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사에서 숙직하며 짓다
제직사(題直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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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동궁 이어소【이어소(移御所): 임금이 자리를 옮겨서 거처하는 곳이다.】의 숙직하는 방벽에 쓰다
사월이십육일 서우동궁이어소직사벽(四月二十六日 書于東宮移御所直舍壁)
이행(李荇)
衰年奔走病如期 春興無多不到詩
睡起忽驚花事了 一番微雨落薔薇 『容齋先生集』 卷之一
해석
衰年奔走病如期 쇠년분주병여기 |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
春興無多不到詩 춘흥무다부도시 |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
睡起忽驚花事了 수기홀경화사료 |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화사(花事): 봄에 노닐며 꽃 등을 보는 일[游春看花等事]】이 다 가버려, |
一番微雨落薔薇 일번미우락장미 |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容齋先生集』 卷之一 |
가진 자의 화려한 장미 | 가진 것조차 지겨워져 파리한 장미 |
무소유의 맑은 장미 | 가지려는 의지는 없지만 해맑은 장미 |
해설
이 시는 1523년 의정부 우찬성으로 있을 때인 4월 26일 동궁 이어소의 숙직하는 방 벽에 쓴 시이다.
노년에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데 병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을 찾아오고 있다. 그래서 봄이 와도 흥이 많이 나지 않아 시를 짓지 못하고 있다. 이어소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놀랍게도 어느새 봄빛이 저물어 한 차례 보슬비에 장미꽃이 져 버렸다.
화려하고 낙관적이며 진취적이기보다는 사화(士禍)를 겪은 탓인지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인생의 슬픔이 드러나 있다. 앞서 보았던 성현(成俔)의 시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행(李荇)은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본조의 시체는 네다섯 번 변했을 뿐만 아니다. 국초에는 고려의 남은 기풍을 이어 오로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성종, 중종 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이행(李荇)이 대성하였다. 중간에 황산곡(黃山谷)의 시를 참작하여 시를 지었으니, 박은(朴誾)의 재능은 실로 삼백 년 시사(詩史)에서 최고이다. 또 변하여 황산곡과 진사도(陳師道)를 오로지 배웠는데, 정사룡(鄭士龍)·노수신(盧守愼)·황정욱(黃廷彧)이 솥발처럼 우뚝 일어났다. 또 변하여 당풍(唐風)의 바름으로 돌아갔으니,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이 순정한 이들이다. 대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잘못되면 왕왕 군더더기가 있는데다 진부하여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강서시파(江西詩派)를 배운 데서 잘못되면 더욱 비틀고 천착하게 되어 염증을 낼 만 하다[本朝詩體, 不啻四五變. 國初承勝國之緖, 純學東坡, 以迄於宣靖, 惟容齋稱大成焉. 中間參以豫章, 則翠軒之才, 實三百年之一人. 又變而專攻黃ㆍ陳, 則湖ㆍ蘇ㆍ芝, 鼎足雄峙. 又變而反正於唐, 則崔ㆍ白ㆍ李, 其粹然者也. 夫學眉山而失之, 往往冗陳, 不滿人意, 江西之弊, 尤拗拙可厭].”라고 언급한 것처럼, 송풍(宋風)의 영향을 받아 소동파(蘇東坡)에 뛰어났던 시인이다.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용재 이행은 화평하고 순숙한 시를 지어서 넉넉하게 신경(神境)에 들어갔다. 허균(許筠)은 용재를 조선조 제일 대가라고 했다[李容齋荇爲詩, 和平純熟, 優入神境, 許筠稱爲國士第一].”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용재집(容齋集)』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문장이 있다. 그러나 체격(體格)이나 운치(韻致)는 용재가 택당보다 낫다[容齋集 子所最好 繼此而有澤堂文章 然體格韻致 容勝於澤].”라 하였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210~21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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