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옛날에 고기古器를 팔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딱딱한 것이 돌이었는데, 술잔으로나마 쓰려 해도 밖은 낮고 안이 말려있는데다, 기름 때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녀 보아도 거들떠 보는 자가 있지 않자, 다시금 부귀한 집을 돌았지만 값은 갈수록 더 떨어져 수백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그것을 가지고 서여오徐汝五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여오가, “이것은 붓씻개이다.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온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니 민옥珉玉과 같은 것이다” 하고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그 때를 벗겨내자 앞서 딱딱하던 것은 바로 돌의 무늬결이었고, 쑥색을 띤 초록빛이었다. 형상이 낮고 또 말려있던 것은 마치 가을 연잎이 시들어 그 잎새가 말려진 것과 같았다. 마침내 나라 안의 명기名器가 되었다. 有鬻古器而三年不售者. 質頑然石也, 以爲飮器也, 則外窳而內卷, 垢膩之掩其光也. 遍國中, 未有顧之者, 更歷富貴家, 價愈益下, 至數百. 一日有持而示徐君汝五者. 汝五曰: “此筆洗也. 石産於福州壽山五花石坑, 次玉而如珉者也.” 不問値高下, 立與八千. 刮其垢, 而昔之頑然者, 乃石之暈, 而艾葉綠也. 形之窳且卷者, 如秋荷之枯, 而卷其葉也. 遂爲國中之名器. |
진귀한 골동품도 그 위에 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고 보니 쓸데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술잔으로 쓰자니 너무 평평하여 도무지 쓸모가 없어 보여 겉보기로는 여늬 막돌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제 임자를 만나 묵은 때를 벗겨내자, 저 유명한 복주 수산석, 그 중에서도 가장 상품으로 치는 오화석갱에서 파낸 돌로 만든 붓씻개였다. 마른 연잎 모양으로 끝을 살짝 안으로 오무려 그 가운데로 물을 흘리게 만든, 엷은 쑥색을 띤 진귀한 물건이었다. 먹은 아교로 뭉친 것이니 글씨를 쓰고 나서 그때마다 씻어두지 않으면 굳어져 붓을 버리고 만다. 이 붓씻개로 붓을 씻어 간수해 두면 붓끝이 금세 모지라질 염려가 없으니 文房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었다.
돌은 돌이되 돌이 아니니, 옥 다음 가는 민옥珉玉과 같다고 했다. 그 날로 그 돌은 모든 사람이 탐내는 골동품이 되었다. 3년간 그렇게 사라고 할 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돌이었다. 팔려는 사람도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지 못했고, 사려는 사람도 그것을 알아볼 안목이 없었으니, 삼년이 지나는 동안에 값이 5백전까지 내려간 것도 괴상한 일이 아니다.
