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고개로 풀어 보는 『몽구』
첫째 고개, 책이름에 대하여
책이름인 ‘몽구’가 어떤 뜻인지 알아 보자.
어리석다, 어리다, 어둡다, 뒤집어쓰다라는 뜻의 몽(蒙)자와 구하다, 구걸하다, 빌리다라는 뜻의 구(求)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몽구’란 ‘어리석은 어린 사람이 구한다’라는 뜻이 된다.
도대체 무엇을 누구에게 구한단 말인가? 여기에 ‘몽구’란 말의 숨은 뜻이 담겨져 있다.
예전에 고전의 책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먼저 철인들의 이름이나 호를 따라서 붙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맹자』, 『순자』, 『노자』, 『장자』처럼 ‘자’(子)자가 붙은 책들이 이 경우로 ‘맹선생님의 저작’, ‘순선생님의 저작’이란 뜻이다.
그 다음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경전의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한 글자씩을 떼어 내서 합쳐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전습록』, 『근사록』, 『곤지록』, 『일지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몽구』는 뒤의 경우에 해당되는 책으로 동양 학술과 문화의 원천인 『주역』의 「몽괘(蒙卦)」에서 유래한다.
이제 『주역』을 펼쳐서 몽괘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 제일 먼저 아래와 같은 기호가 보일 것이다.
위 | 아래 |
산[艮] | 물[坎] |
☶ | ☵ |
그리고 이 괘 아래에는 점괘 같아 보이는 알쏭달쏭한 글귀가 달려 있다. 이 글귀가 바로 이 괘가 전체적으로 상징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괘사(卦辭)란 것이다.
몽(蒙)은 형(亨)하니, 비아(匪我)가 구동몽(求童蒙)이라 동몽(童蒙)이 구아(求我)니, 초서(初筮)어든 고(告)하고, 재삼(再三)이면 독(瀆)이라. 독즉불고(瀆則不告)니 이정(利貞)하니라.
읽어 봐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죠. 뜻을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몽괘(蒙卦)는 형통한 괘다. 내(선생을 상징)가 어리석은 어린 아이에게 가르침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어린 아이가 나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진실하게 물어 오면[筮, 원래는 산가지로 점을 쳐서 신의 뜻을 묻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에게 묻듯이 절실하고 정성스럽게 묻는다는 뜻이다] 잘 가르쳐 주고, 그런데도 두 번 세 번 의심해서 다시 물어보는 것은 선생을 모독하는 것이니, 모독하면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르고 곧게 갖는 것이 이롭다.
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 利貞
『주역』이니 점이니 하면 언뜻 미아리를 떠올리는 분이 많겠지만,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 세 줄로 된 기호를 자주 보았을 것이다. 바로 태극기의 바깥 변을 채우고 있는 네 개의 기호가 그것이다.
바로 그 세 줄로 된 묶음이 8괘가 되고, 그것이 위아래로 쌓이면서 여섯 줄로 된 64괘가 만들어진다. 이 세 줄로 된 8개의 괘는 저마다 다른 자연 현상을 상징한다.
하늘 | [乾] | ☰ |
연못 | [兌] | ☱ |
불 | [離] | ☲ |
우레 | [震] | ☳ |
바람 | [巽] | ☴ |
물 | [坎] | ☵ |
산 | [艮] | ☶ |
땅 | [坤] | ☷ |
우선 「몽괘」의 전체 상징은 아주 어린 상태를, 특히 무지몽매한 상태를 상징하는 괘이다. 만물이 처음 탄생할 때는 무엇이나 다 유치하다. 『주역』에서 이 괘가 혼돈과 창조를 상징하는 「둔괘(屯卦)」의 다음에 위치한 것도 이런 뜻에서이다.
위에 있는 세 줄의 상괘(卦)는 산[艮]을 상징하며 ‘우뚝 멈춰서 있는[止]’ 성질을 띤다. 아래에 있는 세 줄의 하괘(下卦)는 물[水]을 상징한다. 위와 아래의 괘를 합쳐 보면 아래에는 물이 있고 위에는 산이 있는 모양이다.
『주역』의 괘는 반드시 아래에서 위로 설명되므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물이 우뚝한 산을 만나 험난한 데에 머물고 있어 몽매하다’는 뜻이 나온다. 그렇다면 불길한 괘가 아닌가? 아니다.
이 괘를 그린 사람은 한 마디로 형통[亨]하다고 했다. 달도 기울면 다시 차게 되고, 가득 차면 다시 기울듯이 상황의 반전은 최악이나 최선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이 「몽괘」가 형통하다고 한 것은 배우고 익혀서 깨달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유치하고 어리석을 때 교육은 시작되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배운 사람을 가르치기 어려운 것은 고집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지 상태일 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 흰 백지 상태에 있는 어린 아이에게는 스승의 존재가 필요하다. 스승이란 큰 사람의 길을 먼저 몸으로 보여주며 어리고 무지한 이를 참되게 깨우쳐 주는 일을 사명으로 한다. 더불어 윤리 규범을 존중하여 스승의 존엄성을 확립하여 성실한 학습 태도를 유지하도록 가르친다. 따라서 공경하지 않으면 스승을 만나 볼 수 없고 물어보지 않으면 스승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몽괘(蒙卦)」가 담고 있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있다면 짐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가르침이라는 전승 과정이 들어갈 때 비로소 사람답게 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가르침의 관계를 엄숙히 할 것을 표현한 괘가 바로 몽괘이고 여기서 ‘어리석고 어린 아이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는 뜻의 『몽구』란 이름이 나온 것이다.
현대인들은 서양의 보통 교육 이념에 따라 누구나 의무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따르면 제자의 도리를 갖추지 않은 사람, 배우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공자도 『논어』 「술이」에서 배우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더구나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요즈음 결혼식에 사용되는 ‘폐백’의 용도는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의식 절차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제자가 스승을 처음 만날 때나 가르침을 청할 때 반드시 폐백을 올렸다. 지금처럼 밤, 대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진수성찬이 아니라 땔나무나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짚신을 가져다 드리고 정성을 다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을 것을 청했다. 바로 「몽괘(蒙卦)」란 이렇게 스승의 도리와 제자의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책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이미 배움의 과정이 끝난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리고 무지하지만 이제부터 세상의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동몽(童蒙)의 목마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천자문』, 『소학』, 『동몽선습』과 같은 아동 교육서로 전통적인 용어로 어린 아이를 깨우쳐 주는 책이라는 뜻의 훈몽서(訓蒙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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