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류가 되려하다
승태쌤이 ‘가고 싶은 사람만 정상까지 가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하자, 평상에 누워 한갓진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 제안에 콧방귀를 뀌며 볼멘소리를 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 승태쌤의 제안에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안 하는 건, 모두 해선 안 돼
하지만 변수는 있게 마련이다. 아마 그냥 그대로 진행됐다면 오전부터 다리가 아프다며 불만을 제기하던 아이와 그 아이만 혼자 남길 수 없다며 함께 남겠다고 자진한 아이, 그리고 승태쌤만이 호국사에 남았을 것이고, 나머지 아이들과 나는 정상까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전부터 불만을 제기하던 아이는 ‘자신만 놔두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려 한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등산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따라 함께 일어서며, “이렇게 되면 어떻게 저만 여기에 있어요?”라고 불퉁댔다. 그러자 아이들과 승태쌤은 이구동성으로 “너만 남겨 둘 순 없어서 한 학생과 선생님 한 분도 같이 남아 있기로 했잖아. 그러니 여기서 편안하게 쉬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 번 못마땅하게 여긴 아이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선다. 분위기가 냉랭해지니, 오르려 준비하던 나머지 아이들은 뻘쭘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 한 명도 자진하며 “그럼 저도 남아 있을 게요”라고 외쳤지만, 그 또한 전혀 소용이 없었다.
▲ 오전에 오를 때도 제대로 걷기보다 거의 쉬면서 조금 걸었을 뿐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아이들이 자신을 위해 함께 남아준다는 사실이 감사하고도 미안해서 “난 그냥 여기에 있을 테니, 너희들은 얼른 다녀와”라는 말을 하거나, 함께 기다려준다는 아이에겐 “그래도 이렇게 함께 남아준다고 해서 고마워”라는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게 하이틴 소설에 나오는 닭살 오르는 장면이기만 할 뿐, 현실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는 이런 상황을 만든 선생님만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고자 맘먹은 아이들의 발이 묶이길 바라진 않았겠으나, 결론적으론 그런 모양새가 되고 만 것이다. 이건 곧 ‘내가 하길 바라지 않는 일은, 아무도 해선 안 돼’라는 생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가겠다고 일어선 아이들조차 어리둥절해하며 그대로 자리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작되려던 분위기는 깔아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성민이만이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겠다고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아이만 혼자 보낼 수는 없기에 나도 그 아이의 뒤를 따라 나섰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넌 안 갈 거지. 그럼 난 갔다가 올게’라고 생각하여 움직이는 아이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 나는 이곳을 떠났으니, 아이들이 뭘 하고 있었을진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모습대로 놀고 있었을 거다.
하류가 되길 지향하다
이걸 보고 있으면, 당연히 우치다쌤이 쓴 『하류지향』이란 책이 떠오른다. 이 책에선 공부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나라도 점차 공부를 통한 계층상승이 불가능해지고 취업도 덩달아 힘들어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도 하지 않고 노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이에 대해서 우치다쌤은 노동주체로 설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과가 드러나는 공부나 노동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소비자마인드를 가진 소비주체로 자신을 형성하였기에 공부나 노동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기 혼자만 공부를 하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하지 못하도록 주도면밀하게 분위기를 망치고 유도한다는 점이었다. 모두 다 열심히 할 때 자신만 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모두 다 하지 않도록 한다면 자신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고무줄 놀이를 할 때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게, 게임을 망치는 것이다. 물론 그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이 아이도 교묘하게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으며, 무언가 하려는 아이들을 막아 세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상에 함께 오르며 느꼈던 소감을 함께 나눌 때 자신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으며, 남아 있을 때에도 ‘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머지 아이들은 그곳에 남는 바람에, 성민이와 나만 오르게 됐다.
▲ 이런 이유로 성민이와만 정상에 오르게 됐다. 아쉽다. 아쉬워~
인용
1. 건빵, 산에 살어리랏다
2. 산에 오르는 이유
4.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5. 당연함이란 없다
7. 하류가 되려 하다
9. 검단산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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