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문 성중엄의 시에 차운하다
차계문운(次季文韻)
정희량(鄭希亮)
過眼如雲事事新 狂歌獨立路岐塵
百年三萬六千日 四海東西南北人
宋玉怨騷悲落木 謫仙哀賦惜餘春
醉鄕倘有閒田地 乞與劉伶且卜隣 『虛庵先生遺集』 卷之二
해석
過眼如雲事事新 과안여운사사신 |
눈을 지나는 구름처럼 일마다 새로워 |
狂歌獨立路岐塵 광가독립로기진 |
미친 척 노래하며 홀로 갈림길 먼지에 서 있네. |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
백년은 3만 6천 일인데 |
四海東西南北人 사해동서남북인 |
온 세상 마구 돌아다니던 사람이라네. |
宋玉怨騷悲落木 송옥원소비락목 |
송옥【송옥(宋玉): 굴원(屈原)을 이은 초사의 대가(大家)】의 원망하는 글은 지는 잎을 슬퍼했고 |
謫仙哀賦惜餘春 적선애부석여춘 |
이백의 슬픈 시는 남은 봄 애달파했네. |
醉鄕倘有閒田地 취향당유한전지 |
취했음에도 거닐[倘=徜] 한가한 밭이 있으니 |
乞與劉伶且卜隣 걸여류령차복린 |
빌려서 유령과 장차 이웃을 골라 거주하려네【복린(卜隣): ① 좋은 이웃을 고르다 ② 환경이 좋은 곳을 골라 거주하다】. 『虛庵先生遺集』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계문 성중엄의 시를 차운한 것으로, 1500년 김해로 이배된 다음 해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구름이 눈앞을 지나가듯이 일마다 새로운데,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미친 듯 노래하며 홀로 갈림길에 서 있다. 살아 봐야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동서남북으로 떠도는 신세다. 송옥의 초사는 지는 잎을 슬퍼했고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는 남은 봄을 아까워했다. 술을 좋아해서 「주덕송(酒德項)」을 노래했던 유령(劉伶)과 이웃이 되어 취향에서 흠뻑 취하고 싶다.
『해동잡록』에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逸話)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순부(淳夫)이고 호는 허암(虛菴)으로 시풍(詩風)이 방일(放逸)하다. 또 음양학(陰陽學)에 능통해서 일찍이 자기 운명을 점쳐 보고는 매양 세상을 피할 뜻이 있었다. 연산군 초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로 선보되었다. 무오사화를 당해 의주(義州)에 귀양 갔다가 갑자년에 방면되었다. 어머니의 상을 만나 덕수현(德水縣) 남쪽에서 여묘살이를 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갑자년의 화(禍)가 무오년의 화보다 더 심하리라.’ 하더니, 하루는 산에 들어가 산 둔덕 사이를 서성거리며 필관채(筆管菜)를 캔다고 핑계하다가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이웃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자취를 찾아보았으나 사람들은 다만 남강(南江) 물가 모래에 벗겨져 있는 신 두 짝만 발견했다. 혹시 강물에 빠져 죽기라도 했는가 싶어 뱃사공들을 모아다가 혹은 배로 혹은 헤엄을 치며 두루 강물을 오르내리며 찾았으나 끝내 그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광평군(海平君) 정기수(鄭耆叟)는 공의 친족이다. 그래서 연산군에게 ‘군현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찾아보게 하였습니다.’라 아뢰니, 연산군이 ‘미친놈이 달아나 죽었는데 뭣에 쓰려고 찾느냐!’ 할 뿐이었다. 끝내 형적이 사라지고 그 생을 어떻게 마쳤는지 알지 못했다. 『허암집(虛庵集)』이 있어 세상에 전한다[海州人 字淳夫 號虛菴 爲詩放逸 又善陰陽學 嘗自算命 每有遁世之志 燕山初登第 選補藝文館檢閱 戊午被史禍 謫義州 甲子蒙放 丁憂守墓德水縣南 嘗曰 甲子之禍 甚於戊午 一日入山 散步坡隴間 托採筆管菜 遂不見 隣人四散細蹤 人只見南江故屨二隻脫在汀沙 疑其沈江 募水師 或舟或泅 遍江上下 遂不獲其屍 海平君鄭公耆叟 公之族也 啓燕山 令郡縣物色之 燕山曰 狂奴逃死 何用尋爲 竟絶影響 不知所終 有虛菴集行于世].”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72~17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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