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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여양역에서여양역(閭陽驛) 최경창(崔慶昌) 馬上時將換 西歸道路賖마상시장환 서귀도로사人烟隔河少 風雪近關多인연격하소 풍설근관다故國書難達 他鄕鬢易華고국서난달 타향빈이화天涯意寥落 獨立數棲鴉 천애의요락 독립수서아 『孤竹遺稿』 해석馬上時將換 西歸道路賖말 위에서 시절은 장차 바뀌려하고, 서쪽으로 돌아갈 길 아득하네.人烟隔河少 風雪近關多밥 짓는 연기는 강 건너에 드문드문, 바람과 눈은 관문에 가까워지니 세차구나.故國書難達 他鄕鬢易華고향의 편지는 전달하기 어렵고, 타향에서 귀밑머리는 쉽게 쇠는 구나. 天涯意寥落 獨立數棲鴉낯선 곳【천애(天涯): 1. 하늘 끝에 홀로 서 있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핏줄이나 부모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2. 하늘의 끝이 닿는 땅의 한 귀퉁이라는 뜻으로, 아득하게 멀리 떨어..
그림을 읊다영화(詠畫) 최경창(崔慶昌) 窅窅日沈夕 蕭蕭風起波요요일침석 소소풍기파遙知泊船處 隔岸有人家 요지박선처 격안유인가 『孤竹遺稿』 해석窅窅日沈夕 蕭蕭風起波아득한 해가 저녁에 잠기고 쓸쓸한 바람이 물결에서 이네. 遙知泊船處 隔岸有人家멀리서도 알겠지, 배를 정박한 곳, 강둑 너머엔 인가가 있다는 걸. 『孤竹遺稿』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소화시평감상하기
홍만종도 인정한 당시풍의 최고 작가, 최경창 아직 당시(唐詩)와 송시(宋詩)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해동강서시파의 시(권상 73, 81, 102)를 보고 나서 이 시를 보면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당시(唐詩)는 해석이 난해하지 않고 그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언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바로 드러난다. 『소화시평』 권상 107번에선 고죽 최경창이야말로 당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당시를 배웠다 할지라도 만당(晩唐)을 배운 이달 같은 경우는 유약하다고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唐詩) 내에서도 최고의 시는 성당(盛唐)시를 쳐주고, 그보다 못한 경우는 중당(中唐)까지는 이해해주지..
107. 당시풍을 오롯이 익힌 최경창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唯崔孤竹終始學唐, 不落宋格,’ 信哉! 其高者出入武德·開元, 下亦不道長慶以下語, 如‘春流繞古郭, 野火上高山.’ 則中唐似之, ‘人烟隔河少, 風雪近關多.’ 則似盛唐, ‘山餘太古雪, 樹老太平烟.’ 則似初唐. 不知今世復有此等調響耶. 해석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내가 일찍이 선배에게 ‘우리 조선의 시는 唯崔孤竹終始學唐, 오직 고죽 최경창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풍(唐風)을 배워 不落宋格, 信哉! 송풍(宋風)의 격조로 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참이로구나! 其高者出入武德·開元, 격조가 높은 것은 무덕(618~626, 初唐)ㆍ개원(713~741, 盛唐)에 출입하며 下亦不道長慶以下語, 격조가 낮은 것 또한 장경(821~824, 中唐) 이하의 말(..
깊은 산골임을 시인이 묘사하는 방식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가려서 深樹棲禽晩不飛 깊은 숲속에 자던 새 늦도록 날질 않네. 古屋苔生門獨閉 옛집 이끼 껴 문 홀로 닫혀 있어, 滿庭淸露濕薔薇 온 뜰에 맑은 이슬이 장미를 적셨다네.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최경창의 「제낙봉인가(題駱峯人家)」라는 시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의 시다. 시를 해석한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던 지천 황정욱의 시와 시적 미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 한편을 통해 여기서 말하는 인가가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여실히 알 수 있다. 시인은 한 번도 집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구름과 이슬이 해를 가..
1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淸麗如畵. 嘗與蓀谷共賦「虛舟繫岸圖」, 蓀谷詩落句曰: ‘泊舟人不見, 沽酒有漁家.’ 孤竹詩曰: ‘遙知泊舟處, 隔岸有人家.’ 孤竹不下‘人不見’三字, 而無人之意, 自在其中, 崔詩爲優. 해석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고죽 최경창의 「낙봉 인가에 쓴 시[題駱峯人家] / 우연히 읊다(偶吟)【이하 세 편은 가장본엔 없지만 최경창과 백광훈의 시를 모아 간행한 『최백집』 속에서 얻은 것이다[此下三首, 家藏本無之, 而得於『崔白集』中].】」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최경창崔慶昌: 1539(중종 34)~1583(선조 16) 본관은 해주(海州). 중기 시인.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1. 일찍이 박순(朴淳)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뒤에 양응정(梁應鼎)의 문하에서도 수학함. 2.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ㆍ종성부사의 관직을 역임함. 3. 백광훈과 이달과 함께 ‘최백이(崔ㆍ白ㆍ李)’ ‘삼당(三唐) 시인’이란 칭호로 불림. 4.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선 “최경창의 시는 사납고 굳세며 백광훈의 시는 고담하다. 모두 당풍의 노선을 잃지 않았으니 참으로 또한 천년의 드문 가락이다. 이달은 이들보다 조금 크다. 그렇기 때문에 최경창과 백광훈과 함께 스스로 대가를 이루었다[崔詩悍勁, 白詩枯淡, 俱不失李唐跬逕, 誠亦千年希調也. 李益之較大. 故苞崔孕白而自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