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승에게도 인은 양보하지 않는다
子曰: “當仁不讓於師.”
當仁, 以仁爲己任也. 雖師亦無所遜, 言當勇往而必爲也. 蓋仁者, 人所自有而自爲之, 非有爭也, 何遜之有?
○ 程子曰: “爲仁在己, 無所與遜. 若善名爲外, 則不可不遜.”
해석
子曰: “當仁不讓於師.”
공자께서 “인에 당해서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當仁, 以仁爲己任也.
당인(當仁)은 인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았다는 것이다.
雖師亦無所遜,
비록 스승이라도 사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言當勇往而必爲也.
마땅히 용맹하게 가서 반드시 한다는 말이다.
蓋仁者, 人所自有而自爲之,
대체로 인이란 사람이 스스로 소유한 것이고 스스로 하는 것으로
非有爭也, 何遜之有?
다툴 게 있지 않은 데 어째서 사양함이 있겠는가?
○ 程子曰: “爲仁在己, 無所與遜.
정명도(程明道)가 말했다. “인을 행하는 건 나에게 달려 있으니 사양함에 관여할 게 없다.
若善名爲外, 則不可不遜.”
그러나 선한 명성이 밖을 위하는 것으로 말하면 사양하지 않을 수 없다.”
○ 인(仁)의 실천은 나의 자율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仁)을 실천할 때 마땅히 스스로 용맹스럽게 해나가야 하기에, 스승에게조차 양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衛靈公)’의 이 장(章)에서 그점을 단호하게 말했다.
당인(當仁)은 ‘인을 실천하는 때를 당해서는’이다. 이에 이설이 많다. 주자는 ‘인을 나의 임무로 삼아서는’으로 풀이했으나 여기서는 공안국(孔安國)의 설을 따랐다. 불양(不讓)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於)는 ‘∼에게’이다. 사(師)는 선생(先生)과 장자(長者)를 말한다.
인(仁)이란 대체 무엇인가? 난문(難問)이다. 정약용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은 사람의 본심(本心)에 있되, 인(仁)이라는 이름은 실천 이후에 붙는다고 보았다. 맹자는 ‘측은(惻隱)의 마음이 인(仁)의 단(端)이다’라고 하여,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 본심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仁)이란 개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각자 본분을 극진히 행하는 것을 두고 사용한다. 순(舜) 임금은 아버지 고수(瞽瞍)의 마음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효(孝)를 이루었고, 비간(比干)은 은나라 왕 주(紂)가 포악(暴惡)했지만 그를 위해 간절하게 간언(諫言)함으로써 충(忠)을 이루었으며, 문왕(文王)은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사궁(四窮)을 불쌍히 여김으로써 자(慈)를 이루었다. 그 효(孝), 충(忠), 자(慈)의 실천이 인(仁)이다. 성리학에서 말하듯이 인(仁)을 리(理)로 본다면, ‘당인(當仁)’의 인(仁)만이 아니라 사서오경(四書五經)에 언급된 인(仁)이란 글자를 모두 풀이하기 어렵다.
일상에서는 스승에게 예(禮)를 지켜 사양해야 하지만 인(仁)을 행하는 일은 유기(由己, 나로부터 시작되는)의 일이므로 스승에게라도 사양해서는 안 된다. ‘안연(顔淵)’에서는 “하루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하면 천하가 인(仁)으로 돌아온다. 인(仁)을 함은 자기에게서 비롯하나니, 남에게서 비롯될 것인가?”라고 했다. 나는 자율적인 주체인가? 인(仁)의 실천을 남에게 양보하고 있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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