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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4. 검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4. 검

건방진방랑자 2019. 8. 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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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검각(劍閣)

사천(四川) 검각현(劍閣縣) 동북쪽 대검산(大劍山)과 소검산(小劍山) 사이에 있는 잔도(棧道)의 이름이다. 사천과 섬서(陝西)사이의 주요 통로로서 군사적인 요충지이다. 중국 장안(長安)에서 서촉(西蜀)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예로부터 험준한 요해지로서 유명하였다.

 

검각지서(劍閣之西)

당명황은 마침내 나라에 난이 나서 촉중(蜀中)의 검각산(劒閣山) 서쪽으로 도망하였다.

 

검구매(劍久埋)

() 나라 때 장화(張華)가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자기(紫氣)가 뻗친 것을 보고 천문가(天文家)인 뇌환(雷煥)에게 물은 결과, 풍성현(豐城縣)의 옛 옥() 터에 묻힌 보검(寶劍)의 정기(精氣)임을 알고는, 사람을 시켜 그곳을 파서 용천(龍泉태아(太阿) 두 명검(名劍)을 찾아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검기불복간두우(劍氣不復干斗牛)

초야에 묻힌 채 선발되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인재가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보검이 땅속에 묻혀 하늘의 두우(斗牛) 사이로 자기(紫氣)를 쏘아 올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진서(晉書)36 장화전(張華傳)

 

검남(劍南)

사천성 경내에 있는 지명이다.

 

검남(劒南)

() 나라 때의 시인 육유(陸游)를 지칭한 말이다.

 

검남백발(劒南白髮)

송나라 때 시인 육유(陸遊)를 말한다. 육유는 호가 방옹(放翁)이며, () 땅에 오래 살면서 그곳의 풍광을 좋아하여 자기의 시집을 검남시고(劍南詩稿)라 명명하였다.

 

검려기재제(黔驢技在蹄)

검려(黔驢)는 검주(黔州)의 나귀라는 말이다. 즉 사람의 기능이 아주 졸렬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유하동집(柳河東集) 19 검지려(黔之驢)검주에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타고 그곳에 들어와서 산 아래 매어 두자, 호랑이가 이 나귀를 보고 그 큰 몸집에 매우 놀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귀가 한번 울자 호랑이는 또 크게 놀라 달아났는데, 그 후로는 나귀의 우는 소리에 차츰 익숙해져서 끝내는 호랑이가 나귀 옆에 바싹 다가가서 몸을 비벼대고 또는 핥기도 하니, 나귀가 성이 나서 발로 찼다. 그러자 호랑이는 기뻐하며, 네 재주는 이뿐이구나 생각하고 뛰어들어 나귀를 물어 죽였다.”라고 하였다.

 

검려기지지야(黔驢技之也)

졸렬한 재주를 비웃는 것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상대에게 들켜서 비웃음 당한다는 속담이 있다.

 

검려박제(黔驢薄蹄)

검 땅의 당나귀(黔驢)를 호랑이가 처음 보고는 겁을 내다가 당나귀의 재주가 발길질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호랑이가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유종원(柳宗元)삼계(三戒)’검지려(黔之驢)’에 나온다.

 

검려지기(黔驢之技)

검주(黔州)는 나귀가 없는 땅이라 어떤 사람이 나귀를 그 곳에 가져다 야산에 풀어놨는데 호랑이가 보고 대단히 무서워했다. 호랑이가 두려워하며 나귀 주위를 이리저리 배회했는데, 나귀가 뒷발로 호랑이를 찼다. 호랑이는 나귀의 재주가 그것뿐인 것을 알고 달려들어 순식간에 먹어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 별 볼 일 없는 기량을 뽐내는 것을 말한다.

 

검록성경(劍錄星經)

검록(劍錄)은 칼에 대한 해설서이고, 성경(星經)은 천문(天文)에 관한 기록서이다.

 

검루(黔婁)

춘추시대(春秋時代) ()(隱士)로 벼슬을 하지 않아서 집이 몹시 가난했다. 그가 죽었을 때는 시신을 가릴 만한 이불도 없었다고 한다. 마침 증자(曾子)가 조문을 가서 보니, 베 이불[布被]로 검루의 시신을 덮는데, 머리를 덮으면 발이 나오고, 발을 덮으면 머리가 나오곤 하므로, 증자가 그 이불을 귀퉁이 쪽으로 삐딱하게 당겨서 덮으면 가릴 수 있겠다.[斜引其被則斂矣]”라고 하자, 검루의 아내가 이불을 삐딱하게 당겨 덮어서 여유 있게 하는 것이 반듯하게 덮어서 모자람만 못하다.[斜而有餘, 不如正而不足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고사전(高士傳)』 「黔婁先生/ 인용: 五柳先生傳(도연명), 自挽 六月(노수신)

 

검리(劍履) 칼과 신발을 일컫는다.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아 허리에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로 임금을 뵐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대신이란 뜻이다. 검리상전(劍履上殿). 사기(史記)卷五十三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검리상성신(劍履上星辰)

검리(劍履)는 허리에 칼을 그대로 차고 신발을 벗지 않고서 조회한다는 말로 임금의 특별한 은총을 뜻하고, 성신은 대궐 조정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이에 소하의 공을 첫째로 삼아 검리를 그대로 띠고 전폐(殿陛)에 오르게 하였다[于是乃令蕭何第一 賜帶劍履上殿].”라고 하였다.

