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째 고개, 왜 이 책인가?
앞의 여덟째 고개에서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에 대해 언급했다. 당대 이후로 『몽구』처럼 『주역』의 「몽괘(蒙卦)」를 교육 지표로 삼는 책들이 여럿 쓰여졌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어린이 교과서로 쓰인 ‘어린이가 먼저 익혀야 할 책’이라는 뜻의 『동몽선습(童蒙先習)』의 ‘동몽’이란 제목도 여기서 유래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핵심이라는 뜻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의 ‘몽’자 역시 여기에서 유래한다. 중요한 점은 이 두 작품이 모두 우리 나라 사람의 저작이라는 점이다. 『동몽선습』은 조선시대 박세무가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가 지었다.
이 두 책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격몽요결』과 『동몽선습』이 유학, 특히 성리학에서 주입하고자 하는 윤리 도덕을 위주로 편집돼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책들이 아주 짧은 유교 덕목, 예를 들면 삼강오륜 같은 것을 외우기 편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에 반해 『몽구』는 저작 시기 자체가 중국에서 성리학이 나오기 이전이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개성적인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몽구』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교과서로서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잊혀져 간 이유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성리학에서 지향하고 있는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인간 모델에서 볼 때 『몽구』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너무나 파격적이고 위험하고 저급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계속해서 봉건시대 어린이 교과서로서 애용되었다. 특히 명치유신 이후로 서구 문물의 전폭적인 수입 과정 속에서 『몽구』는 전통적인 교양서로 각광받으면서 수많은 번역본이 등장했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중심을 고전에서 찾았고, 그것은 어린이 교과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주체를 확립하고서 외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식이 그들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동몽선습』이나 『격몽요결』처럼 우리 나라 어린이 교과서를 중국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직접 편찬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성리학적 윤리 의식의 고양만을 목적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에 비극이 숨어 있다. 우리 민족은 왜 그렇게 성리학 일색의 도덕 지상주의에 매몰돼 역동적인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을까? 이런 교육관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등등의 생각을 곱씹어 본다.
이제 이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겠다. 그 동안 수많은 처세 서적이 우리 앞에 많은 지혜를 쏟아 놓으며 등장했다. 그 책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아니면 절대적인 초월과 자유를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처세 서적은 도덕과 초월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에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몽구』는 어떤 입장을 강요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생생한 삶을 그대로 펼쳐 보여줄 뿐이다.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가를 정해 주는 책이 아니라 적절한 삶이 무엇인가를 각자 선택하도록 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몽구』는 성리학이라는 도덕주의가 지배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동양인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윤리 도덕으로 덧칠되지 않은 동양인의 원형을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판단은 독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자 하는 의미에서 이 책을 택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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