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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안연 - 20. 소문과 달함의 차이를 자장에게 알려주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안연 - 20. 소문과 달함의 차이를 자장에게 알려주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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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소문과 달함의 차이를 자장에게 알려주다

 

 

子張: “士何如斯可謂之達矣?”

達者, 德孚於人而行無不得之謂.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子張務外, 夫子蓋已知其發問之意. 故反詰之, 將以發其病而藥之也.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言名譽著聞也.

 

子曰: “是聞也, 非達也.

聞與達相似而不同, 乃誠僞之所以分, 學者不可不審也. 故夫子旣明辨之, 下文又詳言之.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 音扶, 下同. , , 皆去聲.

內主忠信. 而所行合宜, 審於接物而卑以自牧, 皆自修於內, 不求人知之事. 然德修於己而人信之, 則所行自無窒礙矣.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 去聲.

善其顔色以取於仁, 而行實背之, 又自以爲是而無所忌憚. 此不務實而專務求名者, 故虛譽雖隆而實德則病矣.

程子: “學者須是務實, 不要近名. 有意近名, 大本已失. 更學何事? 爲名而學, 則是僞也. 今之學者, 大抵爲名. 爲名與爲利雖淸濁不同, 然其利心則一也.”

氏曰: “子張之學, 病在乎不務實. 孔子告之, 皆篤實之事, 充乎內而發乎外者也. 當時門人親受聖人之敎, 而差失有如此者, 況後世乎?”

 

 

 

 

해석

子張: “士何如斯可謂之達矣?”

자장이 선비는 어떻게 해야 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達者,

()이라는 것은

 

德孚於人而行無不得之謂.

덕이 남에게 신임을 얻어 행함에 얻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공자께서 무엇인고? 니가 말하는 달하였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子張務外, 夫子蓋已知其發問之意.

자장은 외형적인 것에 힘썼기에 부자께서 이미 발문한 뜻을 알았다.

 

故反詰之, 將以發其病而藥之也.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그에게 물어 장차 병통을 드러내 치료하고자 한 것이다.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이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있으며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言名譽著聞也.

명예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子曰: “是聞也, 非達也.

공자께서 이것은 소문인 것이지, 달함은 아니다.

聞與達相似而不同,

()과 달()은 서로 비슷하나 같진 않으니

 

乃誠僞之所以分,

곧 참과 거짓이 나누어지는 것이기에

 

學者不可不審也.

배우는 이라면 살피지 않아선 안 된다.

 

故夫子旣明辨之, 下文又詳言之.

그렇기 때문에 부자는 이미 밝게 분별해주셨으니, 아랫 문장에 또한 자세히 말하였다.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이라는 것은 질박하고 곧으며 의를 좋아하고 말을 살피며 얼굴색을 관찰하고 배려하여 남에게 낮추는 것이니, 그리하면 나라에서도 반드시 달()하게 되며, 집에서도 반드시 달()하게 된다.

, 音扶, 下同. , , 皆去聲.

內主忠信. 而所行合宜,

안으로 충신(忠信)을 주로 하고 행동하는 것이 의()에 합하며

 

審於接物而卑以自牧,

다른 사람과 접할 적에 살피고 낮추어 스스로를 기르는 것이

 

皆自修於內,

다 스스로 내면으로 수양하는 것이고

 

不求人知之事.

다른 사람에게 알려 자기를 구하지 않는 일이다.

 

然德修於己而人信之,

그러나 덕으로 자기를 수양하여 남이 그것을 신임하면

 

則所行自無窒礙矣.

행동하는 것이 스스로 막힘이 없게 된다.

 

최근 달인(達人)이란 말이 유행한다. ‘춘추좌씨전에서는 도리(道理)에 널리 정통(精通)한 사람을 가리켰다. 달인대관(達人大觀) 혹은 달관(達觀)이란 말이 있듯이 도리에 널리 정통한 사람은 천지간의 사물을 높은 곳에서 관찰한다고 한다. 그 후 기술 기예 예술의 영역에서 숙련되어 정통한 사람도 달인이라 불렀다. 생활의 달인이란 말도 파생됐다.

통달했다는 평어(評語)는 듣기 좋다. 그렇기에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은 사()의 신분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통달한 사람으로 평가받겠느냐고 스승에게 물었다. 자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반문했다. 제후의 조정에서 벼슬 살면서 명성이 있고 집안의 일족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것을 말합니다. 자장의 대답에 공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달이란 내면의 덕이 자연스레 언어와 용모로 나타남을 가리킨다고 다시 정의했다. ‘논어’ ‘안연(顔淵)’편에 그 대화가 나온다.

