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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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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승기(義勝記)」의 주제 의식 고찰 이 연 순* 목차(目次) 1. 서론 2. 「의승기」 창작의 배경 1) 의승기 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 병자호란과 심경부주 2) 가전체 소설과 달라진 소설의 위상 3) 16세에 의승기를 짓도록 만든 요인들 4) 임영은 19세 이후에 문학보단 학문에 심취하다 5) 짧은 벼슬길과 다시 빠져든 心學 3. 「의승기(義勝記)」의 주제 의식 1) 매우 간단한 천군 묘사 2) 전대 천군소설과의 확연한 차이점 3) 宦, 도둑이 사는 공간에 대한 묘사 4) 인물 형상을 통한 敬과 義의 조화 추구 5) 意馬와 浩然之氣 6) 기존 천군소설과의 다른 전개인 武의 중시와 남는다는 결말 7) 주제는 敬과 義의 조화다 4. 의의와 결론 인용 한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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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의와 결론 이상으로 「의승기」의 창작 배경과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의승기」의 창작 배경인 17세기 중반의 사회 분위기와 문단의 경향을 살피고, 창계의 생애와 학문에서 작품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파악한 후, 작품 속의 공간 설정과 인물들의 형상화, 그리고 제목의 의미 등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낸 면모를 연관하여 살필 수 있었다. 창계의 생애를 통해 의승기를 읽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의승기」는 지상에 국한한 공간을 설정하여 천군 또한 지상의 존재로서 처음에 덕을 지닌 점만이 소개되었다가 도적의 침입을 겪고 나서야 성성옹의 도움을 받으며 호(號)와 역수(曆數) 등을 정하는 것으로 나오는 점이 전대 천군소설들과 다른 점임을 밝혔다. 천군이 즉위한 지 3년이 지나 도적이 나타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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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주제는 경(敬)과 의(義)의 조화다 이상 「의승기」의 인물 형상에서 敬을 대변하는 성성옹의 묘사가 적은 대신 행적을 통해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 義를 대변하는 맹호연에 대해서는 그 자체의 형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물들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義와 仁을 함께 존중하고 부각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경과 의 중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지 않고 둘을 조화롭게 추구한 작품의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의승기」는 제목에서도 경과 의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의승’이라는 말은 원래 ‘태공단서(太公丹書)’, 곧 강태공이 지은 ‘단서’에 나오는데, 현재 『대대례기(大戴禮記)』 권6 무왕천조제59(武王踐阼第五十九)에 전해진다. 이의 전체 문장은 “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고, 태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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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존 천군소설과의 다른 전개인 무(武)의 중시와 남는다는 결말 맹호연의 강조는 무(武)에 대한 강조 이처럼 맹호연은 천군의 나라에 침입한 도적을 퇴치하는데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그 주변 사물들까지 의물화되어, 그보다 묘사가 소략한 성성옹에 비해 더욱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맹호연의 용맹함을 강조하여 묘사한 것은 당시 청나라의 무력적 침입으로 무너진 조선 사회에서 무(武)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부분에서 당시 유자로서 병자호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의 회복의지가 보이는 것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성성옹의 묘사는 소략한 대신, 그 행적에는 의미가 부여되는데, 이는 마지막에 성성옹이 잔존하는 도적을 천군이 문교로 교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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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마(意馬)와 호연지기(浩然之氣) 여러 천군소설에 나타난 의마(意馬) 또한 도적을 소탕하러 가기 전 맹호연의 맹세가 끝난 뒤 ‘의마(意馬)’, ‘충신갑(忠信甲)’, ‘인의순(仁義楯)’, ‘물자기(勿字旗)’ 등 주변의 사물들이 소개되는데, 이는 의물화되어 그의 됨됨이에 덧붙여 맹세의 각오를 담아내는 데 한몫한다. 의마는 본래 『유마경』에 나오는 불교 용어로, ‘심원의마(心猿意馬)’에서 취한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 산란해진 상태를 마치 원숭이와 말이 제어하기 어려운 것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의승기」에서는 충신인 맹호연이 천군을 대신해 도적의 세계에 타고 들어가는 말[馬]로 나왔다. 의마는 백호의 「수성지」와 후대 정기화의 「천군본기」에도 등장한다. 