 

검매우(劍買牛)

한서(漢書)공수전(龔遂傳)공수가 제() 지방의 풍속이 사치하고 칼 쓰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백성에게 농상(農桑)을 권하기 위하여 칼을 팔아 소를 사게 했다.”라 하였다.

 

검문객(黔吻客)

공부할 때 늘 벌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서(隋書)』 「예의지(禮儀志)글자를 빠뜨리거나 오자(誤字)를 쓴 사람은 불러내어 좌석 뒷자리에 서 있게 하고, 글씨가 용렬한 자에게는 벌로 먹물 한 되를 마시게 했다.”라고 하였다.

 

검발(檢發)

법으로 단속하고 창고에 있는 곡식을 풀어냄을 말한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상에 개나 돼지가 사람 먹는 것을 먹어도 그것을 법으로 단속할 줄 모르고, 들에 굶어 죽은 자가 있어도 창고의 곡식을 풀어낼 줄 모른다[狗彘食人食而不知檢 塗有餓莩而不知發]”라 하였다.

 

검부(黔夫)

사람이름으로. 전국(戰國) 시대 제 위왕(齊威王)의 신하이다.

 

검산(黔山)

경기 광주(廣州)의 검단산(黔丹山)을 말한다. / 인용: 검단산 등산후기

 

검산성(劍山城)

평안도 선천(宣川)의 검산에 있는 성 이름이다. 민성휘가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한 뒤 의주(義州)의 백마산성(白馬山城) 및 평산(平山)의 자모산성(慈母山城)과 함께 이 성을 수축하였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검수(劍水)

황해도 봉산(鳳山)의 속역(屬驛)이다.

 

검수취(劍首炊)

() 나라 환현(桓玄)이 은중감(殷仲堪) 등과 농담 삼아 지극히 위태한 정경을 시구로 표현하면서 창끝의 물 젖은 쌀알이요, 칼끝의 갓 익은 밥풀이라[矛頭淅米劍頭炊]”라고 한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92 고개지전(顧愷之傳)

 

검영(黔嬴)

천상 조화신. 혹은 水神을 말한다.

 

검옥니금상대종(檢玉泥金上岱宗)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태산에 올라 봉 제사를 행하다[登封泰山]”의 주()금책(金策) 석함(石函)과 금니(金泥) 옥검(玉檢)을 들고 올라가 봉()을 행한다.”라고 하였는데, 금니는 황금으로 도색하는 것을 말하고 옥검은 옥첩서(玉牒書)를 봉함한 궤이다. 대종(岱宗)은 뭇 산의 어른이라는 뜻으로 태산(泰山)을 가리킨다.

 

검외(劍外)

사천(四川) 검각(劍閣) 이남의 땅을 말한다.

 

검자심상부(儉者心常富)

검소한 사람은 마음이 항상 부유하다.

 

검지(劍池)

강소성 오현 호구산에 있다.

 

검패(劍佩)

칼과 패옥(珮玉)을 찬 조신(朝臣)을 가리킨 말이다. / 유의어: 검패(劍珮)

 

검하회음(劍下淮陰)

한신(韓信)이 중용(重用)되기 전 참형(斬刑)을 당하게 되자 하후 영(夏侯嬰)을 쳐다보고 ()께서 천하를 얻고자 않으시오? 어찌 장사를 죽이려 합니까.”하니, 하후 영이 장하게 여겨 죽이지 않고 천거하여 뒤에 대장이 되었다. 한서(漢書)卷三十四 한팽영려오전(韓彭英盧吳傳)

 

검해(劍解)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오() 나라의 왕자 계찰(季札)이 사신가는 길에 서() 나라에 들르자, 그 곳 임금이 계찰의 칼을 탐내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렸는데 이미 죽고 없으므로 칼을 풀어서 무덤의 나무에 걸어주고 갔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마음의 허락을 지킨다는 뜻이다.

 

검화경파리(劍化驚波裏)

배우자 중에 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는 말이다. () 나라 때 뇌환(雷煥)이 보검 두 자루를 발굴하였는데, 뒤에 뇌환의 아들이 연평진(延平津)을 지날 즈음 허리에 차고 있던 칼 하나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검화지(劍化地)

부인이 죽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부군과 지하에서 만날 것이라는 말이다. 신령한 칼은 언젠가는 용()으로 화하여 자기 무리를 찾아가고 만다는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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