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감을 아쉬워한 이행의 시와 두보의 악양루시
衰年奔走病如期 |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
春興無多不到詩 |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
睡起忽驚花事晩 |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
一番微雨落薔薇 |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
『소화시평』 권상 7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1구가 원인이 되어야 2구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1구를 해석할 때 병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병이 들었기에 2구의 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면 입맛도 떨어지고, 좋은 경치도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기 위해서다.
낙화시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비애가 담길 수밖에 없다. 꽃처럼 지는 내 인생에 대한 것, 그리고 꽃처럼 부질없는 것에 대한 것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러니 비애(悲哀)의 심정이 가득 담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비애만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봄날의 아쉬움을 얘기하지만. 그걸로 인해 아쉽긴 해도 운치 있게 그 상황을 묘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홍만종은 이 시에 대해서 ‘따스하고 넉넉하다’고 평가한 거겠지. 교수님은 이와 같은 느낌의 시로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를 들었다. 이 시에도 비애가 가득 담겼지만, 마지막 구 때문에 만당풍으로 평가되지 않고 성당풍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 옛적에 동정호에 대해 들었는데 이제야 악양루에 올랐구나. |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 오나라와 초나라 동남으로 갈라졌고 하늘과 땅과 낮과 밤이 부질없이 동정호에 떠있구나. |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 친구 한 글자 편지도 보내지 않고 늙은 몸 의지할 곳은 외로운 배뿐인데, |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 군마들이 관산의 북쪽에서 치열하게 전쟁 중이라 하니, 난간에 기대어 눈물 흘리누나. |
자신이 기구한 인생을 계속 얘기하다가, 결국 마지막 구절에선 나라 걱정을 하며 끝마쳤다. 그래서 성당이 됐다고 했는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자기 몸을 돌봐도 여념이 없을 텐데, 마지막 구절에 그걸 얼버무리며 나라 걱정을 했으니 말이다.
두보도 천상 자신이 관리였던 건 버릴 수가 없는지, 정치인들이 말만 했다 하면 ‘나라 걱정, 나라 걱정’하는 말들을 하는데 꼭 그런 허황된,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말하며 개인적인 영역들이 결국은 사회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나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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