여오는, “천하의 물건이 그릇으로 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건대 그 마땅함을 얻어야 쓰이는 것일 뿐이다. 대저 붓털이 먹을 머금어 아교가 굳어지면 끝이 쉬 무지러지므로 늘 그 먹을 씻어 내어 부드럽게 해주는데, 이것은 붓을 씻기 위해 만든 그릇이다”라고 한다. 대저 書畵와 골동은 수장하는 자와 감상하는 자 두 종류가 있다. 감상하는 안목은 없으면서 한갓 수장만 하는 자는 돈만 많아 단지 그 듣는 대로 믿는 자이고, 감상하는 안목은 뛰어나지만 능히 수장하지 못하는 자는 가난해도 그 눈을 저버리지는 않는 자이다. 우리나라에 비록 간혹 수장가가 있긴 하지만, 책이란 것은 중국 복건성 건양建陽에서 찍어낸 방각본이요, 서화는 강소성 금창金閶에서 만든 가짜일 뿐이다. 밤 껍질 빛깔의 청동화로에 곰팡이가 피었다고 갈아버리려고 하고, 장경藏經의 종이가 더럽다고 씻어내려 한다. 엉터리 나쁜 물건을 만나서는 그 값을 높게 주고, 보배론 물건은 버려두어 수장할 줄 모르니 그 또한 슬퍼할만할 따름이다. 汝五曰: “天下之物, 其有不器者乎? 顧所以用得其當耳. 夫毫之含墨, 膠固則易禿, 常滌其墨而柔之, 此其器之爲筆洗也.” 夫書畵古董, 有收藏鑑賞二家. 無鑑賞而徒收藏者, 富而只信其耳者也; 善乎鑑賞而不能收藏者, 貧而不負其眼者也. 東方雖或有收藏家, 而載籍則建陽之坊刻; 書畵則金閶之贋本爾. 栗皮之罏, 以爲黴而欲磨, 藏經之紙, 以爲涴而欲洗. 逢濫惡, 則高其値, 遺珍秘, 而不能藏, 其亦可哀也已. |
“천하에 그릇으로 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어디에 써야할 지 모를 뿐이다.” 이것은 여오汝五 서상수徐常修(1735-1793)의 말이다. 모든 것은 임자를 만나 적재적소에 쓰임을 얻을 때만 그 본래의 빛을 발한다. 안목이 없으면 진귀한 옥돌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막돌 대접을 받는다.
세상에는 골동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 안목 갖춘 사람에게 재력까지 뒤따라 준다면 좀 좋으랴만 이 두 가지는 항상 서로 따로 노니 그것을 슬퍼한다. 안목은 없이 그저 제 호사 취미를 뽐내려고 골동을 수집하는 사람은 그저 장사꾼이 말하는 대로 믿고, 달라는 대로 돈을 준다. 그 값이 얼마나 비싼가가 그들의 관심사일 뿐,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애초부터 감식할 안목은 없으니 그것을 기대할 터수는 못되고, 그들은 얼마짜리 골동품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청동화로에 세월이 앉아 푸른 꽃이 피어나면 그것이 보기 싫다고 갈아 없애려는 인간들이다. 해묵은 고서에 때가 많이 묻었다고 백반을 풀어 새 책처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사람들이다. 진짜 같은 가짜를 보면 혹해서 물건 값을 따지지 않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경쟁을 하고, 정작 허름해 보이는 진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소 여물통을 응접실에 갖다 놓고 자랑하고, 흰 요강을 들고서 백자라고 우긴다. 옛것이면 무조건 좋은가? 오래된 것이면 무조건 보배로운가? 카펫트 대신 거친 멍석 돗자리를 깔면 그 삶이 그만큼 고풍스러워 지는가? 알지 못할 일이다.
2. 감식안을 가진 자에겐 才思가 필요하다
