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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 북학의자서(北學議自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박제가 - 북학의자서(北學議自序)

건방진방랑자 2019. 8. 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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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윤택해진다면 배워서 실행해야 한다

북학의자서(北學議自序)

 

박제가(朴齊家)

 

 

余嘗慕崔孤雲趙重峯之爲人, 慨然有異世執鞭之願. 孤雲爲唐進士, 東還本國, 思有以革新羅之俗而進乎中國, 遭時不競, 隱居伽倻山, 不知所終. 重峯以質正官入燕, 其東還封事, 勤勤懇懇, 因彼而悟己, 見善而思齊, 無非用夏變夷之苦心. 鴨水以東千有餘年之間, 有以區區一隅, 欲一變而至中國者, 惟此兩人而已.

今年夏, 有陳奏之使, 余與靑莊李君從焉. 得以縱觀乎燕薊之野, 周旋于吳蜀之士, 留連數月, 益聞其所不聞, 歎其古俗之猶存, 而前人之不余欺也. 輒隨其俗之可以行於本國, 便於日用者, 筆之於書, 並附其爲之之利與不爲之弊而爲說也, 孟子陳良之語, 命之曰北學議.

其言細而易忽, 繁而難行也, 雖然先王之敎民也, 非必家傳而戶諭之也. 作一臼而天下之粒無殼者矣, 作一屨而天下之足無跣者矣, 作一舟車而天下之物無險阻不通者矣. 其㳒又何其簡且易也? 利用厚生, 一有不脩, 則上侵於正德, 故子曰: “旣庶矣而敎之.” 管仲: “衣食足而知禮節.” 今民生日困, 財用日窮, 士大夫其將袖手而不之救歟? 抑因循故常, 宴安而莫之知歟? 朱子之論學曰: “如此是病, 不如此是藥.” 苟明乎其病, 則藥隨手而至, 故於今日受弊之原, 拳拳. 雖其言之不必行於今, 而要其心之不誣於後, 是亦孤雲重峯之志也.

今上二年歲次戊戌秋九月小晦雨中, 葦杭道人朴齊家, 次修書于通津田舍. 貞蕤閣文集卷之一

 

 

 ▲ 「연행도(숭실대 박물관 소장)

 

 

해석

余嘗慕崔孤雲趙重峯之爲人, 慨然有異世執鞭之願.

나는 일찍이 고운 최치원과 중봉 조헌(趙憲)의 사람됨을 사모해서 억울해하며 다른 세상이라도 마부가 되길 원했다.

 

孤雲爲唐進士, 東還本國, 思有以革新羅之俗而進乎中國, 遭時不競, 隱居伽倻山, 不知所終.

고운(孤雲)은 당나라 진사가 되었고 동쪽으로 신라로 돌아와선 신라의 풍속을 혁파해 문명국으로 진출하길 생각했지만 만난 때가 융성하질 못해 가야산에 은거하며 마친 곳을 모른다.

 

重峯以質正官入燕, 其東還封事, 勤勤懇懇, 因彼而悟己, 見善而思齊, 無非用夏變夷之苦心.

중봉(重峯)은 질정관(質正官)으로 연경에 들어가 동쪽으로 봉사(封事)로 환국했고 부지런하고 간절하게 저것에 따라 자기를 깨우치고 선을 보고 같아지길 생각하며 중화의 법칙을 써서 우리나라를 변화시키려 고심하지 않음이 없었다.

 

鴨水以東千有餘年之間, 有以區區一隅, 欲一變而至中國者, 惟此兩人而已.

압록강 동쪽으로 천 여년 사이에 작디작은 한 모퉁이에서 한 번 변화시켜 문명국에 이르게 하고자 한 사람은 오직 이 두 사람뿐이다.

 

今年夏, 有陳奏之使, 余與靑莊李君從焉,

올 여름(1778)에 진주사(陳奏使)진주사(陳奏使): 조선(朝鮮) 시대(時代), 동지사(冬至使) 이외(以外)에 중국(中國)에 주청(奏請)할 일이 있을 때 보내던 사절(使節).가 있어 나와 청장 이덕무가 따랐다.

