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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2.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2.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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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소화시평권상 92에서 이안눌은 권벽과 권필 부자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를 놓고 비교를 한다. 우선 비교를 하려면 같은 느낌으로 쓰여진 시를 선별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고 시적 재능도 완전히 달랐으니, 다른 작품을 놓고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눌은 중국 사신을 전별하는 시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쓴 사신 전별시를 골랐고 그걸 통해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一曲驪駒正咽聲 한 곡조의 이별곡은 바로 오열하는 소리
朔雲晴雪滿前程 변방의 구름과 쌓인 눈이 앞길에 가득하구나.
不知後會期何地 훗날 기약 어디일지 알지 못하니,
只是相思隔此生 그저 그리움만 지닌 채 이 생은 떨어져 있으리.
梅發京華春信早 매화 피어 서울에 봄소식이 빠르면
氷消江浙暮潮平 얼음 녹아 절강에도 저녁 조수가 불어나겠지.
歸心自切君親戀 귀향하는 마음 절로 간절한 것은, 임금과 어버이 그리움 때문이니,
肯顧東人惜別情 어찌 동쪽사람 석별의 정을 돌아보랴.

 

 

江頭細柳綠烟絲 강가의 실버들 가닥가닥 푸르러.
暫住蘭橈折一枝 잠시 목란배를 멈추고 한 가지 꺾네.
別語在心徒脈脈 이별의 말은 맘에 둔 채 한갓 그저 바라만 보며,
離盃到手故遲遲 이별의 술잔 손에 이르자 일부러 머뭇머뭇.
死前只是相思日 죽기 전엔 다만 그대를 그리워할 날 뿐이리니,
送後那堪獨去時 보낸 후에 어찌 홀로 떠나는 걸 감당하려나.
莫道音容便長隔 목소리와 얼굴, 곧 길게 떨어진다고 말하지 마오.
百年還有夢中期 한 평생 도리어 꿈속 기약 있을 테니.

 

그러면서 습재의 시(위의 시)가라앉고 무게감이 있다[沈重]’라고 평가했고, 권필의 시(아래 시)들뜨고 허약하다[浮弱]’라고 평가하며, ‘이 두 시를 통해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네[可於此兩詩論定]’라고 말한다. 이런 평가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떤 시가 더 좋다는 것인지, 문학적 재능이 더 낫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두 성향은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안눌은 이런 결론을 통해 누가 낫다고 할 수 없다. 둘의 성향이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뭔가 명쾌하지가 않았는데 느낌적인 느낌으로 보자면, 석주보단 습재를 더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다. 아무래도 가벼운 것보단 무게가 있는 게 좋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건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추측한 것일 뿐 잘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김형술 교수님은 아주 중요한 텍스트 하나를 던져줬다. 그건 바로 김만중이 쓴 글이다. 김만중은 우리에게 사씨남정기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서포만필이란 비평집을 통해 당대의 시를 비평했다. 바로 여기서 석주의 시를 비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평에서 김만중은 석주의 시에 대해 또한 기교가 있다[亦非不工矣].’라고 단번에 실력의 뛰어남을 인정해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매우 관서의 감영 기생과 탕자가 헤어질 때의 말과 비슷하니, 깊은 우의의 자리에서 어찌 이런 따위의 기상이 있는가?[而頗似關西營妓與蕩子惜別語, 紵衣縞帶之贈, 安有此等氣象]?’라고 서슴없이 비판의 칼날을 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명확해진다. 이 시는 정식 외교문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적인 의전의 상황에서 쓰여진 시라는 것을 말이다. 중국의 사신을 대접하고 헤어질 때 이별의 아쉬움의 정조를 담은 시를 써야 한다. 그건 외교적인 상황에서 으레 써야 하는 시이긴 하지만, 절절한 감성을 담아야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러니 절절한 감성을 담되 부담스럽지 않게 담아야 한다. 그래야 시를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조선에서 우리를 이렇게까지 위해주는 구나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시들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 우회적으로 쓰여지게 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론 이행의 차운부사유별(次韻副使留別)이란 작품을 들 수 있다. 여기선 헤어짐의 정감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단지 달도 뜨지 말고 바람도 불지 말라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말속엔 이미 헤어지기 때문에 슬픈 감정이 있는데 바람이 불고 달이 뜨면 슬픈 정감을 더욱 배가 시켜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라는 말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습재와 권필의 시를 보면 우열은 명확해진다. 습재의 시에선 마지막 구에서 석별의 정은 아쉽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당찬 마음이 보이는데 반해, 권필의 시에선 마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마냥 죽기 전엔 다만 그대를 그리워할 날 뿐이리오라거나 강가에서 버드나무 꺾네와 같은 남녀상열지사적인 감성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안눌은 이런 상황을 종합하여 확신에 찬 목소리로 권벽의 문학적 재능이 훨씬 뛰어나다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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