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흔들리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둘째 날은 7시 30분에 모두 기상했다. 원래는 11시에 펜션에서 나가면 되지만, 펜션 아저씨가 설악터미널까지 픽업해주는 건 어렵고 유명산 종점까지만 픽업이 가능하다고 하여 우리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 유명산에 갈 때 타야하는 7000번 버스의 시간표다.
‘내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가 남긴 아침 설거지 벌칙의 씁쓸함
설악터미널엔 잠실 가는 버스가 50분마다 한 대씩 있지만, 유명산 종점엔 하루에 총 4대의 버스만 다니며 우리가 탈만한 버스 시간대는 10시 25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일어나서 시리얼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했고 어제 남은 볶음밥과 밥, 그리고 목살스테이크와 오징어구이, 초이쌤이 해준 계란프라이로 주린 배를 채웠다. 어제 체육대회로 등수가 정해졌기에 승태팀이 당연히 설거지를 하게 되었는데, 분명히 승태팀 모두가 받아야 하는 벌칙임에도 설거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상현이와 기태 밖에 없었다. 승빈이와 이향이는 남의 일인양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더라.
▲ 함께 먹는 아침은 언제나 꿀맛이다.
아무래도 늦게까지 놀은 아이들은 비몽사몽한다. 체력소모가 장난 아니었을 것이고, 지금 시간이 졸음이 몰려올 시간이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10시까지 펜션에서 나가야 했기에 쉴 새도 없이 펜션을 청소하고 승태팀과 초이팀은 산책하러 나갔다. 우리팀도 그냥 펜션 안에 있긴 뭐해서 체육관에 올라가 잠시 농구를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짐을 다 정리한 후에 펜션에서 나왔다.
유명산 종점에서 버스를 탈 땐 자리가 널널 했는데, 설악터미널에 도착하니 7000번 버스에 타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만차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분은 서서 가야할 정도였다. 이로써 1박 2일의 짧은 2학기 마무리 여행은 끝이 났다.
▲ 함께여서 행복한 우리들.
흔들리는 나와 흔들리는 그대들이 만나 어떤 흔들림을 만들 것인가
2학기 들어 부안으로 함께 갔던 여행, 그리고 영화팀과 자전거로 떠난 여행, 그리고 이번 여행까지 쉴 새 없이 우린 함께 하기에 행복해 하기도, 갈등에 힘겨워 하기도 했다. 왜 아닐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한다는 게 여러 가지 일들을 만들어 내니 말이다.
어느덧 길게 만난 아이는 4년 정도를 만났고 짧게 만난 아이는 몇 개월 정도밖에 만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 기대도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좀 더 성숙해지길, 좀 더 배려심 있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될 땐 당연히 ‘우리가 만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다가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될 땐 ‘우린 헛 시간을 보낸 것인가?’라는 생각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은 힘이 너무나 빠져, 과연 단재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어떤 교육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의 이기심이나 어린 정신연령을 지탱하고 유지하도록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하는 밑바탕엔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 학생들의 교사로, 아이의 아빠로 그렇기에 교육에 있어서 만능이라 착각한다면 아니 된다. 차쌤은 그 진지한 고민을 추의 흔들림에 비유한다.
그러다 보니 며칠 전 차승민 선생(초등학교 선생)이 페이스북에 “반 아이의 작은 반응에 기쁨이 오다가도 오랜 지도의 결과가 별 소용없을 땐 슬픔과 분노도 생긴다. 그것이 선생이다.”라고 올린 글을 읽고 격하게 공감했다. 학생을 만나는 사람치고 이런 희로애락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는 공감대 때문에 반가웠다.
하지만 차쌤(대마왕이란 별명이 있음)은 그럼에도 단호하게 “완벽해서가 아니라 시계추처럼 흔들리지만 흔들리는 축은 예전보다 더 짧아지고 축 자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마무리 한다. 맞다, 누구나 흔들린다. 그렇기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지금 여러 모습들을 보며 흔들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렇게 흔들리는 만큼 아니,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는 만큼 예전에 비하여는 조금 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축의 중심(아이들에 대한 믿음, 교육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추가 흔들릴지라도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런 믿음과 경험을 통해 실패에 대한 불안은 덜어내는 방식으로, 성공에 대한 조급은 떼쳐내는 방식으로 이 시간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 흔들리는 나와 흔들리는 그대들이 만나 우린 어떤 삶의 순간들을 만들어가게 될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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