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나던 체육대회와 고기파티
다섯 번째 종목은 노래 부르기다. 노래 부르기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된 이 펜션의 특성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걸 진행하다보니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 이로써 마지막 종목인 노래대결이다 .
단재가왕, 그와 그녀들은 누구?
지훈이는 ‘바람기억’이란 노래를 지겹도록 반복하여 듣고 따라 부르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었고 현세와 태기는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학교 안에 노래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할 정도였으며 지민이는 여행 전날까지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따라 부르며 꼭 이겨야 된다는 의기를 북돋웠으니 말이다. 즉, 노래 부르기는 모든 아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임과 동시에 실력차도 그렇게 나지 않기 때문에 해볼 만한 종목이기도 했다. 더욱이 노래방 점수는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어떤 우연적인 요소에 점수를 내맡겨야 하는 상황인지라 아이들은 더욱 긴장 아닌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송라는 점수가 잘 나오는 법으로 ‘목소리를 크게 부를 것’과 ‘박자를 맞춰 부를 것’을 주문했는데, 그게 과연 맞는지 아닌지는 해봐야만 아는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노래 부르기는 경합이라기보다 그저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각 팀 당 두곡씩을 불러 점수를 합산하는 것이기에, 팀에서 노래를 그나마 잘 부르는 사람이 무대에 섰다. 승태팀에선 승태와 기태가, 초이팀에선 초이&지민과 현세가, 건빵팀에선 민석&지훈과 송라&규빈이가 노래를 불렀다. 다른 종목과는 달리 서로 노래를 한다고 비난하거나 야유를 퍼붓는 분위기가 아니라, 함께 즐기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우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모든 게임이 끝났고 1등은 건빵팀, 2등은 초이팀, 3등은 승태팀이 하게 되었다. 오늘 이런 식으로 체육대회를 하니 여느 여행과는 다르게 무척 신났고 재밌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 이렇게 무언가를 합심하여 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상황과 사연이 개인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함께 어울리며 서로와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 그래서 좋다.
같은 체육대회, 다른 행동
이런 열기를 보면서 2013년에 카자흐스탄의 체육 시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인지라 경기에도 최선을 다해서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멤버들이 다르다는 것과 그땐 친선경기인 반면 지금은 벌칙이 걸린 경기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게임에서의 승부욕이란 어찌 보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혜택(또는 벌칙)이 걸려 있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어려서부터 경쟁 위주의 활동을 당연시 한다. 그런 활동과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이기에, 경기 후에 즉각적인 혜택이 없으면 ‘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하다보니 즉각적인 참여동기가 부족한 경우, ‘이걸 하면 뭐가 좋아요?’,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을 뭐 하러 해요?’라고 말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테면 등산이나, 시를 외우는 것이나, 전시회에 찾아가 보는 활동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럴 때 가장 쉽게 유인하는 방법으론 “이걸 하면 나중에 대학 갈 때 도움이 돼!”라는 말을 하는 걸 테지만, 그것 또한 여전히 즉각적인 효과를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교육은 공들인 것과는 다른 모양새로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되돌아오는 시스템입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자판을 두드리면 화면에 문자가 뜨는 게 아니라 사흘 후에 그림엽서가 도착한다든지 삼 년 뒤 호박을 두 개 받게 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pp32”라는 게 바로 교육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그게 유용한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도 단기간적인 교육의 결과물을 원하며, 교사도 그런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해 단시간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끌어들이게 되었다.
‘만약 이 날 체육대회에 어떤 결과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카자흐스탄 때처럼 어떻게든 몸을 사르려 하고, 석모도 갯벌축구 때처럼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을까.
▲ 만약 현실적인 어떤 유익이 바로 있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함께 요리 만들기의 어려움
운동이 끝나고 나니 몸이 많이 얼었다. 몸을 움직일 땐 잘 몰랐는데, 노래를 부를 때 가만히 서있으려니 한기가 온몸을 감싸더라. 그래서 마지막 결과가 나오자마자 펜션으로 바로 내려온 것이다. 펜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기운이 얼굴로 퍼지며 안경에 서리가 낀다.
아이들은 쉬지 못하고 두 개의 조로 나누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한 조는 떡볶이를 만들고, 다른 한 조는 볶음밥을 만든다. 저번 부안여행 때도 세 팀으로 나누어져 요리를 함으로 노는 사람 없이 함께 모여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저번 여행에 비해 사람은 많은데도 불구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져 요리를 하다 보니, 하는 아이들만 하고 노는 아이들은 노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함께 만들어 먹자는 취지로 출발한 것이지만, 요리도구도 넉넉하지 않고 적극성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아이들대로 “왜 우리만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죠?”라는 불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뭘 하라고 하지도 않고 성질부터 내잖아요?”라고 불만이 있었다. 솔직히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기에 서로 원만하게 얘기를 하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그건 이상적으로나 가능한 얘기였을 뿐이다. 아이들은 어찌 되었든 갈등을 해소하려 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불만만 표시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이러다간 밥 한 끽 먹기도 전에 의부터 상하겠다.
▲ 함께 만들고,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늘 하던 사람만 한다는 게 실망으로 남는다.
요리 만들기가 무색해진 고기 파티
원래는 오늘 고기를 많이 구울 계획은 아니었다. 원래 단재학교에서 전체 여행을 가면 10근 정도의 고기를 사서 구워 먹는다. 그래야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먹는 재미, 노는 재미를 느끼는 게 전체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아이들이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는 것이었기에 고기는 맛만 보는 정도로 구울 예정이었는데, 운동을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은 고기를 찾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승태쌤이 차를 끌고 고기를 더 사와야 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볶음밥과 떡볶이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 그게 문제냐. 맛있는 것으로 배불리 먹는 게 제일인 것을.
그 때문에 이번 여행에도 고기를 굽게 되었다. 처음 꺼내 입은 외투에 고기 냄새가 밸까봐 외투는 식당에 벗어 놓고 고기를 구워야 하니 엄청 춥더라. 더욱이 이날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기에 숯불에 바짝 다가가 고기를 구워야 그나마 버틸 만 했을 정도였다. 나는 오돌오돌 떨지만, 숯불 위에 놓인 고기는 잘도 익어간다.
요리를 만드느라 서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저녁을 먹을 때만큼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긴 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진 않지만, 이렇게 한 학교에 다니는 인연으로 엮여 밥을 먹고 여행을 올 수 있다는 건 축복이긴 하다. 우린 어드메서 어떤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일까?
▲ 먹는 시간만큼은 갈등이 해소되고 그것만으로 즐거운 시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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