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야밤의 탁구를 치며 느낀 교육의 단상
고기를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세 부류로 나누어졌다. 일찍 잠을 청한 부류, 그리고 거실에 남아 티비를 보거나 108배를 올리는 부류, 체육관으로 올라가 노는 부류로 나뉜 것이다. 송라가 체육관까지 혼자 올라가기 무섭다고 하여 함께 체육관에 올라가게 되었다.
▲ 기름진 식기들을 설거지하는 민석이. 원랜 설거지만 하기로 했는데 떡볶이를 만들 때도 도왔다.
잘 불러야 노래냐, 노래는 그냥 자연스러운 소리의 향연이야
아이들은 모여 농구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탁구를 치기도 하는 등 피곤하지도 않은지 맘껏 놀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추운 날씨인데 몸을 움직이면 열기가 나서 외투를 벗어도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언제 저렇게 뛰어놀기를,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나 싶게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고 중간 중간 농구를 하기로 하더라. 이렇게 천방지축 놀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다.
노래를 원래 좋아하기도 했을 테지만, 아카펠라 수업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단재학교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전혀 갖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민석이와 현세는 아카펠라를 부르며 누군가를 골려주는 용도로 쓰기도 할 정도이니 말이다. 승빈이가 잠시 눈을 붙이려 하면 민석이와 현세가 들러붙어 아카펠라를 불러대며 잠을 깨운다. 옆에서 괴상한 화음으로 노래를 불러대니 아무리 피곤하다 한들, 시끄러워서 잠을 깰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심심하다 싶으면 민석이와 현세, 거기에 간혹 지훈이까지 함께 껴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아카펠라 수업이 만든 기묘한 풍경인 셈인데, 노래라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인 수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뜨겁다.
배려를 탁구로 배울 수 있다
송라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마다 송라와 탁구를 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교회에 탁구대가 설치되었고 여러 번 쳐보긴 했지만, 워낙 운동신경이 없는 탓에 실력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송라도 탁구를 잘 치는 편은 아니어서 한두 번 치면 공은 저 멀리 작별인사하듯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러자 송라가 “서로 10번씩 왔다 갔다 하는 걸 목표로 쳐봐요”라고 제안하더라. 그럴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감을 잡아야 했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탁구를 치다 보니 작별인사하듯 떠나는 공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뿐인가 나는 나대로, 송라는 송라대로 서로에게 맞춰주는 법을 터득해 가고 되었다.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다시피 송라는 승부욕이 강한 아이다. 그래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을 할 때면, 최대한 상대방이 치지 못하도록 막 주는 경향이 있다. 어찌 보면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런데 그게 ‘일생일대의 자웅을 겨루는 게임’도 아닐뿐더러, 상대방에게 아예 ‘경기할 마음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승부를 위한 게임이 아닌 함께 어떤 목표를 만들어가기 위한 게임을 하는 것이니, 나를 배려하여 공을 넘겨줬고, 최대한 중앙에 공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으며, 더욱이 목표에 가까이 갔다가 공이 나가기라도 하면 화를 내기보다 함께 안타까워해줬다.
이전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냐, 함께 목표를 이루어가야 하는 게임이냐의 차이가 결국 그 사람의 성향마저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겨야만 하는 게임에서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상대방이 칠 수 없게 주게 되며, 상대방이 실수를 하면 빈정 상하도록 깔아뭉개는 것이 당연시 되고, 같은 팀이 실수할 경우엔 온갖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 가야 할 땐 전혀 반대의 행동을 보이니, 이런 차이점을 보면서 ‘원래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이거든’, 또는 ‘원체 배려심이 깊어서’라고 판단하는 게 옳은 것일까? 그것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그걸 당연시하며 성장했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그런 성향들이 굳어져 갔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 여행을 와선 밤늦도록 노는 재미를 즐긴다 .
교육적 세팅으로 배려를 배운다?
교육은 세팅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이미 사회는 지극히 경쟁중심적인 사회이고, 우리가 아닌 내가 성공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압박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 모둠학습을 한다고, 토론학습을 한다고 경쟁심이 완화되고 협동심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그러니, 교육은 더욱 치열히 경쟁을 가르쳐야죠’하는 것은 그야말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사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교육한다’라는 교육적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식으로 무비판적으로 충실해져 갈수록 오히려 학생들의 재능과 장점을 제거해나가는 비교육적인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육은 끊임없이 비판적인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지금의 경쟁주의적인 세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환경이 있을 수 있기에 그에 대해 능동적인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이런 작은 체육활동을 통해 서로에 대해 배려심이 몸에 밸 수 있도록, 함께 무언가를 성취해가는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동양에선 예로부터 연기가 내 몸에 서서히 배어 들어오듯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해서 ‘훈습’이란 단어를 썼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송라와 탁구를 치면서 난 그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10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송라가 “그럼 서로 8번만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해봐요”라고 목표치를 낮춘 것이다. 1시간 가까이 치고 있음에도 7번 정도 오고가면 거듭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라, 목표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목표치가 낮아진 만큼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하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후 얼마나 지났을까. 오히려 목표치를 낮추며 ‘저 정도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적중했던지 순식간에 처음 목표였던 10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고, 그것도 함께 이루어낸 것이기에 기쁨은 두 배가 되어 서로 폴짝폴짝 뒤며 세상이라도 다 가진 양 행복해했다.
우린 아직도 놀고 싶다
이 날은 11시 30분까지 체육관에서 놀았다. 솔직히 나는 슬슬 추워지기 시작할 때라 빨리 내려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누군가 ‘그만 내려가자’고 말하지 않으면 밤이라도 샐 것처럼 신나게 놀더라. 그때 초이쌤이 내려가려 채비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 아이들에게 말해서 함께 내려갈 수 있었다.
펜션으로 돌아오니 지훈, 준영, 기태, 상현, 주연이는 잠을 자고 있더라. 아마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잠자리를 펴고 누웠을 것이다. 대부분은 1박2일 동안의 여행을 가면 밤새도록 노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오늘의 이 광경은 무척 생소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여행을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나누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체육관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지나는 밤이 아쉬운지 거실에 모여 게임을 하며 밤새도록 놀았다. 나도 바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게임하는 소리에 ‘아직도 안 자고 노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침이 되어 눈을 비비고 나가보니, 여학생들은 정말 한숨도 자지 않고 멀쩡한 표정으로 거실을 활보하고 있었고, 승빈이와 현세는 쇼파와 한 몸이 되어 널부러져 있더라. 새벽까지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알 수 있던 장면이었다.
▲ 밖에선 12시 전까지만 놀았지만 펜션으로 들어와선 밤을 새며 놀았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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