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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6.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6.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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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소화시평권상 96은 홍만종이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양경우의 문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책이 귀하던 그 시절에 홍만종은 여러 사람의 문집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그런 문집들을 읽다가 자신이 언제가 활용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발췌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양경우의 문집과 이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열나게 베끼고 있는 홍만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나게 베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단연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도중 한 곳에 들어갔고 그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내용이 너무도 재기발랄하여 저녁에 정진사와 함께 찾아 반을 나누어 베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글이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호질(虎叱)이란 작품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미 글이 지어진 그런 내용을 밝혀놨기에 호질은 중국인의 작품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만들어진 공산품에 이라 이름을 붙임으로 예술작품으로 탈바꿈되듯, 주위에 돌아다니던 무수한 것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작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자료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엔 원전(原典)이 문제가 아니라 그 원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바로 거기에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처럼 호질또한 중국의 식당에 걸려 있던 뭇 작품 중 하나였지만 연암이 열하일기에 내용을 첨가하고 수정하여 첨부함(정진사가 베낀 곳은 글자를 너무 휘갈긴 까닭에 도무지 알아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나의 뜻을 곳곳에 넣어 한 편을 완성했다[故略以己意點綴爲篇焉].’)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 재밌는 표현은 기우(己右)’라는 표현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오른쪽이란 옳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좋은 것, 나은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이런 표현을 썼구나라는 후손으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해주더라. 여기서 말하는 오른쪽이란, 그 당시 책들을 세로쓰기를 하던 때였다. 한문문집들을 보면 세로쓰기로 되어 있었고 이런 전통은 1987년까지 그대로 이어져 신문들도 세로쓰기를 당연한 듯이 하던 때였다. 바로 이와 같은 관습을 깨고 한글전용으로 가로쓰기를 신문에 먼저 도입한 것이 그 당시 87체제와 함께 발행된 한겨레 신문이었던 것이다. 세로쓰기를 하면 당연히 오른쪽부터 글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른쪽에 둔다는 말은 나의 윗자리에 둔다라는 뜻이 되고 나보다 실력이 높다라는 평가가 되는 것이다.

 

단순할 것 같은 오른쪽에 둔다라는 표현에 그 당시의 세로쓰기를 하던 전통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럴 때 오른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까지 한 번에 알 수 있으니, 역시 하나의 문장을 보는 일은 여러 배경지식과 스키마가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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