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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46. 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46. 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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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소화시평권상46에선 화운한 시를 보며 어느 작품이 더 낫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영천에 있는 명원루(지금의 조양각)를 보고서 정몽주가 먼저 시를 지었고, 그 시에 탄복한 이안눌도 차운을 하며 시를 짓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 끙끙 앓다가 결국 시를 쓰긴 했는데, 이에 대한 홍만종의 평가는 청신한 시구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정몽주의 굉장하고 원대한 기상에는 미치지 못했다[李詩雖淸絶, 然終不逮鄭詩宏遠底氣像].”라는 평가를 내린다. 교수님은 그러면 전문을 한 번 해석해보면 그때서야 홍만종이 왜 저런 평가를 했는지 느낌이 올 거예요라고 알려준다. 난 그 순간 어디서 약을 파시려고?’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다.

 

 

靑谿石壁抱州回 맑은 시내와 석벽은 고을을 안고 회돌아
更起新樓眼豁開 다시 새로운 누대에 오르니 시야가 트였네.
南畝黃雲知歲熟 남쪽 들녘 잘 익은 벼들이 풍년임을 알려주고
西山爽氣覺朝來 서산의 상쾌한 기운에 아침이 옴을 깨닫네.
風流太守二千石 풍류스런 태수는 2천석 자리인데,
邂逅故人三百杯 친구(정몽주 자신)를 만나 3백 잔을 기울이네.
直欲夜深吹玉笛 다만 심야에 옥피리 불고 싶어
高攀明月共徘徊 높이 뜬 달과 함께 배회하려 하네. 東文選卷之十六

 

결국 긴 시간 공을 들여 포은과 동악의 시 해석이 끝났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니, 뭐에라도 씌인 것처럼 그 느낌이 확 와 닿았다. 포은의 시호방, 유쾌, 통쾌하단 느낌 때문인지 연암의 취답운종교기(醉踏雲從橋記)의 밤거리를 거닐며 자유롭게 사색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海天霜落塞鴻回 바닷가 서리 내리니 변방의 기러기 돌아가고
節近重陽細菊開 절기가 중양절에 가까우니 가는 국화 피어난다.
高閣凌雲山勢斷 구름 뚫듯 높은 누각, 산세는 가파르고
長沙畫野水聲來 들판을 구획 짓는 모래톱, 물소리 오네.
四年南國身千里 4년 간의 남국생활(영천) 몸은 천리 밖에 있고
萬事西風酒一盃 온갖 일은 가을바람 속 술 한 잔에 푸네.
目極鳳城何處是 눈길을 다해 바라봐도 서울은 어디일까?
半峰斜日獨徘徊 산허리 지는 해에 홀로 배회한다네. 東岳先生集卷之十一

 

그 반면, 동악의 시처량, 비애, 외로움의 페이소스(pathos)가 짙게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시구는 共徘徊獨徘徊였고, 그 다음이 홍만종이 발췌해 놓은 구절이었다.

 

風流太守二千石 邂逅故人三百杯 四年南國身千里 萬事西風酒一盃
풍년을 만든 태수는 나에게 호탕하게 술을 사준다 4년 동안 떠돌던 시름 술 한 잔에 푼다

 

두 구절의 정조는 확연히 다르며, 그 때문에 홍만종은 포은의 시를 굉원하다고 평가함과 동시에 동악의 시가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풀고 보니, 작가의 평가는 인상비평에만 그치는 줄 알았고, 그 당시에만 통용되는 시적 미감(지금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감)인 줄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가 서양의 유명한 작품을 보면서 감동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으며,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나 영화를 보며 깨닫는 것처럼, 시라는 것도 시대를 넘어선 감흥이 있고, 시에 대한 작가의 평가도 지금 우리와 통하는 공통의 미감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니, 겨우 시 2편을 봤을 뿐이지만, 여러 가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엔 한시가 무작정 어렵거나 난해하지만은 않다는 깨달음도, 한문이 버겁고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래서 내가 한문을 그만 둘 수가 없고, 이래서 내가 수요일 스터디에 빠질 수가 없다. 한문을, 그리고 한시를, 그리고 한시에 대한 평가를 지금의 언어로 생생히 살려내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수업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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