 

得以縱觀乎燕薊之野, 周旋于吳蜀之士, 留連數月, 益聞其所不聞, 歎其古俗之猶存, 而前人之不余欺也.

연경과 계주(薊州)북경 일대의 옛 지명의 들판을 맘껏 관람하고 오나라와 촉나라 선비들을 소개 받았으며 머문 지 수개월에 더욱 듣지 못한 것을 들으니 옛 풍속이 아직도 보존되서 선배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탄했다.

 

輒隨其俗之可以行於本國, 便於日用者, 筆之於書, 並附其爲之之利與不爲之弊而爲說也, 孟子陳良之語, 命之曰北學議.

언제고 풍속 중 우리나라에서 실행하여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썼고 아울러 그것을 실행해서 편안해지는 것과 그것을 실행치 못하는 폐단을 함께 덧붙여 설명하고서 맹자(孟子)와 진량(陳良) 말에서 취해 북학의(北學議)’라 이름지었다.

 

其言細而易忽, 繁而難行也, 雖然先王之敎民也, 非必家傳而戶諭之也.

그 말이 자잘해서 소홀히 하기 쉽고 번거로워 실행하기 어렵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선왕이 백성을 가르침에 반드시 집마다 전하고 집마다 가르쳤던 것은 아니다.

 

作一臼而天下之粒無殼者矣, 作一屨而天下之足無跣者矣, 作一舟車而天下之物無險阻不通者矣.

하나의 절구를 만드니 천하의 낱알은 껍질이 없어졌고 하나의 신을 만드니 천하의 발이 맨발이 없어졌으며 하나의 배나 수레를 만드니 천하의 물건이 험하더라도 통하지 않음이 없어졌다.

 

其㳒又何其簡且易也? 利用厚生, 一有不脩, 則上侵於正德, 故子曰: “旣庶矣而敎之.”

그 법이 또한 어찌 간단하고도 또한 쉽기만 하겠는가? 이용후생(利用厚生)이란 한 번 수행되지 않으면 위로는 바른 덕을 침범하기 때문에 공자께선 이미 가깝지만 그들을 가르쳐야지.”라고 하셨다.

 

管仲: “衣食足而知禮節.” 今民生日困, 財用日窮, 士大夫其將袖手而不之救歟? 抑因循故常, 宴安而莫之知歟?

관중은 옷과 밥이 넉넉해야 예절을 안다.”고 말했는데 지금 백성의 생활은 날로 힘겨워지고 재물의 씀은 날로 빈궁해지는데 사대부가 장차 수수방관하며 구하지 않으려 하는가? 아니라면 옛날 그대로를 따르는 것을 편안히 여기며 알지 않으려 하는가?

 

朱子之論學曰: “如此是病, 不如此是藥.”

주자가 학문을 논하며 이렇게 하는 게 병통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게 약이다.”라고 말했다.

 

苟明乎其病, 則藥隨手而至, 故於今日受弊之原, 拳拳.

만약 그 병에 밝으면 약은 손을 따라 이르기 때문에 오늘날 병폐의 근원을 더욱 가슴 속에 안았다.

 

雖其言之不必行於今, 而要其心之不誣於後, 是亦孤雲重峯之志也.

비록 그 말이 반드시 지금에 실행되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은 후대에 속이지 않을 것을 요구하니 이것이 고운과 중봉의 뜻이리라.

 

今上二年歲次戊戌秋九月小晦雨中, 葦杭道人朴齊家, 次修書于通津田舍. 貞蕤閣文集卷之一

지금의 정조대왕 2년 무술(1778)년 가을 7월 그믐 비 속에서 위항도인(葦杭道人) 박제가(朴齊家) 차수(次修)가 통진(通津) 시골에서 쓴다.

 

 

인용

작가 / 지도

앞 글(淨友亭記) / 뒷 글(渤海考序)

한국사 / 고미숙 / 한시사 / 문학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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