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너머의 지식, 학교 너머의 배움
한참 임용을 준비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단재학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6년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갖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건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전혀 생소한 인연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밖에 길이 있다’라던지, ‘교실이란 공간 밖에 배움이 있다’라던지 하는 말들을 해왔던 것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얘기는 텍스트에 사로잡혀서도, 공간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지식은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다른 건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며, 잠을 잘 때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아주 올바른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중에 ‘배움은 학교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가면 좋아하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 방황을 해보겠다고 하면 싫어하고, 학창 시절 이후에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다시 학교로 포섭되는 모양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 13년엔 3주간 카자흐스탄 여행을 했었다. 이런 지지고 볶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내용 안에 모든 게 있다기보다 그걸 담고 있는 사람 자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박동섭쌤은 아예 ‘학교적이지 않은 학교 만들기’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주제를 말하기도 했으며, 연암 박지원은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선 “이것이 나의 날아가고 날아오는 문자이고 서로 지저귀고 화답하는 책이로다[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라고 감탄하고선 ‘오늘 책 한권을 읽었다’고 결론지은 것(「두 번째로 경지에게 답장한 편지答京之之二」)이다.
박동섭과 박지원, 두 사람의 공통점은 지식을 얻게 되는 영역을 확장했고,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을 무한대로 넓혔다는 데에 있다. 이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다면, 우린 여행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 것과 똑같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2013년에 3주간의 일정으로 떠났던 ‘카자흐스탄 여행기’를 새롭게 편집하는 작업을 했었다. 무려 5년 전의 기록이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며 편집을 하다 보니 여행이 가진 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떠나봐야만 내가 어떤 환경에 사로잡혀 있는지, 그리고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나만의 아집이었는지, 또한 ‘지적 자부심’이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허약한 지반 위에서 구축된 망상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소속된 사람들을 만나 어우러지며 ‘지식ㆍ배움’으로 구축된 고정관념이 깡그리 무너지고 나면 그제야 사람이 보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나야말로 한낱 지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경험해보지 않아도 세상도 알고 사람도 모두 다 알아요’라고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재밌는 점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여러 가지로 부딪히는 거야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이해하고 포용하려 애를 썼던 반면에, 막상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부딪히게 될 진 상상도 못했다. 거기엔 같은 한국인이라 같은 한국말을 하니 의사소통이 잘 될 거란 생각이, 더욱이 단재학교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너무도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기인하고 있었다. 오리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서로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하니 그만큼 더 실망하게 되고 그만큼 오해가 더욱 더 쌓이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내내 서로 티격태격 많이 싸우긴 했지만, 그런 갈등의 시간만큼 예전엔 갖지 못했던 친밀감은 더욱 커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기엔 삶의 역설이 숨어있다. 친하기 때문에 친한 게 아니라, 안 친하기 때문에 친해진다는 역설 말이다. 친하다 생각하면 오히려 ‘내 맘과 같기를’ 바라게 되어 오해하고 실망하게 되지만,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쟤 왜 저래?’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더욱 더 알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니 친하지 않다고 인정할 때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 15년엔 대구에서 서울까지 자전거여행을 했는데 이럴 때 우린 자연스레 여러가지를 알게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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