()는 발어사다. 질직(質直)은 질박하고 정직함, 호의(好義)는 정의를 좋아함이다. 찰언(察言)은 남의 말을 바르게 이해함, 관색(觀色)은 남의 안색을 살펴 마음을 꿰뚫어봄이다. ()는 사려 깊음, 하인(下人)은 남의 아래에 처하는 겸손함을 말한다. 재방(在邦)은 제후의 조정에서 벼슬 사는 일로, 공적활동을 가리킨다. 재가(在家)는 집안에서 일족과 어울려 생활하는 일로, 사적활동을 가리킨다.

명성이 높다고 달인은 아니다. 내면의 성실함이 바깥으로 우러나와 직무로 구현돼야 달인이다. 정치나 사회의 지도자도 구단(九段)이 아니라 참된 달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소문이라는 것은 겉으론 인()을 취하나 행동은 어긋나고 거처함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

, 去聲.

善其顔色以取於仁, 而行實背之,

안색을 좋게 하여 인()을 취하지만 행동은 실제에 위배되고

 

又自以爲是而無所忌憚.

또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여 꺼리는 것이 없으면

 

此不務實而專務求名者,

이것은 실질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소문만을 구하기에 힘쓰는 것이다.

 

故虛譽雖隆而實德則病矣.

그렇기 때문에 공허한 명예가 비록 융성하니 실질의 덕은 비쩍 마른다.

 

程子: “學者須是務實,

정이천이 말했다. “학자는 마땅히 실질에 힘쓰고

 

不要近名.

명성에 가까워지려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有意近名, 大本已失.

그러나 명예에 가까워지는 것에 뜻을 둔다면 큰 근본이 이미 상실되니

 

更學何事?

다시 어떤 일을 배우랴?

 

爲名而學, 則是僞也.

명예를 위해 배우면 이것은 거짓이다.

 

今之學者, 大抵爲名.

지금 배우는 이들은 대저 명예를 위하니,

 

爲名與爲利雖淸濁不同,

명예를 위하는 것과 이익을 위하는 것은 비록 청탁(淸濁)이 같지 않지만

 

然其利心則一也.”

이익의 마음이라는 점에선 같다.”

 

氏曰: “子張之學, 病在乎不務實.

윤순(尹淳)이 말했다. “자장의 학문이 실질에 힘쓰지 않는 병통이 있었다.

 

孔子告之,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그것을 말한 것이니

 

皆篤實之事, 充乎內而發乎外者也.

다 독실한 일로 내면을 채워 외면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當時門人親受聖人之敎,

당시의 문인이 친히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而差失有如此者,

차이가 있음이 이와 같았으니,

 

況後世乎?”

하물며 후세 사람들은 어쩌랴.”

 

살아가면서 수지맞는 일은 남이 겉만 보고 좋은 평판(評判)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덕을 쌓아도 좋은 평판이 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과 다른 평판을 듣고 기꺼워한다면 나는 결국 어떤 인간이 될까? 참된 ()이란 내면의 덕이 자연스레 언어와 용모로 나타남을 가리킨다고 제자 자장(子張)에게 말했다. 이어서 공자는 명성만 좋게 나는 문()은 결코 통달의 달()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는 발어사다. 색취인(色取仁)은 안색을 꾸며 어질다는 평판을 받는다는 말이고, 행위(行違)는 행실이 그러한 평판과 어긋나 있다는 말이다. 거지불의(居之不疑)는 그런 상태에 안주하여 스스로 의심하지 않음을 말한다. 주자는, 스스로 의심하지 않아 기탄(忌憚)이 없음을 말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박세당(朴世堂), 다른 사람이 자신의 거짓을 알지 못한다 하여 스스로의 처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풀이했다. 거짓을 행하다가 굳어진 자를 가리킨다고 본 것이다. 정약용은, 딴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독점하고도 의심이 없음을 말한다고 보았다.

재방필문(在邦必聞)은 제후의 조정에서 명성이 반드시 나지만 통달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을 지닌다. 재가필문(在家必聞)도 일족의 사이에 명성이 반드시 나지만 통달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을 지닌다.

달사(達士, 통달한 사람)는 성실(誠實) 용서(容恕) 겸손(謙遜)을 행하고 문인(聞人, 남의 평판이나 취하는 사람)은 기만(欺瞞) 자존(自尊) 교만(驕慢)을 행한다. 둘의 갈림길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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