「수성지」에서는 천군이 의마를 타고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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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형상을 통한 경(敬)과 의(義)의 조화 추구 경(敬)을 대변하는 성성옹 「의승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맹호연의 묘사가 가장 많고, 성성옹의 묘사는 그에 비하면 소략하다. 먼저 성성옹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다. 성성옹은 처음 도적을 없애고 천군을 다시 왕위에 올리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마침 한 사람이 스스로 성성옹(惺惺翁)이라 하며 나라의 도적을 제거하고 임금을 불러 돌아와 대위(大位)에 다시 나아가게 하니, 마치 항량이 초왕을 얻은 고사와 같이 구하여 얻었다. 왕의 이름이 또 초왕과 같아 마침내 의제(義帝)라 호하고 화덕(火德)으로 임금노릇하며 하나라의 역수(曆數)를 썼다. 適有一人自稱惺惺翁, 稍除國賊, 喚君而歸, 復卽于大位, 以其求而得之, 如項梁得楚王故事, 王之名又與楚王同, 遂號義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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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환(宦), 도둑이 사는 공간에 대한 묘사 그 후 맹호연이 남은 도적을 공격하러 도적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그제야 도적이 사는 공간과 그 정체를 소개하는 부분이 자세히 묘사된다. 큰 바다가 있는데, 그 남쪽의 환(宦)이라는 데를 지나가니 이는 도적의 제일 요해처이다. 파도가 세차게 솟아올라 세상에 넘쳐 날 듯하였다. 앞의 배가 이미 뒤집어지고 뒤에 오는 것도 그치지 않아서, 돛대는 꺾어지고 노는 부러져 몇 천 개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도적을 치러 온 병사는 왕왕 이곳에 이르러 회군하였다. 관문을 명리(名利)라 하고, 산은 분심(忿心)이라 하며 골짜기는 욕심(慾心)이라 하니 모두 도적이 의지하여 험한 것으로 여겼다. 有大海經其南曰宦, 乃賊第一要害處, 波濤洶湧, 沃日滔天, 前船旣覆, 後來者不止, 崩檣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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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대 천군소설과의 확연한 차이점 전대 천군소설의 자세한 천군묘사 이처럼 「의승기」의 천군이 등장하는 첫 부분은 전대 천군소설들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곧 천군이 천상에서 내려오기까지 과정과 그 인물묘사가 장황하고, 충신들이 등장해 천군으로서 갖추어진 모습을 보이는 「천군전」이나 「수성지」 등과 달리 「의승기」의 천군은 처음부터 지상에서 자리 잡은 인물로 나오고 그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없다. 동강의 「천군전」에서는 천군의 이름이 처음에 ‘理’였다가 인간세계로 내려오면서 ‘심(心)’으로 고쳤다하고, ‘신명전’에서 조회할 때 태재 경과 백규 의에게 명하는 등, 인간세계에서 천군이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요소인 이름과 공간, 그리고 충신까지 함께 장황하게 소개하며 시작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또 백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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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승기(義勝記)」의 주제 의식 1) 매우 간단한 천군 묘사 「의승기」는 천군(天君)이 즉위한 지 3년이 지나면서 덕이 쇠해 盜賊이 침입하자 천군이 황야로 피해 10년간 방황하다 성성옹에 의해 다시 왕위에 오르고 맹호연을 뽑아 도적을 퇴치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전개된다. 그런데 「의승기」에는 천상의 공간이 작품 속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의식상에서도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다. 천군은 처음부터 천상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대인 요순임금이 계셨던 영대(靈臺)에서 어거하며, 태평세월을 구현하다 도적의 침입을 받고 방황하다 맹호연의 도움으로 도적을 퇴치하고 성성옹의 간언을 받아들여 남은 도적까지 교화시키는데, 그 후에도 천상으로 돌아갔다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소략한 천군..
5) 짧은 벼슬길과 다시 빠져든 심학(心學) 32세에 벼슬에 나가며 갈등을 느끼다 창계 생애 중 16세에 「의승기」를 통해 드러냈던 마음[心]의 중요함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때는 37세 이후이다. 그 사이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은 창계 32세 때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숙종 6)으로 남인이 몰각하고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창계도 기회를 얻어 벼슬길에 나서게 되는 일이다. 창계는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처음에는 사양하였다가【이우성, 『한국고전의 발견』, 한길사, 2000, p.306.】 결국 정언을 거쳐 부수찬, 이조 좌랑, 35세에 이조정랑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그해 모친상을 당하고,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면서 부여 용담 소림촌으로 이주하고 더 이상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처럼 창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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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물 형상을 통한 경(敬)과 의(義)의 조화 추구 경(敬)을 대변하는 성성옹 「의승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맹호연의 묘사가 가장 많고, 성성옹의 묘사는 그에 비하면 소략하다. 