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一夜九渡河記 (9)
건빵이랑 놀자
6.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지은 이유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蹄則信地,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危語』者, 謂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 眞吾輩今夜事也.” 余曰: “此危則危矣, 非工於知危也.” 二人曰: “何爲其然也?” 余曰: “視盲者有目者也. 視盲者而自危於其心, 非盲者知危也, 盲者不見所危, 何危之有?” 相與大笑. 別有「一夜九渡河記」, 在「山莊襍記」. 인용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내가 오늘밤 이 황하를 건넌 것은 천하의 지극히 위험한 것이었다.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그러나 나는 말을 믿었고 말은 발굽을 믿었으며 蹄則信地, 발굽은 땅을 믿었으니,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고삐를 잡지 않은 공효를 거둠이 이와 같구나!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옛날에 고기古器를 팔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딱딱한 것이 돌이었는데, 술잔으로나마 쓰려 해도 밖은 낮고 안이 말려있는데다, 기름 때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녀 보아도 거들떠 보는 자가 있지 않자, 다시금 부귀한 집을 돌았지만 값은 갈수록 더 떨어져 수백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그것을 가지고 서여오徐汝五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여오가, “이것은 붓씻개이다.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온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니 민옥珉玉과 같은 것이다” 하고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그 때를 벗겨내자 앞서 딱딱하던 것은 바로 돌의 무늬결이었고, 쑥색을 띤 초록빛이었다...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윗글은 제자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연암 댁을 방문했던 일을 적은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란 소품 산문이다. 여기에는 연암이 사흘 굶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가난이 선비의 다반사라지만,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5월 그믐에 서편 이웃으로부터 걸어 연암 어른 댁을 찾았다. 때마침 희미한 구름은 하늘에 걸렸고, 숲속에 걸린 달은 푸르스름하였다. 종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은은하더니 나중엔 둥둥 점차 커지는 것이 마치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어른이 댁에 계실까 생각하면서 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먼저 그 집 들창을 살펴보았다.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季夏之弦, 步自西隣, 訪燕巖丈人...
1. 무더운 여름밤 연주하고 춤추던 친구들 이번에 읽을 두 편 글은 연암과 그 벗들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기가 답답해 가슴 터지기야 그들이 우리보다 덜하지 않았겠지만, 이런 풍류와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은 발광發狂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윗글의 제목은 「하야연기夏夜讌記」이다.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에게 갔다. 풍무風舞 김억金檍은 밤에야 도착하였다. 담헌이 슬瑟을 타자, 풍무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는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현실에 좌절하고 가난을 못이겨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 벗 백영숙白永叔을 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친구를 전송하면서도 글을 써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이니 영숙永叔은 그의 자이다.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당野餒堂이라 하였고 점재漸齋라고도 했다. 영숙永叔은 장수 집안의 자손이다. 그 선대에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이를 슬퍼한다. 영숙은 전서와 예서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다. 젊어서 말 타기와 활 쏘기에 뛰어나 무과에 뽑히었다. 비록 벼슬은 시명時命에 매인 바 되었으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만은 선조의 공덕을 ..
1.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상우천고를 외치다 옛날에 벗을 말하는 자는 벗을 두고 혹 ‘제이오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주선인周旋人’이라고도 하였다. 이런 까닭에 글자를 만든 자가 ‘우羽’자에서 빌려와 ‘붕朋’자를 만들고, ‘수手’자와 ‘우又’자로 ‘우友’자를 만들었으니,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이 양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吾, 或稱周旋人. 是故造字者, 羽借爲朋, 手又爲友. 言若鳥之兩翼, 而人之有兩手也. 벗은 ‘제 2의 나’이다. 나를 위해 온갖 일을 다 나서서 ‘주선해 주는 사람’이다. ‘붕朋’이란 글자는 ‘우羽’자의 모양을 본떴고, ‘우友’자는 ‘수手’자에 ‘우又’자를 포개 놓은 모양이다. 진정한 벗이란 새의 양 날개나, 사람의 두 손과 같이 어느 하나가 ..
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이번에 읽으려는 「호곡장好哭場論」은 『열하일기』의 한 부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요동벌과 상면하는 감격을 적은 글이다. 본래 제목이 없으나 선학先學의 명명命名을 따랐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가 북경과 열하 일대를 답사하고 펴낸 보고서, 『북경ㆍ열하사적관견北京熱河の史的管見』에서 결론 대신 이 글을 적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유씨도서보서柳氏圖書譜序」는 유련柳璉(1741-1788)이 자신이 수집한 고금의 인장印章을 찍어 한 권의 인보집으로 만든 『유씨도서보柳氏圖書譜』의 서문으로 써준 글이다. 연옥連玉 유련柳璉은 도장을 잘 새긴다. 돌을 쥐고 무릎에 얹고, 어깨를 기우숙하게 하여 턱을 숙이고서, 눈을 꿈뻑이고 입으로 불며 그 먹글씨를 파먹어 들어가는데 실낱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입술을 삐죽 모아 칼을 내밀고 눈썹에 힘을 주더니만 이윽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보며 길게 숨을 내쉰다. 連玉善刻章. 握石承膝, 側肩垂頤, 目之所瞬, 口之所吹, 蚕飮其墨, 不絶如絲. 聚吻進刀, 用力以眉, 旣而捧腰仰天而欷. 그는 전각篆刻에 취미가 있어 옥돌 위에 쓴 글씨가 끊어지는 법 없이 잘도 ..
3. 의주로에 경성감옥이 만들어진 이유 그렇다면 일본은 형무소를 왜 한양으로 들어서는 의주로의 초입길에 만든 것일까? ▲ 서대문 형무소가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 서대문 형무소는 왜 의주로에 만들어졌나? 일본은 청나라를 향해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들어오던 길목에 버젓이 감옥을 만들어 놓고 “청나라 너희들 이젠 조선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마!”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있으니, 연암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 황제가 왜 열하로 피서를 떠났는지 밝힌 대목과 정조의 능행(陵幸) 장면이 떠올랐다. 연암은 삼종형(三從兄)을 따라 황제 고희연의 축하사절단 자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몇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북경에 도착했지만,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