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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9.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여름방학 중 영화팀 자전거 라이딩 - 9.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건방진방랑자 2019. 12. 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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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상현이는 힘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는 버릇이 있다. 아까 전에 도무지 못 가겠다고 말했을 때도 내가 받아들여주지 않자 아빠에게 전화하느라 시간이 더 지체된 것이다.

 

 

▲  상현이와 단 둘이 간다.

 

 

 

누구에게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전화하는 이유는 자신의 힘듦을 알아주라는 게 하나이고, 이에 대해 부모님은 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해결해 달라는 게 그 하나이다. 지금까진 당연히 자신의 문제를 어른들이 해결해줬기에 상현이 스스로 문제해결능력, 또는 문제를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둘만 가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연락해야겠다고 맘을 생기지 않도록 핸드폰을 압수했다. 그랬더니 상현이는 연락해야만 하는 상황에선 어떻게 해요?”라고 묻더라. 그나마 안전망이라 생각한 핸드폰을 빼앗기니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을 거다. 그래서 난 너와 멀리 떨어져서 안 보일 정도로 가진 않을 거야라고 안심시킨 후에 출발하게 되었다.

국수집에서부터 단재학교까지 가는 길엔 4번을 쉬기로 했다. 팔당대교 바로 밑에서, 미사대교 밑에서, 암사대교 옆의 오르막 정상에서, 천호대교 밑에서 쉬기로 했고 그때까지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에 했던 말과 다를 게 없는 말이지만, 달리는 구간을 잘게 잘게 쪼개어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훈련이 있는지. 헬기가 여러 대가 날아간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더 이상 나 외엔 하소연 할 방법이 없음(핸드폰이 없기에)을 알게 되자, 쉬기로 한 장소까지 최선을 다해 페달을 굴러서 온 것은 기본이고 힘들다’,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된 건 보너스였다. 그건 아무래도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정말로 도로 한복판에서 잘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상현이가 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함께 라이딩을 하고 있으니 훨씬 재밌었고 저절로 신이 났다. 그래서 천호대교에 도착해서 생수를 나눠 마시며,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들떴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  어느덧 잠실대교까지 왔다. 잘 달려온 그대에게 박수를  

 

 

 

, 그건 한계이면서 돌파구다

 

천호대교에서 어떻게 그렇게 힘들다고 하더니, 여기까지 올 생각을 다 했어?”라고 넌지시 물어보니, “조금씩 오다보니 도착했어요라고 대답하더라.

도보여행을 하며 느꼈던 한 걸음의 철학을 상현이도 그대로 얘기하고 있었다. 여행이 준 선물이라면 이성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경험으로 육화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게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게 모이고 모이면 결국 나 자신의 한계라 여겼던 벽을 허물고 인생의 방향까지 바꿀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데에 있다.

 

 

▲  혼자 힘으로 한 페달씩 밟아 청평까지 가고 학교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라는 시에서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 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라며 담쟁이의 덕성을 예찬했다. 해를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중력마저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이처럼 상현이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겐 저것은 벽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현실이든 의식이든 어떤 생각을 가로 막고 행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럴 때 주저앉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벽을 넘을 때 그건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벽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돌파구가 된다.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면 두 말할 나위 없이 한 걸음 내딛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로써 상현이는 한 걸음의 철학을 알게 됐고, 한 걸음씩 걸어 하나의 벽을 넘었다. 그리고 민석이와 정훈이, 현세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8월의 어느 날 그 더위 속을 맘껏 누비며 각자의 벽들을 넘었다. 단언컨대, 우리의 12일은 당신의 12일보다 아름다웠다.

 

 

▲  드디어학교에 도착. 여행으로 체험한 한 걸음의 철학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인용

목차

사진

1. 우린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민석과 정훈편)

2. 우린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현세와 상현편)

3. 여름방학 중 12일의 자전거 여행이 결정된 사연

4. 함께 가기의 어려움

5. 지켜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도착

6. 여행수업과 교실수업의 차이

7. 상현이의 포기 선언과 자포자기

8. 바뀐 일정, 그리고 무관심 속의 관심

9.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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