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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미자 - 7. 자로가 장인(丈人)의 집에서 하루 밤 묵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미자 - 7. 자로가 장인(丈人)의 집에서 하루 밤 묵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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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로가 장인(丈人)의 집에서 하루 밤 묵다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 徒弔反.

丈人, 亦隱者. , 竹器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 音値.

, 辨也.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 立之也. , 去草也.

 

子路拱而立.

知其隱者, 敬之也.

 

子路宿, 殺雞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 音嗣. , 賢遍反.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孔子使子反見之, 蓋欲告之以君臣之義. 而丈人意子路必將復來, 故先去之以滅其跡, 接輿之意也.

 

子路: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 上聲.

子路述夫子之意如此. 蓋丈人之接子路甚倨, 子路益恭, 丈人因見其二子焉. 則於長幼之節, 固知其不可廢矣, 故因其所明以曉之. , 序也. 人之大倫有五: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仕所以行君臣之義, 故雖知道之不行而不可廢. 然謂之義, 則事之可否, 身之去就, 亦自有不可苟者. 是以雖不潔身以亂倫, 亦非忘義以殉祿也. 福州有國初時寫本, 路下有反子二字, 以此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 未知是否?

氏曰: “隱者爲高, 故往而不反. 仕者爲通, 故溺而不止. 不與鳥獸同群, 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 此二者皆惑也. 是以依乎中庸者爲難. 惟聖人不廢君臣之義, 而必以其正, 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

 

 

 

 

해석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처져 막대기로 삼태기를 매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 徒弔反.

丈人, 亦隱者. , 竹器

장인(丈人)은 또한 은자다. ()는 대나무 그릇이다.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자로가 어르신, 부자님을 보았습니까?”라고 물으니, 어르신께서 사체를 부지런히 부리질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데, 누가 부자라 하는가?”라고 말씀하시고선, 막대기를 꽂고 김을 맸다.

, 音値.

, 辨也.

()은 변별한다는 뜻이다.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오곡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으니,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농사일을 하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유세 다님을 꾸짖은 것이다.

 

, 立之也. , 去草也.

()은 그것을 세워둔다는 뜻이다. ()는 김매는 것이다.

 

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과망(果忘)이라 한다. ‘논어에는 과망(果忘)의 은둔자들이 여럿 나온다. ‘미자(微子)’ 7장의 하조장인(荷蓧丈人)도 그 하나다. ()는 담(), ()는 대삼태기, 장인(丈人)은 노성(老成)한 분이다. 자로(子路)는 공자를 모시고 여행하다가 우연히 뒤처졌는데, 이때 하조장인을 만나 선생님을 못 보았느냐고 묻게 되었다.

사체(四體)는 사지(四肢). 오곡(五穀)은 벼 도()ㆍ메기장 서()ㆍ차기장 직()ㆍ보리 맥()ㆍ콩 숙()이다. ()은 수()와 같다. ()은 세울 으로 읽기도 하지만, 주자를 따라 둘 치()의 통용자로 본다. ()은 김맨다는 뜻이다.

주자는 하조장인이 자로에게 농업을 일삼지 않고 스승을 따라 유람한다고 꾸짖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하조장인은 공자의 존재를 알아 사지를 움직이지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어 선생님이라 하느냐고 비난한 듯하다. 이념의 실현을 위해 주유(周遊)한다고 비판한 것이리라. 장유(張維)중니는 조롱당했으니, 오곡을 분별할 줄 모른다고라 했다.

공자는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았으나 사지(四肢)를 게을리 한 것이 아니다. 김시습(金時習)인생 백 년에 염려할 바 한둘이 아니거늘, 사지를 게을리 하여 편하고 배부르길 구한다고 누가 말하나[人生百歲內, 所慮非一端. 孰云惰四肢, 居食求飽安]’라 했다. 우리가 부정할 존재는 세상일을 돌보지 않는 유수배(游手輩)인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路拱而立.

자로가 두 손을 맞잡고 공을 하며 서 있었다.

知其隱者, 敬之也.

은자임을 알고서, 그를 공경한 것이다.

 

子路宿, 殺雞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자로를 숙박하게 하며 닭을 잡고 기장밥을 해서 그를 먹였으며, 두 아들로 인사드리게 했다.

