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행수업과 교실수업의 차이
어제 저녁 8시가 넘어 찜질방에 들어왔다. 목욕탕에서 씻을 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는데 찜질방에 내려가고 나선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지금껏 찜질방을 도보여행 때(4~5월), 사람여행 때(3~4월), 남한강 도보여행 때(10월)와 같은 비수기에 찾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서를 하러 찜질방에 오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일찍 시작하는 일정이지만, 늦장을 피우지 않았다.
찜질방은 피서지?
숙면실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놨고, 가장 큰 공간인 거실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찼다. 단순히 누울 자리만 찾는 거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텐데, 카메라를 충전하기 위해서 콘센트가 있는 곳을 찾으려니 더 힘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텔레비전 앞에 있는 콘센트 하나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엔 매트만 깔려 있지 사람은 없더라. 찜질방의 특성상 자기 자리라고 표시를 하지 않은 이상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문제가 되진 않기에 그 자리를 맡았다. 아이들도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내가 맡은 자리 밑으로 매트를 깔고 누웠다.
누워서 있다 보니 그 자리가 왜 비어 있는지 알겠더라. 그 자리는 텔레비전의 소음과 불빛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에어컨 바로 앞이라 냉기를 곧바로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시끄러운 소리와 에어컨의 냉기 때문에 잘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옮기기도 마땅치 않아 그냥 누웠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바로 잠이 스멀스멀 오더라.
▲ 여행 중 먹는 아침은 정말 꿀맛이다.
함께 가자는 외침
오늘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단재학교에서 청평까지는 4시간 정도가 걸린다지만, 어젠 10시 30분에 출발하여 청평에 7시가 넘어 도착했으니 넉넉잡아 7~8시간은 잡아야 했다. 그래서 좀 더 빨리 출발하자는 생각으로 7시에 일어났고 아침까지 먹고 나니 9시가 되었다. 아이들은 어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엉덩이가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민석이는 엉덩이 패드가 있는 라이딩복을 입고 왔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보니 엉덩이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오늘은 대형을 유지하며 갈 수 있을까? 어제도 얘기했다시피 이 여행 자체가 영화팀 전체의 여행이기에 함께 서로 배려하며 대형을 맞춰 달리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어제 라이딩을 하며 체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다.
▲ 아침을 먹고 달리다가 자전거 도로로 내려왔는데, 글쎄 상현이가 없더라. 그제야 상현이가 안 따라 왔다는 걸 알고 부랴부랴 데리러 갔다.
공허한 외침
출발하며 “청평교를 지나면 바로 자전거 길이 있으니 그곳까지는 나를 따라와”라고 말한 후 달렸다. 무사히 자전거도로에 도착해서 모두 잘 왔는지 살펴보니,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잘 따라 왔는데, 상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상현이를 찾으러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상현이는 우릴 따라오지 못하고 어제 찜질방 가는 길로 간 것이더라. 어쨌든 조금 헤매긴 했지만 출발 대형이 갖춰졌다. 오늘 대형은 ‘상현-민석-정훈-현세’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둘째 날의 라이딩도 화이팅!
달리기 전에 상현이에게 “한 번에 긴 거리를 달리지 않을 테니, 쉬는 곳까지는 힘들더라도 참고 잘 달리자”라고 얘기해줬다. 그렇게 청평1교까지는 대형을 유지하며 잘 갔지만 청평1교 밑의 오르막길에서 대형이 틀어지고 말았다. 오르막길에서 상현이는 오르지 못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으며 나머지 아이들은 페달을 굴러 상현이를 앞질러서 갔다. 그 상황에서 아이들을 세울 수는 없었고 그 때부터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 명의 아이들은 열심히 달렸고, 상현이는 시작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 이 때까지만 해도 대열을 맞춰 갔는데 저 다리 이후 오르막길에서부터 대열에 무산되었다.
여행은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게 한다
함께 가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그래도 어제처럼 오전엔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긴 했는데, 그것마저도 욕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까지 기량 차이가 나는 이상, 세 명의 아이들에게 상현이와 무작정 맞춰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맘껏 달리고 싶을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상현이 때문에 늦어졌다’, ‘상현이 때문에 맘껏 달리지 못했다’며 탓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 중간 만날 곳만 지정해두고 거기에선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민석, 정훈, 현세는 그것에 대해 전혀 불만스러워 하지 않았고 상현이를 잘 기다려 주었다. 그래도 단체 여행이라고 배려심이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상현이는 시작부터 어제 얘기했던 ‘일대일 상황에서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처음엔 멀찍이 떨어져 뒤에서 달리다가 상현이가 쉴 때마다 자전거를 멈췄다. 여전히 그런 나의 행동이 상현이에겐 빌미가 되어 오히려 가지 않고 더 자주 멈추려 했다. 그래서 앞질러 달렸고 중간 중간 너무 많이 떨어졌다 싶으면 상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패턴으로 진행했다. 그러면서 “어제 갔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줄 테니, 그때까지 꾹 참고 달리자”라고 의미부여를 해줬더니 어느 정도는 달리려 노력하더라.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과 여행의 차이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교사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다. 학생이 따라오든 못 따라오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교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하다 보니 당연히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오는 학생에게 더 관심이 가고, 그런 학생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게 마련이다.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거나, 아예 무관심한 학생이라면 교실이란 환경에선 애초부터 들러리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아니기에 교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할 수가 없다.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듯이 변수가 너무 많고, 한 학생이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여행을 마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의기투합이 중요하고, 가장 뒤처진 학생을 보듬어 안으려는 배려심이 중요하며 뒤처진 학생도 끝까지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여행에선 잘하는 학생보다 오히려 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여행과 수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선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기에 함께 가려 노력하는 반면, 수업에선 나 자신의 성취만 평가 받기에 혼자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 여행을 하며 배우는 건 인생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역량만 뽐낼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맞춰줘야 하는 인생 말이다.
인용
3. 여름방학 중 1박2일의 자전거 여행이 결정된 사연
4. 함께 가기의 어려움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8. 바뀐 일정, 그리고 무관심 속의 관심 (1) | 2019.12.17 |
---|---|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7. 상현이의 포기 선언과 자포자기 (0) | 2019.12.17 |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5. 지켜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도착 (0) | 2019.12.17 |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4. 함께 가기의 어려움 (0) | 2019.12.17 |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3. 여름방학 중 1박2일의 자전거 여행이 결정된 사연(15.08.03) (0) | 2019.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