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종도 인정한 당시풍의 최고 작가, 최경창
아직 당시(唐詩)와 송시(宋詩)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해동강서시파의 시(권상 73, 81, 102)를 보고 나서 이 시를 보면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당시(唐詩)는 해석이 난해하지 않고 그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언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바로 드러난다.
『소화시평』 권상 107번에선 고죽 최경창이야말로 당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다. 더욱이 당시를 배웠다 할지라도 만당(晩唐)을 배운 이달 같은 경우는 유약하다고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시(唐詩) 내에서도 최고의 시는 성당(盛唐)시를 쳐주고, 그보다 못한 경우는 중당(中唐)까지는 이해해주지만 만당(晩唐)은 너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으로 최경창을 보더라도 최경창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 홍만종은 아예 그의 시를 격조가 높은 시는 성당(盛唐)에 비길 만하고, 아무리 낮더라도 중당(中唐) 정도의 시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선 세 개의 시를 예로 들며 어느 시기에 가까운 시라고 시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송시(宋詩)나 당시(唐詩)와 같이 급격하게 다른 정도가 되면 시를 잘 모르는 우리도 어느 정도는 구분해볼 수 있는데, 이처럼 당시(唐詩) 내에서 나누는 경우는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구분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걸 구분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많은 열정을 바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구분법이 나온 것도 아니다. 그저 시기별로 지어진 시들을 일별하고 그것의 특징을 찾아내는 방식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도 홍만종의 시평을 보면서 “왜 중당(中唐)에 비슷하다고 했는지, 왜 초당(初唐)에 비슷하다고 했는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푸념처럼 했을 정도다. 전문 연구자도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우리처럼 이제 배우는 사람이라면 ‘너무 복잡한 거 아니요. 그러니 그건 그냥 넘어갑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여양역(閭陽驛)」라는 시는 왜 성당(盛唐)의 시풍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성당의 시풍은 ‘변방의 호기로운 시풍[邊塞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시의 경우 호기로움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변방을 헤매며 고향을 향한 애끓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홍만종은 성당(盛唐)의 시라고 말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지금 세상에 다시 이와 같은 조화로운 울림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노라[不知今世復有此等調響耶].’라고 결론짓는다. 최경창은 1539년에 태어났고 홍만종은 1637에 태어났으니 서로 100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 셈인데, 그 기간 동안 최경창을 뛰어넘는 한시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홍만종에겐 최경창이 최고의 한시 작가였었나 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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