, 音嗣. , 賢遍反.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다음날 자로가 와서 어제의 일을 말하였다. 공자께서 은자다.”라고 하고선, 자로를 시켜 되돌아가 뵈게 하였는데, 집에 이르니 노인과 두 아들은 떠난 후였다.

孔子使子反見之, 蓋欲告之以君臣之義.

공자가 자로를 시켜 돌아가 보게 한 것은 대개 군신의 의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而丈人意子路必將復來,

그러나 어르신은 자로가 반드시 장차 다시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故先去之以滅其跡, 接輿之意也.

먼저 떠나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또한 접여의 뜻이다.

 

자로(子路)는 공자를 모시고 여행하다가 우연히 뒤처졌는데 이때 하조장인(荷蓧丈人)을 만나 선생님을 못 보았느냐고 묻자 하조장인은 사지를 움직이지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어 선생님이라 하느냐고 말했다. 자로는 그가 은자(隱者)임을 알고 두 손을 모아 공경의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하조장인은 자로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환대하고 두 아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다음 날 자로는 하조장인을 만나 환대받은 사실을 공자에게 알렸는데 공자는 그가 은자임을 감탄하고 자로로 하여금 다시 가서 군신(君臣)의 의리를 말하고 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하조장인은 자로가 올 줄 알고서 먼저 집을 떠나 종적을 없앴다.

()은 두 손을 맞잡아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다. ()먹이다는 뜻의 동사, ()는 앞에 나온 자로를 가리킨다. ()은 알현(謁見)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고(以告)의 이()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행의(行矣)는 떠나가고 없다는 뜻을 지닌다.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짓는다는 뜻의 살계위서(殺鷄爲黍)’계서(鷄黍)’라고도 하여 남을 극진히 대접한다는 뜻의 성어로 사용한다. 자로가 하조장인을 만난 이야기는 원나라 때 희곡의 소재가 될 정도로 흥미로운 요소를 담고 있다. 하조장인은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공자와 달랐지만 자로를 극진히 대접할 만큼 공자를 흠모했다. 공자도 자로에게 다시 가서 자신의 이념을 말해서 하조장인의 이해를 받고 싶어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와 다른 존재와의 접속을 꿈꾸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路: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 而亂大倫.

자로가 말했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가 없는 것이다. 장유의 예절은 없앨 수 없으니, 군신의 의를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은둔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려 큰 인륜을 없애는 것이다.

, 上聲.

자로(子路)는 하조장인(荷蓧丈人)의 집에서 하룻밤 묵은 후 길을 떠나 공자를 만나서 그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공자가 군신(君臣)의 의리(義理)를 말하고 오게 했으므로 자로는 다시 찾아갔으나 하조장인은 종적을 감춘 뒤였다. 자로는 하조장인의 두 아들에게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욕결기신이난대륜(欲潔其身而亂大倫)을 비판한 점에 있다. 곧 세상이 어지러우니 자기 몸만 깨끗이 하면 된다고 여겨 대륜(大倫)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은 오륜(五倫)을 가리키고, 대륜(大倫)은 군신(君臣)의 의리를 말한다.

무의(無義)는 군신(君臣)의 의리(義理)를 잃어버림을 뜻한다. 장유지절(長幼之節)은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예절을 말한다. 어제 자로가 하조장인의 집에 갔을 때 하조장인의 두 아들이 자로를 알현한 것이 이 예절이다. 여지하기폐지(如之何其廢之)는 어찌 그것을 폐기(廢棄)할 수가 있는가, 폐기할 수가 없다는 뜻의 반어이다.

욕결기신이난대륜(欲潔其身而亂大倫)을 줄여서 결신난륜(潔身亂倫)이라 한다. 근대 이전의 지식인으로서는 봉건 군주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사회적 실천을 의미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이별(李鼈)육가(六歌)’를 지어 세상을 조롱하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을 드러냈다고 비판하고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질을 담아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창작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자기 몸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으로 현실에 무관심한 것은 시민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온유하고 돈후한 마음으로 현실 개선을 위해 작은 실천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참여이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를 행하려는 것이다. 도가 행해질 수 없음은 이미 알고 있다.”

子路述夫子之意如此.

자로가 부자의 뜻을 서술함이 이와 같다.