먼저 성성옹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다. 성성옹은 처음 도적을 없애고 천군을 다시 왕위에 올리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마침 한 사람이 스스로 성성옹(惺惺翁)이라 하며 나라의 도적을 제거하고 임금을 불러 돌아와 대위(大位)에 다시 나아가게 하니, 마치 항량이 초왕을 얻은 고사와 같이 구하여 얻었다. 왕의 이름이 또 초왕과 같아 마침내 의제(義帝)라 호하고 화덕(火德)으로 임금노릇하며 하나라의 역수(曆數)를 썼다. 適有一人自稱惺惺翁, 稍除國賊, 喚君而歸, 復卽于大位, 以其求而得之, 如項梁得楚王故事, 王之名又與楚王同, 遂號義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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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제 의식 1) 매우 간단한 천군 묘사 「의승기」는 천군(天君)이 즉위한 지 3년이 지나면서 덕이 쇠해 盜賊이 침입하자 천군이 황야로 피해 10년간 방황하다 성성옹에 의해 다시 왕위에 오르고 맹호연을 뽑아 도적을 퇴치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전개된다. 그런데 「의승기」에는 천상의 공간이 작품 속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의식상에서도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다. 천군은 처음부터 천상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대인 요순임금이 계셨던 영대(靈臺)에서 어거하며, 태평세월을 구현하다 도적의 침입을 받고 방황하다 맹호연의 도움으로 도적을 퇴치하고 성성옹의 간언을 받아들여 남은 도적까지 교화시키는데, 그 후에도 천상으로 돌아갔다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소략한 천군에 대한 묘사 천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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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계의 생애와 문학 성향 창계의 가계와 영향 창계 임영은 나주를 본관으로 하고, 1649년 서울 외가에서 출생하여, 17세에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 1628~1669)에게 수학하기 시작한 후,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1~1695),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과 평생을 가까운 사이로 보냈고,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1638~1689),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등과 교유하였다. 창계의 선대에는 비록 직계는 아니지만 임제(林悌, 1549~1587)와 같은 유명한 문인이 있고, 외가에는 외증조부 조희일과 그 동생인 조희진의 손자 조성기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이종범, 「滄溪 林泳의 學問과 政論」, 『韓國人物史硏究』 제9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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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승기」 창작의 배경 1) 17세기 중반의 사회ㆍ문화적 배경 병자호란이 미친 지식인의 은둔 창계가 태어나기 전 조선 사회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병자호란이었다. 특히 병자호란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년) 인조가 청에 항복한 일은 당시 문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그들의 출사(出仕)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윤휴(1617~1680), 유형원(1622~1673), 윤증(1629~1714) 등이 그러한 삶을 보여주었다【이경구, 『17세기 조선지식인 지도』, 푸른 역사, 2009, pp.134~135; pp.160~162.】. 자신의 신념에 따라 출사거부를 선택하는 것이 당대 사회에 대한 문인들의 현실 대응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는 병자호란뿐만 아니라 붕당의 세력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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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승기(義勝記)」의 주제 의식 고찰이 연 순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국문초록 본고는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의 작품 「의승기」에 드러난 주제의식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먼저 「의승기」의 창작 배경으로 17세기 중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창계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 살피고, 「의승기」의 주제의식에 대해 두 가지 점을 밝혔다. 「의승기」가 창작된 17세기 중반 조선 사회에서는 병자호란을 겪은 사대부들이 벼슬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문단에서는 산문이 유행하며 문학의 향유층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시대에 창계는 어려서 누이들에게 언문 소설을 듣고, 조부께 궁리수심(窮理修心)의 학문에 힘쓸 것을 가학(家學)으로 전수받으며 「의승기」 창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