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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3.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본문

연재/시네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3.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건방진방랑자 2019. 12. 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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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자연을 정복했다던 인간이, 자연 재해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체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연을 닦달하고 착취하며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의 이성을 비웃으며 맘껏 노는 너구리들.   

 

 

 

이성이란 양날의 검, 합리적 판단과 무의식적 불안

 

그렇다. 이미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왔다면, 그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성理性이 그런 착취와 정복 논리를 가능케 하는 근본인 셈이다. 인간만이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지니지 않는 것들을 다스릴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이란 게 신이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사 내려준 특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게 가능한 것이다. 이성으로 근대가 건설되고 이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성이란 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얼마나 우월한 것이며 얼마나 합리적인 것인지는 회의가 든다. 우린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흔히 착시 현상이나 착각 등으로 불려진다. 하지만 그걸 직접 체험한 사람은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이성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성이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한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어떤 진리를 포착해낼 수 있다고 이성을 과신하는 것일까?

 

 

요괴 퍼레이드는 사람들을 놀래키며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건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성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짐승들에겐 각자의 생존 방식에 맞게 특별히 발달된 부분들이 있다. 코가 발달한 코끼리, 목이 발달된 기린, 색을 바꿀 수 있는 도마뱀, 뿔로 위협할 수 있는 코뿔소 등에 비하면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런 인간에게도 무언가 내세울 만한 게 필요했을 것이고 그걸 극대화하다보니 이성의 우월성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것으로 보고자 했던 이성이 한낱 사실과 환상, 착각조차도 구별하지 못하는 실패품이지 않은가. 더욱이 두려움, 걱정, 후회, 강박증 등의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요괴퍼레이드를 준비하면서 장로는 고등과학의 합리적 해석도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다고 깨달았을 때, 갑자기 인간들은 삼라만상의 신비에 놀라 이처럼 인간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라고 말한다. 너구리의 요괴퍼레이드는 실제 하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그걸 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 이들은 그게 착각, 환상에 의한 것으로 집단적인 히스테리로 분석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우월성으로 내세웠던 이성마저도 우리의 한낱 희망에 불과한 어떤 것쯤으로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인간의 허약함, 가식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나 그로인해 주저앉아 버리거나, 아예 애초에 논했던 인간의 우월성 자체가 허무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을 알고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거나 할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요괴 퍼레이드는 인간의 상식을 비웃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유쾌했다고 앞에서부터 계속 말했었다. 물론 너구리의 그 모습이 재밌고 웃기기도 했지만 극을 전개해나가는 과정 과정들이 유머의 극치였다. 이들은 무엇을 하든 심각해지지 않는다. 이미 노래와 춤, 그리고 본능에 대한 감각이 활발발하게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일이 곧 놀이이며 삶이 곧 놀이이다.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우린 바로 너구리와 같은 그런 여유와 감응력, 그리고 감성을 되찾음으로 우리가 자초했던 이성 우월주의의 외로움과 거만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체를 구성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내가 다소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쿠데타 장면으로 되돌아가 보자.

 

 

강경파 곤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상황은 우습게 흘러간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비장한 선언은 우리는 쥐가 아니야’, ‘고양이를 물어봐야 소용없잖아.’ ,‘쥐라고? 요즘 쥐를 먹어보지 못했구만...’, ‘쥐는 무침 튀김이 제일이라고..’, ‘아냐, 그냥 튀김이 최고야’, ‘난 밀가루 무친 게 더 좋은데’ , ‘그 바삭바삭한 튀김..’, 심지어 쿠데타의 장본인인 곤타까지 무슨 말들이야? 너희들! 난 쥐튀김이 제일이라고! 호이호이!!’ 라고 말한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문학과 경계, 이진경, 2002

 

 

내가 처음에 실망했다고 말한 부분은 곤타가 총을 들이밀고 쿠데다라고 외치며 이어 진압군이 등장하는 장면까지였다. 그 장면까지는 비장미와 살기가 잔뜩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곤타가 속담을 인용하면서 쿠데타놀이로 탈주선을 타고 곧 쿠데타의 장본인인 곤타마저 동참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이렇게 상황마저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연한 신체와 정신이 이 애니메이션에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드다. 심지어 쿠데타라는 극도의 긴장과 공포마저도 녹여버릴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곤타의 쿠데타는 매우 진지했지만 금세 장난끼어린 보통의 태도로 바뀐다.  

 

 

 

인용

목차

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라이온킹

2. 정복욕의 인과응보

3.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4. 노동이 아닌 놀이의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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