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손의 한시가 최치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유
濯足淸江臥白沙 |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
心神岑寂入無何 |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
天敎風浪長喧耳 |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
不聞人間萬事多 |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
『소화시평』 권상65번에 나온 홍유손의 「제강석(題江石)」은 어렵지 않았던 시다. 그리고 최치원의 작품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그대로 드니, 더더욱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3~4구에 이르면 완벽하게 최치원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판박이다. 분명히 홍유손은 이 시를 지으며 최치원의 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을 것이고, 그만큼 최치원의 풍도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화를 읽으면서 작자의 평가에 대해 긴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그 시대의 작품을 보는 감식안과 지금의 감식안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해봐도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시험에는 그런 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소화시평 스터디가 좋은 점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긴밀하게 생각해보게 하고 정답은 아닐지라도 홍만종의 생각에 어느 정도 가닿게 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홍만종이 ‘홍유손의 시가 최치원의 시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님이 왜 그런 평가를 하게 됐는지 생각해보도록 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최치원은 가야산 독서당이란 실제의 장소에서 쓴 시인데 반해, 홍유손은 어딘지 모를 강에서 최치원을 생각해서 쓴 것이기에 홍만종이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라고 대답을 했다. 실제적인 느낌과 단순한 모방 사이엔 분명한 우열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것이기에 서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자신이 생각해본 것을 얘기해주셨다.
그건 다름 아닌 시의 집약도(集約度)라는 거다. 하나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시가 얼마나 집약되어 있으며 그걸 명료하게 드러내는 지에 대한 거다. 최치원의 시는 시비성을 듣기 싫다는 느낌을 명료하게 전해준데 반해, 홍유손의 시는 1~2구에선 도를 터득한 사람의 이야기를 3~4에 이르러서야 시비의 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만큼 집약도가 떨어지고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뿐인가, 1~2구에선 분명히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 말했다. 그런데 3구에선 아예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귀를 시끄럽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를 터득했다는 건 그런 것에 달관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1~2구와 3구는 자체적으로 모순이 되는 거다. 그래서 교수님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시는 최치원의 시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라고 말씀해주셨다.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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