신라의 선비는 당나라로 가서 국학에 입학하였고, 고려 사람은 원나라에 유학하여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니, 안목을 열고 흉금을 틔울 수가 있었다. 그 감상의 배움에 있어서도 대개 또한 당시 세상에서 환하게 빛났었다. 조선 이래로 3,4백년 동안 풍속이 날로 비루해져서 비록 해마다 연경과 교통한다고는 해도 썩어버린 한약재나 거칠고 성근 비단 따위뿐이다. 하우夏虞ㆍ은주殷周 적의 고기古器나 종요鍾繇ㆍ왕희지王羲之ㆍ고개지顧愷之ㆍ오도자吳道子의 진적이 어찌 일찍이 단 한 번이라도 압록강을 건너 왔겠는가? 新羅之士, 朝唐而入國學; 高麗之人, 遊元而登制科, 能拓眼而開胸. 其於鑑賞之學, 蓋亦彬彬於當世矣. 國朝以來, 三四百年, 俗益鄙野, 雖歲通于燕, 而乃腐敗之藥料, 麤疏之絲絹耳. 虞夏殷周之古器, 鍾王顧吳之眞蹟, 何嘗一渡乎鴨水哉? |
사정이 이렇고 보니 세상에는 진짜는 없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이 판치게 되었다. 막돌 같은 진짜는 켜켜이 앉은 때에 절어 이집 저집 돌아다녀 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그림이라고 사모은 것이 전부 근래에 그려진 가짜뿐이고, 도자기도 전부 요새 만들어 그럴듯하게 약품 처리한 것들뿐이다. 웬 놈의 추사 글씨는 그렇게도 많으며, 단원과 혜원의 그림은 어찌 그리 흔한 것이냐. 나는 우리 동네 허름한 수퍼마켓에서도 이른 바 추사의 글씨를 본 일이 있다. 그들은 제 것을 자랑하기에 바빠 도무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근세의 감상가로는 상고당尙古堂의 김씨를 일컫곤 한다. 그러나 재사才思가 없고 보면 아름다움을 다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대개 김씨가 개창한 공은 있지만 여오는 꿰뚫어보는 오묘한 식견이 있어 무슨 물건이든지 눈을 거치기만 하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낸다. 여기에 재사까지 아울렀으니 감상을 잘하는 자라 하겠다. 여오는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운데다 문장에 능하고 소해小楷를 잘 쓴다. 아울러 미불米芾의 발묵법潑墨法에 뛰어나고 한편으로 음악에도 정통하였다. 近世鑑賞家, 稱尙古堂金氏, 然無才思, 則未盡美矣. 蓋金氏有開創之功, 而汝五有透妙之識, 觸目森羅, 卞別眞贋. 兼乎才思, 而善鑑賞者也. 汝五性聰慧, 能文章, 工小楷. 兼善小米潑墨之法, 旁通律呂. |
진정한 감상자가 되려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안목 외에 갖추어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재사才思다. 이것이 없으면 그는 그저 보통의 골동품 거간꾼에 머물 뿐이다. 진짜와 가짜를 금세 판별해내고 값을 매기는 것은 경험과 안목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재사가 없으면 마침내 2류에 머물고 만다. 여기서 연암이 말한 재사란 무엇일까? 그것은 안목을 넘어 삶 속에서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이다. 물건을 보면 그것을 만들 때의 정경이 떠오르고, 그것을 매만지며 아끼던 옛 주인들의 마음자리가 떠올라야 한다. 여오는 문장도 잘하고 글씨도 잘 쓰며, 미불의 발묵법도 체득하여 그림도 잘 그린다. 그뿐인가. 음악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 그러니 책을 보면 그 글을 보고서 그 가치를 판단하고, 글씨와 그림을 보면 그 필세와 붓질과 채색 베푼 것을 보고 그 솜씨의 높고 낮음을 일별해 낸다. 그는 음악을 알기에 묵은 악기를 보더라도 금새 그 가치를 알아본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되고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인지는 경험 있는 거간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매만지던 악기인 것까지 짐작할 수 있으려면 바로 이 재사가 필요하다.
