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과 두보의 그림 같은 시
籬外紅桃竹數科 | 울타리 밖 붉은 복숭아꽃과 대나무 몇 그루 |
𩁺𩁺雨脚閒飛花 | 부슬부슬 빗발에 이따금 꽃이 날리네. |
老翁荷耒兒騎犢 | 노인은 보습을 메고, 아이는 송아지 타니, |
子美詩中西崦家 | 두자미의 시 중에 「적곡 서쪽 산의 인가[赤谷西崦人家]」라는 시에서 얘기한 풍경이로다.『東文選』 |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장현촌가(長峴村家)」라는 시는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평한 정도전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느낌이 「도중(途中)」의 시와 매우 흡사하다. 마치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4구에선 아예 두보의 시인 「적곡서엄인가(赤谷西崦人家)」를 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아예 시 속에서 시의 제목을 인용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이 시를 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어떤 부분에서 흡사한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적곡의 서엄인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시다. 성간의 도중이란 시도 마치 가고 있는 길을 묘사하듯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 또한 가는 길을 묘사하고 있다. 1구에선 높은 곳에 올랐다가 2구에선 아예 교외로 나가 눈이 맑아지는 느낌을 표현했다. 그만큼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란 걸 알 수 있다. 그곳을 지나니 시냇물이 보이고 햇살 가득한 따뜻한 날씨가 맞아준다. 그 길엔 산에 만들어진 밭이 있는데 심어놓은 게 정말 잘 익은 것이다. 그곳을 지나니 드디어 민가들이 나온다. 띠풀로 만든 초가집이 보이고 울타리엔 자연스럽게 핀 소나무와 국화가 보인다. 이쯤 되니 마치 여기가 ‘웰컴 투 동막골’의 환상적인 세계인 양 느껴져 무릉도원 운운하는 말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아마 이 시를 이종묵 교수가 평가했다면, 마지막 무릉도원 운운한 말을 괜히 해서 산통을 깼다며 혹평을 했을 것이다. 내 느낌으론 두보의 시는 이동을 하며 그 장면을 그린 데 반해, 김종직의 시는 이동에 따른 묘사보다 한 자리에 서서 묘사하는 모습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 무언가 눈앞에서 묘사했다는 측면에선 같을 수 있지만, 느껴지는 것은 같지 않다. 물론 난 김종직의 시보단 함께 여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의 두보시가 좀 더 와 닿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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