 

蓋丈人之接子路甚倨,

대저 어르신이 자로를 접촉함이 매우 거만했으나

 

子路益恭, 丈人因見其二子焉.

자로는 더욱 공순했으므로 어르신이 이 때문에 두 아들을 인사시킨 것이다.

 

則於長幼之節, 固知其不可廢矣,

이것은 장유의 예절이 본디 없앨 수 없음을 안 것이기 때문에

 

故因其所明以曉之.

그 밝은 것으로 깨우친 것이다.

 

, 序也.

()은 차례다.

 

人之大倫有五:

사람의 큰 인륜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것이다.

 

仕所以行君臣之義,

벼슬하는 이유는 군신의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니

 

故雖知道之不行而不可廢.

비록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알더라도 없앨 수는 없다.

 

然謂之義, 則事之可否,

그러나 의라고 한다면 일의 옳고 그름과

 

身之去就, 亦自有不可苟者.

몸의 물러서고 나아감은 또한 구차스럽게 할 수는 없다.

 

是以雖不潔身以亂倫,

그렇기 때문에 비록 몸을 깨끗이 함으로 인륜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亦非忘義以殉祿也.

또한 의를 잃음으로 녹을 따르지도 않는다.

 

福州有國初時寫本, 路下有反子二字,

복주엔 나라 초기에 사본이 있었는데, ‘자로(子路)’ 밑에 반자(反子)’ 두 글자가 있었다.

 

以此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

자로가 돌아오자 부자께서 말씀하셨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未知是否?

이게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氏曰: “隱者爲高, 故往而不反.

범조우(范祖禹)가 말했다. “은자는 은둔을 고상하다 여기기 때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仕者爲通, 故溺而不止.

벼슬하는 사람은 벼슬하는 것을 통달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빠져 그치지 않는다.

 

不與鳥獸同群,

새와 짐승과 함께 무리 짓지 않으면

 

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

성명(性命)의 정()을 막아 부귀를 탐하게 하는 것이니

 

此二者皆惑也.

이 두 가지는 다 미혹된 것이다.

 

是以依乎中庸者爲難.

이런 이유로 중용에 의지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惟聖人不廢君臣之義, 而必以其正,

오직 성인은 군신의 뜻을 없애지 않으며 반드시 바름으로써 하는 것이니,

 

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

이 때문에 혹은 벼슬을 하고 혹은 은둔하더라도 마침내 도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자로(子路)는 공자의 명으로 하조장인(荷蓧丈人)의 곳으로 되돌아가서 군신(君臣)의 의()는 폐기할 수 없음을 말하려고 했으나, 하조장인은 종적을 감춘 뒤였다. 자로는 하조장인의 두 아들에게 벼슬하지 않으면 결신난륜(潔身亂倫)의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공자의 엄중한 비판을 전하였다. 그러고서 위의 말을 덧붙였다. 혹은 이 말도 공자가 한 말인데 자로가 직접 화법으로 옮긴 것이라고도 한다.

군자지사야(君子之仕也)는 주제를 내거는 어법으로 군자의 벼슬함이란의 뜻이다. 기의(其義)는 지난 호에 나왔던 군신지의(君臣之義)를 가리킨다. 도지불행(道之不行)은 뒤의 지()의 목적어로, 앞에 두어서 강조하고 뒤에서 지()로 받았다.

공자는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국가 기구 속에서 군신의 의리를 다하여 구세(救世)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 ‘주역에 보면 난세에는 군자에게 벼슬하지 않는 의리가 있다. , 건괘(乾卦)문언전(文言傳)’군자둔세무민(君子遯世无悶)’이라 했다. ‘세상을 피해 은둔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은 둔()과 같다. 대과괘(大過卦)상전(象傳)’에도 군자는 이 괘를 보고 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은둔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정약용은 자로(子路)가 하조장인의 집으로 다시 가서 군신의 의리 운운한 것은 자로의 무단(武斷)이며 자로의 본색(本色)이라고 비판했다. 강진에 유배되어 군신의 의리를 실천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하조장인의 심경을 생각해보고 그와 같이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둔세무민(遯世无悶)은 결신난륜(潔身亂倫)과 다르다. 정약용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은둔을 하더라도 우환의식(憂患意識)을 지니고 나름대로 구세(救世)의 실천을 행하는 것이 군자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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