者有幾人耶?
세상이 연꽃에 대해 알고서 그걸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인가?
或有取於松菊梅竹者, 非不美也, 皆取夫一節而好之, 豈若斯蓮之爲君子全德耶?
간혹 소나무나 국화나 매화나 대나무에서 취하는 것이 미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모두 하나의 절개를 취해 그걸 좋아하는 것이니 어찌 이 연꽃이 군자의 온전한 덕을 이룬 것과 같겠는가?
中虛似道, 外直似志, 香遠似德, 溫然可愛似仁, 不爲物染似義, 不與春葩爭輝似節, 子延人壽似才, 翠藕襜如似威儀.
속은 비어 도 같고 밖은 곧아 지조 같으며 향기는 멀리나 덕 비슷하고 온화한 듯 사랑할 만하니 인 같으며 사물에 물들지 않음은 의 같고 봄꽃과 빛을 다투지 않음은 절개 같고 열매는 사람의 목숨을 연장해주는 재주 같으며 비취색 연은 휘둘러 있으니 위의 같다.
是故, 惟君子爲能友蓮, 非君子, 雖有蓮, 不友之也.
이런 이유로 오직 군자만이 연꽃을 벗삼을 수 있고 군자가 아니라면 비록 연꽃이 있더라도 벗삼지 못한다.
故善友蓮者, 因以反諸身而進吾德, 若仁者之於山, 智者之於水也.
그러므로 잘 연꽃을 친구 삼는 이는 자기 몸에서 반성하여 나의 덕을 나아지게 하니 인한 사람은 산에 있어서나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있어서의 관계와 같다.
刺史力行古道, 爲政以慈祥爲務, 非道乎? 立心以的確爲主, 非志乎? 風化感人, 非德乎? 民得盡情, 非仁乎? 不犯秋毫, 非義乎?
자사는 옛 도리를 힘써 실행해 정치를 함에 자상함으로 힘을 쓰니 도가 아니겠는가? 뜻을 세움에 적확함으로 주를 삼으니 지가 아니겠는가? 교화가 사람을 감화시키니 덕이 아니겠는가? 백성이 정을 다할 수 있도록 하니 인이 아니겠는가? 가을 터럭만큼도 범하질 않으니 의가 아니겠는가?
智足以免世氛, 節也, 有臨民之具, 才也, 可畏而可象, 威儀也.
지혜가 넉넉히 세상의 풍파를 면하니 절개이고 백성에 다가가는 도구가 있으니 재주이며 두려워할 만하며 본받을 만하니 위의이다.
此乃深得蓮之情性, 不友之以目而友之以心.
이것은 연꽃의 성정(性情)을 깊히 터득한 것이니 눈으로 벗삼은 게 아니라 마음으로 벗삼은 것이다.
心融神會, 不知淨友之爲蓮, 蓮之爲淨友, 眞所謂忘形之友也, 輔仁之友也.
마음이 융합되고 정신이 만나 맑은 벗[淨友]이 연꽃이 된 것인지, 연꽃이 맑은 벗[淨友]이 된 것인지 모르니 참으로 ‘형체를 잊은 벗[忘形之友]’【망형의 벗[忘形之友]은 겉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마음으로 사귄 친구라는 뜻이다.】라, ‘인을 보필하는 벗[輔仁之友]’이라 말한 것이로구나.
其視世之酒食遊戲相徵逐, 仕宦得志相慕悅, 一朝臨利害, 反眼若不相識者, 亦逕廷矣.
세상에서 술과 밥과 놀이로 서로 불러 따르고 벼슬길에서 뜻을 얻어 서로 좋아하다가 하루아침에 이해에 닿으면 서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눈을 돌리는 것과 비교하면 또한 길이 어긋난다.
余亦盆於蓮而玩之無斁, 其知之也亦可謂不淺矣.
나는 또한 연꽃을 심어 즐겨보며 싫어하질 않으니 연꽃을 아는 것이 또한 얕지 않다고 할 만하다.
異日不吿于侯而直造斯亭, 諷詠撫玩而還, 侯其不加誚否?
다른 날에 이후(李侯)에게 말하지 않고 다만 이 정자에 와서 읊조리고 어루만지며 즐기고 돌아간다면 이후(李侯)는 꾸짖지 않을까?
抑亦倒屣而迎之, 閉門投轄, 不許其出, 而使之留連, 同於看竹主人否?
아니면 또한 신을 거꾸로 신고 맞이하고 문을 닫고 빗장을 던지며 나가길 허락지 않고 나로 머무르게 하며 ‘대나무를 보고서 주인을 물을 필요도 없다[看竹主人]’【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춘일여배적과신창리방려일인불우(春日與裴廸過新昌里訪呂逸人不遇)」에서 “대나무를 보고 주인이 누군지 물을 필요가 있는가.[看竹何須問主人]”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어느 집에 가서 그 정취를 살피면,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을 좋아하는 자사가 군자행(君子行)을 보일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던 것과 같게 할까?