3. 골동품 감식안은 완물상지가 아니다
봄 가을 한가한 날에는 마당에 물을 뿌려 쓸고는 향을 살라놓고 차를 끓여 감상하였으나, 늘 집이 가난하여 수장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또 세속에서 이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댈까 염려하여 답답해하며 내게 말하였다. “나를 완물상지玩物喪志로 비웃는 자들이야 어찌 참으로 나를 아는 것이겠는가? 대저 감상이란 것은 『시경』의 가르침일세. 곡부曲阜의 신발을 보고서 어찌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자가 있겠으며, 점대漸臺의 북두성을 보고서 어찌 경계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내가 이에 그를 위로하여 말했다. “감상이라는 것은 구품중정九品中正, 즉 품계 매김을 바르고 공정하게 하는 학문일세. 옛날에 허소許劭가 착하고 간특함을 판별함이 몹시 분명하였다고 하나, 당시 세상에서 능히 허소를 알아준 자가 있단 말은 듣지 못하였네. 이제 여오가 감상에 뛰어나 뭇사람이 버린 가운데서 이 그릇을 능히 알아보고 찾아내었으니, 아아! 여오를 알아줄 사람은 그 누구란 말인가? 春秋暇日, 汛掃庭宇, 焚香品茗, 嘗歎家貧, 而不能收藏. 又恐流俗從而噪之. 則顧鬱鬱謂余曰: “誚我以玩物喪志者, 豈眞知我哉! 夫鑑賞者, 詩之敎也. 見曲阜之履, 而豈有不感發者乎? 見漸臺之斗, 而豈有不懲創者乎?” 余乃慰之曰: “鑑賞者, 九品中正之學也. 昔許劭品藻淑慝, 判若涇渭, 而未聞當世能知許劭者也. 今汝五工於鑑賞, 而能識拔此器於衆棄之中, 嗚呼! 知汝五者, 其誰歟?” |
그러나 안타깝다. 세상 사람들은 골동품에 취미가 있다고 하면, 금세 호사 취미라고 나무라고, 완물상지라고 야단친다. 완물상지, 기물器物로 희롱하여 노는 것에 빠지면 본래의 바른 뜻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군자는 이런 것에 힘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서경』에 나오는 성현의 말씀이다. 물건에 뜻을 빼앗기면 학문에서 멀어진다. 도를 멀리하는 사람은 군자라 할 수 없다. 여오는 자신의 골동 취미를 세상 사람들이 이렇듯이 완물상지로 비웃을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더욱이 안목과 재사를 갖추고서도 정작 그것을 사서 제 소유로 할 경제적 능력조차 없으니 그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세상사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것들에 입김을 불어넣어 가치로운 제 빛깔을 드러내 주는 일이 완물상지인가? 그것을 매만지던 옛 고인의 체취를 그리워하며, 나도 그들과 같이 살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 완물상지인가? 먹물로 검어진 붓을 정성스레 씻으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릇 위로 물을 흘려서 검은 먹물이 씻겨 내려가고, 마침내 깨끗해진 붓의 물기를 수습해서 다시 筆架에 걸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내가 그 위로 물을 흘리고, 또 먼 훗날에 어떤 사람이 그 위로 물을 흘려 붓을 씻고 마음을 씻겠구나 생각하면 나도 몰래 흐뭇해지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완물상지인가?
4.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법
“여보게, 연암!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무엇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던가? 『시경』에 실려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야 무에 대수로울 게 있겠나? 그러나 그 한편 한편의 행간에 담긴 마음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문득 느껴 감발感發되는 것이 있고, 저래서는 안 되지 하며 징창懲創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시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그 많은 주석을 줄줄 꿴다고 해서 『시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네. 그 마음을 읽어야지. 그것이 내 삶과 관련지어질 수 있어야지. 그저 지식으로만 읽는 『시경』에서 어찌 ‘사무사思無邪’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단지 이 물건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래서 값이 얼마인줄만 잘 안다고 진정한 감상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골동품을 사고팔아 그것으로 밥 먹고 사는 거간꾼에 지나지 않을 거란 말일세.
곡부에서 공자께서 예전 신으셨다는 다 썩은 신발을 보면 그때 당시 천하를 주유하시던 그 안타까운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날 터이고, 후한 때 점대漸臺의 쇠로 만든 북두성을 보면 왕망이 신나라를 세운 후 온갖 참람한 짓을 하다가 그곳에서 군사들의 칼에 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일이 떠올라 절로 외람됨을 경계하는 마음이 들 것이 아닌가. 우리가 골동품을 애완하면서 갖는 마음이 이러할 진대 그것을 어찌 완물상지라 할 것인가? 나는 사람들이 실속도 없이 헛된 명성이나 쫓고, 그저 물건 값의 높고 낮음으로 가치를 평가하며, 벼슬이 높으면 우러러 존경하고, 지위가 낮으면 업수이 여겨 깔보는 그런 부박한 풍조를 슬퍼한다네.”
