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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 - 5. 덕이 있는 사람과 인자의 특징 본문

고전/논어

논어 헌문 - 5. 덕이 있는 사람과 인자의 특징

건방진방랑자 2021. 10. 1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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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덕이 있는 사람과 인자의 특징

 

 

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有德者, 和順積中, 英華發外. 能言者, 或便佞口給而已.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仁者, 心無私累, 見義必爲. 勇者, 或血氣之强而已.

氏曰: “有德者必有言, 徒能言者未必有德也. 仁者志必勇, 徒能勇者未必有仁也.”

 

 

 

 

해석

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지만 훌륭한 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건 아니다.

有德者, 和順積中, 英華發外.

유덕(有德)이란 화순함이 내면에 쌓여 영화로움이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能言者, 或便佞口給而已.

능언(能言)이란 혹 말 잘함과 말재간에 편안히 할 뿐이다.

 

유덕유언(有德有言)이란 말이 있다. 덕행도 훌륭하고 언론저술도 훌륭함을 말한다. 반면에 무덕유언(無德有言)이라고 하면 덕행은 없으면서 언론저술만 뛰어남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이 장()에서 공자가 지적한 말씀이다.

유덕자필유언(有德者必有言)은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온축된 덕이 저절로 바깥으로 넘쳐 나와 훌륭한 말로 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덕 있는 사람은 아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바깥을 꾸미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언(有言)은 평소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시문을 저술해서 후세에 드리우는 입언수후(立言垂後)를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 있다. 정약용은 이 설을 지지했다. 선인들은 훌륭한 덕에 걸맞은 훌륭한 시문을 문집을 통해 후세에 전하는 일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유덕유언(有德有言)이란 말은 저술활동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정조대왕의 문집을 홍재전서(弘齋全書)’라 하는데, 본래 이름은 홍우일인재전서(弘于一人齋全書)’. 정조는 서거한 해인 1800년에 전서를 보관하려고 종이 장롱을 만들고 거기에 글을 써서 이렇게 말했다. “내 어찌 학문을 높이 쌓아 우뚝하게 자립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상제(上帝)를 마주하고 백성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생각으로 어렵고 큰일을 계승하여 부지런히 백성을 보호하고 인재를 구하려고 급급하면서, ()이 아닌 집은 거처하지 않고 의()가 아닌 길은 밟지 않은 뜻을 문자로 기록했으니, 강혈(腔血)로부터 흘러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정조도 유덕유언(有德有言)의 평가를 받고자 기대한 것이다. 저술을 일삼는 사람은 모름지기 무덕유언(無德有言)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인자는 반드시 용맹하지만 용맹하다고 해서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仁者, 心無私累, 見義必爲.

()이란 마음이 사적인 얽매임이 없어 의를 보면 반드시 실행한다.

 

勇者, 或血氣之强而已.

()이란 혹 형기의 강함일 뿐이다.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는 유덕유언(有德有言)과 무덕유언(無德有言)을 대비해 ()’의 두 양태에 대해 말하고, 곧이어 ()’의 두 양태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주자(주희), 어진 사람은 마음에 사루(私累) 즉 사사로운 끌림이 없기 때문에 의()를 보면 반드시 실천한다고 해설했다. 정약용은 충효(忠孝)가 지극한 인자(仁者)는 화난(禍難)에 두려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것을 인자지용(仁者之勇)이라 한다. 봉건 조정의 신하가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따져 직간(直諫)해서 그릇된 일을 반드시 바로잡고야 말았던 것도 이런 용기에 속한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큰 강을 건너는 용기를 혈기지용(血氣之勇)이라 한다. 혈기지용만 지닌 사람은 용기 때문에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지만 인자(仁者)라고는 할 수 없다.

인자지용(仁者之勇)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호선오악(好善惡惡)에서도 살필 수 있다. 1530(중종 25) 섣달그믐에 51세의 이자(李耔)는 자서전인 자서(自敍)’를 지어 선을 좋아하기를 독실하게 하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용맹하게 하지 못했다고 자책(自責)했다. ‘논어’ ‘이인(里人)’에서 공자는 어진 사람만이 능히 남을 좋아할 수 있고 또 남을 미워할 수 있다[唯仁者能好人, 能惡人]”고 했다. 같은 이인에서 공자는 君子喩於義(군자유어의)’라고도 했다.

군자는 어떤 일이든 도의(道義)를 기준으로 삼아 사태를 방과(放過)하지 않는 법이다. 이자는 그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은 악을 미워할 용기가 없어서 옳지 못한 사태를 방과하고 말았다고 후회한 것이다. 우리도 비리와 부정을 방과하면서 오악무용(惡惡無勇)하지 않은가, 악을 미워하는데 용기가 없지 않은가 자책해야 할 듯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氏曰: “有德者必有言,

윤순(尹淳)이 말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지만

 

徒能言者未必有德也.

다만 훌륭한 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는 건 아니다.

 

仁者志必勇,

인자의 뜻은 반드시 용맹하지만

 

徒能勇者未必有仁也.”

다만 용맹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짊이 있는 건 아니다.”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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