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의 수레를 지나다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接輿, 楚人, 佯狂辟世. 夫子時將適楚, 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鳳有道則見, 無道則隱, 接輿以比孔子, 而譏其不能隱爲德衰也. 來者可追, 言及今尙可隱去. 已, 止也. 而, 語助辭. 殆, 危也. 接輿蓋知尊孔子而趨不同者也.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辟, 去聲.
○ 孔子下車, 蓋欲告之以出處之意. 接輿自以爲是, 故不欲聞而避之也.
해석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초나라 광인인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날 적에 “봉황새여! 봉황새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고,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가 있다. 그만두어야 한다!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 정치에 종사하는 이들은 위태롭다.”라고 말했다.
接輿, 楚人, 佯狂辟世.
접여는 초나라 사람으로 미친 척 세상을 피하였다.
夫子時將適楚,
부자께서 이때에 장차 초나라로 가려했기 때문에
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간 것이다.
鳳有道則見, 無道則隱,
봉황새는 도가 있으면 보이고, 도가 없으면 숨으니,
接輿以比孔子, 而譏其不能隱爲德衰也.
접여는 공자를 비유하여 숨지 못하는 것은 덕이 쇠하였기 때문이라 비판한 것이다.
來者可追, 言及今尙可隱去.
오는 것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오히려 숨을 만하다는 말이다.
已, 止也. 而, 語助辭.
이(已)는 그친다는 뜻이다. 이(而)는 어조사다.
殆, 危也.
태(殆)는 위태롭다는 말이다.
接輿蓋知尊孔子而趨不同者也.
접여는 대저 공자를 높일 줄은 알았지만 추구하는 것이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 ‘논어’ ‘미자(微子)’의 제5장이다. 접여(接輿)는 공자와 같은 시대인 초나라 소왕(昭王) 때 혼란한 정치현실을 보고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름이 육통(陸通)이었다고도 한다. 공자와 접여의 이야기는 ‘장자’에도 나온다. 어느 쪽이 원형인지는 알 수 없다.
과공자(過孔子)는 공자가 머물던 객사의 문 앞을 지나갔다는 말이다. 봉(鳳)은 봉황의 수컷이고, 암컷은 황(凰)이다. 접여는 공자를 봉(鳳)에 비유하여, 공자가 덕이 쇠하여서 은둔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혜(兮)는 감탄의 뜻을 나타내는 어조사다. 왕자(往者)는 과거(過去), 래자(來者)는 장래(將來)다. 불가간(不可諫)은 간하여 말릴 수 없다, 탓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가추(可追)는 뒤쫓을 수 있다,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이(已而)의 이(已)는 지(止)와 같고, 이(而)는 어조사다. 태이(殆而)의 이(而)도 어조사다. 종정자(從政者)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은자(隱者)의 처지에 공감하면서도 스스로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연명(陶淵明)도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미 지나간 일은 간하여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의 일은 미칠 수도 있음을 알았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라고 했다. 옛 지식인은 접여나 도연명의 노래를 되새기면서 혼탁한 정치판에는 다시 나가지 않겠고 다짐하고는 했다. 퇴행적(退行的)이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을 듯도 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함께 말하고자 했다. 그러나 빨리 걸어 피하는 바람에 그와 함께 말을 할 순 없었다.
辟, 去聲.
○ 孔子下車, 蓋欲告之以出處之意.
공자가 수레에서 내린 것은 대개 그와 함께 출처의 뜻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接輿自以爲是, 故不欲聞而避之也.
접여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들으려 하지 않고 피하였다.
○ 공자와 초나라의 거짓 미치광이 접여(接輿)의 이야기는 ‘논어’ 가운데서도 특히 정채(精彩) 있는 일화다. ‘장자’에도 나오는데 ‘논어’ 쪽이 원형인 듯하다. 접여는 공자의 덕이 쇠하여 세상으로부터 숨지 못하고 미련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다.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노래를 불렀거나, 공자가 묵던 곳의 문 앞을 지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공자는 수레나 당(堂)에서 내려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접여가 빠른 걸음으로 피했기 때문에, 끝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공자가 접여와 이야기를 나누려 한 것은 어떤 심경에서 그랬을까?
추(趨)는 종종걸음으로 빨리 걷는다는 뜻이다. 그 주어는 접여인데, 생략되어 있다. 벽(辟)는 피할 피(避)의 옛 글자다. 여지언(與之言)의 지(之)는 접여를 가리킨다.
접여의 비판을 들었지만 공자는 세상을 광정(匡正)하려는 뜻을 바꾸지 않았다. 17세기의 윤휴(尹鑴)가 해설했듯이, 공자는 접여를 쫓아가 출처(出處)의 문제를 일러주려고 했으나 접여는 자신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피했을 것이다.
두보(杜甫)는 울적한 마음을 푼다는 뜻의 ‘견민(遣悶)’이란 시에서 ‘남에게 의지하기는 진나라 혹과 같고, 만나는 이들은 초나라 미치광이 같아라[倚著如秦贅, 過逢類楚狂]’라고 했다. 진나라 혹이란 표현은 진나라의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데릴사위로 들어가던 풍습을 비유로 끌어와 타향살이의 괴로움을 말한 것이다. 초나라 미치광이란 표현은 접여의 일을 끌어와 자신은 현실을 광정할 뜻을 버리지 않았거늘 사람들은 은둔을 권한다고 한탄한 것이다. 두보처럼 공자의 심경을 이해해야 ‘논어’를 제대로 읽었다 하지 않을까.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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