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읊조리다
우음(偶吟)
박순(朴淳)
卷箔看晴景 巡簷步落花
권박간청경 순첨보락화
蒼山臨野水 落日滿漁家
창산림야수 낙일만어가 『思菴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卷箔看晴景 巡簷步落花 | 발을 걷고 갠 경치 보고서 처마 돌며 낙화에 거니네. |
蒼山臨野水 落日滿漁家 | 푸른 산이 들판 물에 닿아 있어 지는 해는 어부집에 가득하네. 『思菴先生文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관료생활을 하기 시작한 31세 전에 우연히 읊은 것으로, 비 온 뒤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비가 갠 뒤 주렴을 걷고서 맑은 경치를 감상하고 집의 처마를 따라 돌면서 떨어진 꽃을 밟으며 산보하고 있다. 비 온 뒤라 더 푸른 산은 강물에 임해 있고, 시간이 지나 석양이 되자 지는 해가 어부의 집을 가득 비추고 있다.
경물(景物)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연의 경물 자체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당풍(唐風)을 띠고 있다. 허균(許筠)의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서, “하루는 사암(思菴) 정승이 이달에게 말해 주기를,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를 정도(正道)로 삼아야 하네. 자첨 소식(蘇軾)의 시는 호방(豪放)하기는 하지만 이미 당시의 아래로 떨어지네.’하였다. 그러고는 시렁 위에서 이태백(李太白)의 악부(樂府)ㆍ가음시(歌吟詩),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를 찾아내서 보여 주었다. 이달은 깜짝 놀란 듯 정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드디어 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예전에 숨어 살던 손곡(蓀谷)의 산장으로 돌아갔다. 『문선(文選)』과 이태백 및 성당의 십이가ㆍ유 수주ㆍ위 좌사【십이가는 당나라 성당(盛唐)의 시인으로 유명했던 12명의 시인. 유 수주는 당나라 중당(中唐)의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수주자사(隨州刺史)를 지냈으므로 부르는 이름임. 위 좌사는 당나라 중당의 시인 위응물(韋應物)을 일컬음. 소주자사(蘇州刺史)를 지냈기에 보통 위소주(韋蘇州)로 호칭됨】와 백겸(伯謙은 元나라의 楊士弘이 『唐音』을 지었으니, 그를 가리킴)의 『당음(唐音)』까지를 꺼내서 문을 닫고 외웠다.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5년을 지내자 어렴풋이 깨우쳐짐이 있는 듯했다. 시험 삼아 시를 지었더니 어휘가 무척 청절(淸切)하여 옛날의 수법은 완전히 씻어졌었다[思菴相謂達曰: “詩道當以爲唐爲正, 子瞻雖豪放, 已落第二義也.”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ㆍ王孟近體以示之, 達矍然知正法之在是. 遂盡捐故學, 歸舊所隱蓀谷之莊,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ㆍ劉隨州ㆍ韋左史曁伯謙『唐音』, 伏而誦之. 夜以繼晷, 膝不離坐席. 凡五年, 悅然若有悟, 試發之詩, 則語甚淸切, 一洗舊日態].”라고 언급한 것처럼, 박순(朴淳)은 당풍(唐風)을 주도한 사람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363~36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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