연암은 대답한다.
“여보게, 여오! 그건 그리 낙심할 일이 아니라고 보네. 내가 옛 사람의 물건을 통해 옛 사람의 그 풍도를 그리워하고, 내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붓씻개가 자네의 눈을 거치자 갑자기 보배로운 물건이 되었듯이, 남들이 매일 보면서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사물들 속에서 이전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춰진 의미를 읽을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면 그것으로 내 삶이 그만큼 더 넉넉해 질 터이니,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그 붓씻개로 붓을 씻고 내 마음을 씻고, 그때마다 내 삶의 자리를 한 번씩 되돌아보면 오히려 넉넉치 않겠는가? 가짜들이 더 진짜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가끔씩 그것이 기실은 가짜이고 진짜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때에 절어 묻혀 있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세상은 언제나 가짜들이 득세하게 마련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정말 지혜로운 안목 앞에서 가짜들은 결코 제 몸을 숨길 수가 없네. 가짜로는 단지 가짜들을 속여 먹을 수 있을 뿐이지. 진짜는 언제까지 진짜일 뿐일세. 진짜가 가짜 되는 법이 있던가? 단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너무 마음 쓰시지 마시게.”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하루는 비가 오는데 마루를 배회하시다가 갑자기 쌍륙을 끌어당겨 왼손 오른손으로 주사위를 던져 갑ㆍ을 양편으로 삼아 대국을 하셨다. 그때 손님이 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놀이를 하셨다. 이윽고 웃으며 일어나셔서 붓을 당겨 남의 편지에 답장을 쓰시기를, “사흘 주야로 비가 내려 사랑스러운 한창 핀 살구꽃이 녹아서 붉은 진흙으로 되었습니다. 긴긴 날 애를 태우며 앉아서 혼자 쌍륙을 가지고 논답니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지요. ‘다섯이야!’ ‘여섯이야!’ 부르짖다 보니 오히려 상대편과 나라는 사이가 생겨나서, 승부에 마음이 쓰여 적수가 뒤집어지더군요. 나는 저를 모르겠답니다. 꼭같은 내 양손에 대해서도 사사롭게 여기는 바가 있는 것일까요? 저 나의 양 손이 이미 이쪽저쪽으로 편이 갈리고 보면 상대편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는 저 양손에 대해서는 역시 조물주와 같은 존재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은 부추기고 한쪽은 억누르기를 이같이 하다니요. 이제 비에 살구꽃이야 비록 쇠락해 떨어졌겠으나 복사꽃은 선명하게 곱겠지요. 나는 여기서 또 모르겠습니다. 저 조물주가 복사꽃을 부추기고 살구꽃을 억누르는 것 역시 사사로운 바가 있어서일까요?”하셨다. 손님은 웃으면서, “나는 본디부터, 선생께서 쌍륙에 뜻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일단의 글을 구상해내시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하였다.
-『역주과정록』, 박종채 저/김윤조 역주, 태학사 간, 295쪽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를 회억하며 쓴 글의 한 대목이다. 편지글에 답장을 쓰다가도 막힌 생각을 뚫기 위해 연암은 혼자 쌍륙을 놀았다. 그의 글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이러한 고심참담 끝에 나왔다. 읽다보면 늘 행간을 가늠키 어려워 허우적거리기 일쑤지만, 그래서 오늘날 그것은 켜켜이 때가 앉은 붓씻개 같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그의 글은 진짜다. 지금까지도 시퍼렇게 날이 선 진짜다.
서구의 담론만이 진짜인양 행세하는 동안, 정작 우리 것은 기름 때에 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서여오가 그랬듯이 뭇 사람이 버린 가운데서 그 그릇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묵은 때를 벗겨낼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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