若侯之才之德, 可謂全矣.
이후의 재주와 덕이라면 온전하다 할 만하다.
苟效世人炎冷之交則翺翔臺閣, 直與金馬玉堂人相伴久矣.
만약 세상의 염량세태의 사귐을 본받았다면 궁궐에 오고 가면서 다만 금마옥당(金馬玉堂)【금마옥당(金馬玉堂): 한림학사가 대조(待詔)하는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로, 조정 안의 화려한 내직(內職)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과 서로 사귄 지 오래였으리라.
性本恬靜, 不喜附會, 適與君子花氣味暗合, 故只得優游於簿牒敲扑之間矣.
성품은 본디 편안하고 고요해 어우러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마침 연꽃[君子花]과 기와 의미가 은근히 맞았기 때문에 다만 관청 문서처리와 곤장으로 처벌하는 사이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然鶴鳴子和, 宮鐘外聞, 府民豫憂其不得信宿於斯亭而留渚鴻之思也.
그러나 어미 학이 우니 새끼가 화답하고【鶴鳴子和: 『주역』 「중부(中孚)괘 구이(九二)」에 “우는 학이 그윽한 데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鳴鶴在陰 其子和之]”를 원용한 말이다. 자사와 백성의 마음이 동기감응(同氣感應)으로 화합되었음을 의미한다.】 궁궐의 종소리가 바깥에 들리니【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자사와 백성이 화합함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도 있고, 또는 임금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부민(府民)들이 미리 이 정자에서 이틀【신숙(信宿): 이틀 동안 묵음.】을 묵지 않을까 걱정해서 연못에 기러기를 머무게 하려 생각하고 있다【『시경』 「구역(九罭)」에 “큰 기러기 날아와 물가를 따라가니 공이 돌아갈 곳이 없겠는가. 너에게만 이틀 밤을 묵어가셨느니라. 큰 기러기 날아와 고원을 따라가니 공이 떠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리니, 너에게만 이틀 밤을 묵어가셨느니라. 이 때문에 곤의를 입은 분이 계시더니 우리 공은 돌아오지 말아서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지어다.[鴻飛遵渚 公歸無所 於女信處 興也 鴻飛遵陸 公歸不復 於女信宿 興也 是以有袞衣兮 無以我公歸兮 無使我心悲兮 賦也]”를 원용하여 자사의 덕망이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侯名某字某, 侯曾奏減本府無名稅布七百餘疋, 又知學校典籍燬於兵火, 用周官勻金束矢之法, 不私於己而將貿聖經賢傳, 以開來學, 斯其爲君子之實心, 而外此小惠, 今不暇及.
자사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자는 아무개로 자사는 일찍이 본부(本府)의 무명세(無名稅)인 베 700여필을 감해주길 주청했고 또 학교의 서적이 전쟁에 없어진 걸 알고 주례(周禮)의 균금속시(勻金束矢)【勻金束矢의 법 : 『주례』 「추관사구(秋官司寇)」에 “백성이 소송(訴訟)을 제기할 때는 반드시 양쪽에서 다 속시(束矢)를 조정에 바친 후에 판결을 내리고, 백성이 옥사(獄事)를 일으킬 때도 양쪽 문권(文券)과 균금(鈞金)이 다 조정으로 들어온 후 3일 만에 판결을 내린다.[以兩造禁民訟 入束矢於朝 然後聽之 以兩劑禁民獄 入勻金三日 乃致于朝 然後聽之]”라고 하였다. ‘균금속시’는 송사(訟事)나 옥사에 관련된 양쪽의 당사자들이 관청에 내는 일종의 공탁금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송사나 옥사의 빈번한 발생을 방지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처리를 위하여 시행된 제도인데, 여기서는 공평한 분배의 뜻을 취하여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취지로 인용되고 있다.】의 법을 사용해서 자기에게 사사롭게 하지 않고 성인의 경서과 현인의 전서에 힘써 후학자들을 열어주니 이것이 군자의 실제 마음이 되는 것이고 이것 외의 작은 은혜로움은 이제 언급할 겨를이 없다.
後之登斯亭者, 友斯友而心侯心, 則境中孑遺, 其亦庶乎永賴矣. 『琴易堂先生文集』 卷之五
훗날 이 정자에 오르는 이가 맑은 벗을 벗 삼고 자사의 마음을 신경쓴다면 지역내의 백성들이 또한 길게 힘입기에 가까우리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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